양춘승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부위원장

양춘승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부위원장
[이투뉴스 칼럼 / 양춘승] 봄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덧 반팔 옷을 입어야 하는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겨울옷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여름옷을 꺼내야 한다. 봄이 점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계절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산업화를 겪으면서 땅 속의 화석연료를 꺼내 태우면서 발생한 온실가스가 지구를 덥게 만든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기후변화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찌감치 인식한 사람들은 이에 대한 두 가지 대응을 촉구해왔다. 하나는 지구 온난화를 지연시키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감축(mitigation)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된 기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적응(adaptation)이다. 이제까지는 감축에 중점이 두어졌다.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이 ‘공동의 차별화된 원칙’을 주장하며 선진국의 자발적이고 선도적인 감축 노력을 촉구했고, 이어 1997년 교토의정서에서는 선진국들에게 감축 의무를 할당하는 강제적 방안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미국의 불참과 중국 인도 등 인구가 많은 개발도상국의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세계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은 오히려 증가하였고, 지구의 온도 상승과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다행히도 금년 파리에서 열리는 제21차 기후변화당사국회의(COP 21)에서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 이하로 안정화시키기 위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온실가스 감축 협약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하니 기대를 걸어본다.

이러한 감축 노력이 시급하고 그만큼 중요하긴 하나 이제부터는 적응에도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이 당장의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인구가 많은 후진국에서는 해수면 상승이나 이상기후 등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크고, 선진국에서는 금전적 피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1970년 이후 기후 이변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큰 나라는 미국으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는 1470억 달러, 2012년 샌디(Sandy)는 500억 달러의 피해를 끼쳐 각각 1위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은 이제 후진국만이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한 보험회사의 보고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2011년 기준으로 연간 3000억 달러를 상회하고, 그로 인해 덩달아 피해를 입는 선의의 피해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홍수나 태풍 등 기후 이변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후변화 관련 인프라의 정비와 건설이 시급하다. 한 투자 컨설팅 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홍수 피해 위험이 가장 큰 20개 나라 중 6개가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이고, 9개가 중국, 브라질, 한국 등 신흥 개발국이며, 이들 나라의 인프라 건설을 위해 OECD는 2030년까지 약 50조 달러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정부가 이런 막대한 자금을 동원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프라 갭(infrastructure gap)’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민간자본의 유입이 불가피하다. 인프라 투자는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고, 현금흐름이 안정적이며, 시장 변동성이 적다는 점에서 민간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큰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연기금의 기후 관련 인프라 투자 비중은 전체 운용 자산의 1% 이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정부의 정책이 민간 투자를 유도하기에 충분한 확실한 시그널을 던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기업이나 연기금 등 민간 영역의 부는 늘어나는 반면 각국 정부는 재정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민간 투자의 필요성은 너무나 분명하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민간 투자를 유치하기 위하여 ‘녹색채권 (green bond)’이라는 새로운 금융 상품을 내놓고 있다. 재생에너지나 기후변화 대응 인프라에 대한 민간 자본의 유치를 위해 발행되는 녹색채권은 엄격한 몇 가지 원칙을 준수하도록 하여 자금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기후 관련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변화된 기후에 적응해가며 우리 모두의 삶의 터전을 지키는 노력이다. 변해버린 기후로 인한 피해를 그대로 눈 뜨고 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인프라 투자에 녹색채권 등 민간 자본의 유치에 필요한 제도적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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