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Commanding Heights, 누가 결정할 것인가?
[칼럼] Commanding Heights, 누가 결정할 것인가?
  • 김창섭
  • 승인 2015.06.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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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김창섭
가천대학교
에너지it학과 교수
[이투뉴스 칼럼 / 김창섭] 경제활동과 관련하여 누가 결정할 것인가는 아주 오래된 논쟁이다. 레닌이 1922년 소련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이 논쟁을 본격화한 이후 누가 결정할 것인가(commanding heights)는 지금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은 영원한 주제인 듯하다. 당시 소련에서 가격을 누가 정할 것인가 그리고 자원배분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발생하였다. 당시 소규모 시장기능을 도입하여 반대파의 비난을 받던 레닌은 철강 석탄 조선 등 일부 인프라 산업은 영원히 정부가 계획에 의하여 지배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 이후 누가 자원배분의 메카니즘을 결정하도록 할 것인가는 무수한 역사를 가지고 전개되어 왔다. 신자유주의와 현재의 비판적 입장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경제학적 논쟁과 논문들이 생산되어 왔다.

이러한 논쟁은 원론적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실제로 우리나라의 일상에서도 진행중인 사안이다. 특히 에너지자원분야는 시장기능과 정부기능이 혼재될 수 밖에 없는 주요기간산업의 성격으로 인하여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거의 모든 정부가 일상적인 진흥이 아닌 규제와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그 징표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경제학사적 논쟁과 무관하게 각국의 상황에 따라 그 논쟁이 실질적인 맥락을 갖게 된다. 누가 결정할 것인가는 단순히 정부계획이냐 시장의 합리적 선택이냐와 같이 단순화된 두 지형만으로 구성되지는 않는다. 이 이념적 배경하에서 훨씬 더 복잡한 메카니즘하에서 누가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과 갈등이 상존한다. 거의 대부분 나라에서 에너지관련 결정은 정부, 지역주민, 사업자, 기술공학자 등의 복잡한 구도하에서 끊임없이 무언가가 정해진다.

이제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들이 더욱 다양화되어 기존의 두 가지 선택지의 논쟁이 한가해 보인다. 희귀자원이 되어버린 입지의 확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기술옵션의 선택을 둘러싼 논쟁, 비용과 환경성, 형평성 등의 적정 조합 등에 대하여 너무나 많은 주체들의 발언권이 증진되고 있다. 사실은 정부나 시장 모두가 이러한 새로운 변수들 앞에서 속수무책인 상황인 것이다. 현재는 이해당사자간의 갈등이 타협의 과정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정책이라는 이름하에 더 주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한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책이 장단기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당사자에게 압도당하여 끌려다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히 틀린 발언은 아닐듯하다.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는 그나마 우리가 갖고있던 역동성이라는 장점이 감소하고 있고 비전을 제시하고 갈등을 조정할 정치세력은 오히려 우리사회의 부담으로 작동한 지 오래되었다. 여기서 정치상황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개선의 가능성이 보이지않는 엄정한 상황하에서 우리 에너지계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가 그리드화된 상태에서 에너지공급의 불안은 우리사회의 운영을 파탄내고 동시에 경제활동 자체가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드에너지의 공급지장비용은 사실상 무한대인 것이고 그 결과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여 국가체제의 종말이다. 고도의 도시화와 지능화는 그 정도로 취약한 시스템인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시스템 운영하고 책임지는 것은 우리 에너지계의 몫이다. 여기에 종사하는 이들의 모든 활동들은 그 자체가 일자리와 승진 그리고 월급을 기대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직종과 구별되지 않지만 동시에 우리가 하는 일상적인 활동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우리 사회체제유지의 핵심적인 초석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에너지공급의 책임성의 요체는 여기에 종사하는 에너지계 모두의 몫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우리의 실패는 각 조직의 실패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계에 소속된 자들은 단순한 에너지정책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 만큼 존중받아야 하고 스스로 책임성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시절과 비교해 보면 정치가 실무를 지나치게 압도하고 있다. 나름 역사적으로 정해진 로드맵에 의하여 각 실무단위는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고 그 관성은 한편 보수적으로 인식되었으나 한편 에너지의 안정성을 담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묵직한 실무가 너무 많이 손상된 것도 사실이다. 지난 시절 에너지정책은 녹색성장, 국가감축목표 30%, 자원개발 등등 5년 단기집권세력의 입맛에 맞게 너무 가볍게 조정되고 어려움을 겪지 않았는가.  그리고 모 캠프출신이라는 미명하에 낙하산으로 보내진 이들에 의하여 좌우되어 무너진 에너지계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누가 정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논쟁을 상기해 본다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담보하기 위한 행동들은 누가 정할 것인가. 정치권, 정부, 기술공학자들, 지역주민들, 시민단체들, 사업자들 등등. 그리고 그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인공적인 시장을 표방하는 ‘시장운영규칙’이 결정을 대신할 수 있는가.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계획으로서 효율성을 차치하고 그 실천성이 담보될 수 있는가. 전력망 등 이미 물리적 인프라에 대한 건설뿐 아니라 운영을 위한 엔지니어링 역량도 포화된 것은 아닐까. 게다가 이제 우리 에너지계는 너무나 복잡하고 갈등의 멜트다운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 사실이다. 어렵다.

이제는 이러한 현상들을 인정하고 이러한 여건을 감안한 새로운 결정구조가 필요하다. 아주 미시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최근에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거버넌스, 사회적 합의 등은 필요하다. 소통은 항상 절실한 덕목이다. 계속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 식상하기도 한다. 누가 에너지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통찰력과 책임감을 갖고 있는가. 일단 과도한 의욕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정치권은 일단 배제하자. 정부인가 시장인가 전문가인가 산업계인가. 아니면 뭔가의 조합인가. 이제는 원점에서 누가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역시 책임감이라고 본다. 책임감이 강한 그룹이 더 강한 의사결정권한을 가져야 한다. 그 책임감의 의미는 사적 이익을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장기적인 각 주체들의 이익을 공히 증대시킬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 지금 이 시간 누가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에너지의 책무를 고민하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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