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관료 현직 지원들과 수시 소통 … 이해단체 입김행사 우려

산업자원부의 모 팀장은 최근 10여명의 전 팀원과 함께 점심시간을 이용해 과천종합청사 인근의 한 음식점에 모였다. 연말을 앞두고 제각각 스케줄이 있었지만 팀장의 '집합명령'이 떨어지면서 출장업무에 나선 직원을 빼고 드물게 모두 모인 자리였다.

 

자세한 영문을 모르는 팀원들은 '선배가 오신다'는 상사의 말만 듣고 미리 준비된 음식에 손도 대지 못한 채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선배가 등장했고 일부 직원들이 반갑게 그를 맞으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신참 직원들과 인사이동으로 새로 부서원이 된 직원들에게 소개된 그는 퇴직 후 모 협회의 간부로 일하고 있는 전직 산자부 관료. "이제 모르는 얼굴들이 많네"라면서 신입 직원들을 일일이 소개받은 그는 테이블의 중앙 상석에 자리 잡고 마치 현직 팀회의를 주재하듯 최근 현안들을 언급했다.

 

처음부터 초면의 '후배'들에게 높임말을 생략한 그는 이 자리에서 대뜸 "△△△건은 어떻게 추진되는 거야?"라며 자신이 속한 단체와 관련된 질문을 던졌고 담당 직원은 "아직 결정이 안 났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대답한 뒤 "차후 보고를 드리겠다"고 깍듯이 예의를 갖췄다.

 

곧이어 식사가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과거 현직 때의 '무용담'이 오가는 연말 하례회 성격으로 바뀌었지만 간간이 현안에 대한 논의는 계속 이어졌다. 특히 일부 내용은 업무를 맡고 있는 핵심관계자나 알고 있을 법한 고급 정보에 가까웠다. 기자가 언뜻 들어도 이익단체의 결집체인 협ㆍ단체가 입수하면 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었다.

 

특히 그는 일부 업무에 대해 직접 조정안까지 제시하면서 "옛날에는~"으로 시작하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팀장을 비롯한 부서원들을 그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전ㆍ현직 직원이 친분을 나누는 자리라기보다 정책입안자와 수용자가 한데 모인 협의회가 아닌가 하는 인상까지 줬다.

 

점심식사 시간까지 조금 넘겨 이어진 회식자리가 끝나자 식대를 직접 정산한 그는 일일이 팀원들과 악수를 하고 홀연히 사라졌고, 부서원들은 추위를 피해 청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직 관료에게 청사문턱은 현직처럼 언제나 들고 날 수 있을 것처럼 낮게 느껴지는 듯 했다.

 

산자부 관계자에 따르면 집계된 바는 없으나 전직 산자부 관료로 퇴임 후 부처와 관련을 맺고 있는 협ㆍ단체의 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인물은 5~6명선. 게다가 부기관장이나 핵심관계자로 야인이 된 관료까지 포함하면 너끈히 20여명을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게의 부서가 통상 3~4곳의 영리단체(협회)나 비영리 기관과 협의를 주고 받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앞서 일례로 든 부서의 경우는 거의 전 부서에 해당되는 얘기란 추론도 가능하다. 이들 전직 관료는 현안이 생길 때마다 수시로 산자부를 들고나는 것은 물론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선 선배라는 명분을 이용, 수시로 입김을 행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만 중앙부처와 협ㆍ단체가 활발한 소통을 갖는 것 자체는 비난 대상이 될 수도 없는데다 고락을 함께한 선배들을 수면위에 올려놓고 논하는 것은 누구라도 껄끄러운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전례는 없었다.

          

산자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나마 산자부는 퇴임 후 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곳이 많은 편이라 다들 골라서 갈 형편은 되는 것 같다"면서 "다만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곳이 없어 상대적으로 못한(직위가 낮은) 곳으로 가는 경우는 더러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 관계자와 현직 공무원들의 교감수위다. 선ㆍ후배란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양측의 관계는 협의수준을 지나쳐 어느새 상하관계로 국면이 전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이에 대한 견해는 분분하다. 전직 경험과 연륜을 살려 훌륭한 조언자가 될 수 있다는 의견과 유착관계로 전략할 수 있다는 우려다.

 

산자부의 모 관계자는 "아무리 같은 부처의 전직 상사였다 할지라도 공사구분만 분명하면 문제될 것이 없지않느냐"면서 "굳이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이 아니라 풍부한 전직 관료의 경험을 살려서 정책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부분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시민단체 등은 민관유착이라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윤철한 부장은 "경험을 살린다는 것은 듣기 좋은 말일 뿐"이라며 "이익단체를 대변하기 위해 자리한 사람의 의도가 순수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윤부장은 "공직자윤리위 등에서 전직 관료의 재취업을 일정기간 동안 제한하고 있지만 심사기준도 명확하지 않고 내용도 아직 공개되고 있지 않다"면서 "이는 사실상 전관예우나 다름없으며 향후 시급히 개선돼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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