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계획 수립부터 공청회까지 밀실행정 일관
지역주민이 권역 발전사 대변하는 진풍경도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열린 옛 한전 대강당 내부. 일부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대표의 고성시위가 계속되자 청경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단상 앞에 도열해 있다.

[이투뉴스] 일찍이 결정된 사안을 놓고 일정에 쫓겨 허겁지겁 치른 행사의 뒷맛은 씁쓸했다. 여전히 정부는 소통이나 공론화에 미숙함을 드러냈고, 정책 관철에 대한 자신감 부족 탓인지 주요 의사결정과 논의 과정은 밀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개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 수립 과정부터 18일 공청회까지의 행적을 뭉뚱그리면 그렇다는 얘기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서울 삼성동 옛 한전 대강당에서 열린 공청회는 신규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지역주민, 반대로 석탄화력 건설을 촉구하는 일부 지역주민들이 현수막을 동원한 시위를 동시 다발적으로 벌이면서 입구부터 아수라장이 됐다.

2년전 6차 전력수급계획 공청회가 발전노조와 시민단체의 행사장 기습점거로 한차례 무산된 바 있는데, 주최 측이 같은 사태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 참가신청을 받아 제한적으로 행사장 입장을 허용하자 출입을 제지 당한 단체와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며 그 자리에서 시위를 시작한 때문이다.

이날 정부 요청을 받은 경찰은 1개 중대 규모 인력을 행사장 외곽에 서너겹으로 배치해 시위대와 참가 미신청자의 출입을 봉쇄했고, 주최 측은 사설 경호 인력을 대강당 내부 요로에 분산 배치해 소란을 제지하는 등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청회장 2층 입구에서 바라본 옛 한전 정문.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원전 후보지 지역주민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공청회장 입구에 겹겹이 저지선을 만들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장외시위에 나선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영덕·삼척 핵발전소 추가건설 필요없다!”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원전, 석탄, 송전탑 확대하는 7차 수급계획 전면 수정하라!”를 외쳤고, 맞은 편에선 영흥 7,8호기 조기착공추진위원회와 여수경제활성화범시민추진위원회가 지역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촉구하는 상반된 내용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공청회 진행도 순탄치 않았다. 사전 참가신청을 통해 내부로 진입한 일부 반핵단체와 원전 후보지 지역주민은 개회와 동시에 의자로 올라선 뒤 “이런 공청회가 어딧써”, “왜 들어올 기회도 안주는거야” 등을 외치며 40여분간 막말 고성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은 전력거래소의 주요내용 발표와 패널토의 전반부까지 소란을 피우다 "이 계획을 인정할 수 없다"며 돌연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국회 본회의에 불참한 채 현장에 자리한 김제남 정의당 의원도 한동안 주최 측과 입씨름을 벌이며 상경 주민들의 방청 허용을 촉구해 시선을 끌었다. 김 의원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이해관계자 아니냐, 의견 수렴을 해야 하는데 입장권 운운하며 밀실에서 하는 통과의례식 공청회는 안된다. 제한하지 말고 방청을 허용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신청자가 많아 동일한 의견을 가진 분 전부를 입장시키는 것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일부만 선정했다. 특정 단체 의견만이 아닌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하므로 사전 접수가 불가피했다”고 해명했으나 “새벽 4시에 삼척에서 올라왔다”, “들어갈 기회는 줘야지” 등의 거센 주민항의가 쏟아져 파행은 계속됐다.

일부 환경단체와 신규원전 후보지 주민들이 개회와 동시에 고성 시위를 벌였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질의응답도 특정지역 쏠림 질의와 표피적 답변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방척석 질의는 크게 ‣신규 원전 건설배경 설명과 주민의향 반영 요구 ‣6차 계획 설비(영흥 7,8호기) 취소 타당성과 문제점 ‣노후대체 설비의 연료전환 요구 부당성 ‣전력수요 증가를 전제한 수요전망 문제점 등으로 갈렸다.

우선 정부는 신규 원전 2기 반영과 관련, “비용최적화와 온실가스 감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원주 산업부 전력산업과장은 삼척주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규원전 입지선정을 3년뒤로 미룬 이유를 묻는 반대투쟁위 주민질의에 “삼척이 될지, 영덕이 될지 확정된 것은 없다. 주민수용성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높일 것”이라며 “2018년 허가단계서 입지를 결정하는 것도 원전 준비기간 10년을 역산한 원래 스케쥴”이라고 해명했다.

또 영덕지역 주민이 “예정지 고시 후 정부가 유치에 따른 경제적 혜택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 찬성도 반대로 돌아섰다. 삼척은 반대하니까 두고 영덕은 신고리 7,8호기 대체를 짓는다는 건 우리는 무시하는 처사다. 혜택을 알려주고 찬반 투표를 해야 한다”고 몰아붙이자 “국가적 전력 운영을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건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반핵단체와 지역주민들이 "영덕.삼척 핵발전소 추가건설 필요없다"는 피켓을 들고 수급계획 전면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7차 계획에서 철회된 영흥 7,8호기 반영을 촉구하는 지역주민들의 요구도 빗발쳤다. 자신을 영흥 소상공인 대표로 소개한 한 주민은 “6차에 반영했다 7차에 제외하는 게 말이 되냐. 영흥은 송전선로 등 인프라가 완벽히 갖춰진 곳 아니냐. 지역주민으로서 생계가 파산 위기다. 주민동의는 건설할 때만 받고 철회할 땐 안하냐”며 각을 세웠다.

이에 대해 이창호 전기연구원 박사는 “영흥 7,8과 동부하슬라는 6차 계획에서 조건부였다. 연료문제 등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인·허가 절차상 부적격이 된거다. 향후 다시 (조건이) 만들어지면 (반영이)가능하다. 다만 이번에는 안된다는 것”이라며 주민을 달랬다.

이원주 과장은 부연설명을 통해 “인천에서도 예외적으로 석탄사용이 가능하지만 CO₂배출증가를 환경부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같은 옹진군에서도 증설에 반대하는 집단탄원서가 접수된 바 있다”며 사업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을 재확인 시켰다.

영흥도 주민들도 영흥 7,8호기 건설 재추진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상경시위를 벌였다.

정부가 대체건설 대상인 호남화력의 연료전환을 검토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수지역 주민들이 '최첨단 석탄화력으로 대체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지역주민들이 앞장서 발전사를 옹호하는 형태의 질의는 계속됐다. 이번 계획에 대체설비로 반영될 예정인 호남화력과 관련해 한 여수지역 주민은 “장기가동 설비는 기준용량 범위내에서 연료전환에 한해 허용한다고 했는데 향후 석탄화력이 수명을 다할 때마다 모두 LNG발전소로 전환하란 얘기냐. 가동률도 낮다”고 따져 물었다.

이 과장은 “석탄과 LNG를 비교했을 때 LNG가 가격은 비싸지만 대신 온실가스나 오염물질 배출에선 유리하다. 우리가 전원을 구성할 땐 양쪽을 균형적으로 본다”면서 “무조건 LNG로 가야한다고 확정해 얘기할 순 없다. 석탄으로 가동하더라도 여러조건을 따져봐야 하지만 환경성이 강화되도록 가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며 여지를 뒀다.

앞서 김권수 전력거래소 전력계획처장도 ‘호남화력 연료전환으로 지역경기 침체가 우려된다’는 지역단체 관계자의 질의에 같은 맥락에서 “노후설비 대체건설은 국가 경제적으로, 사업적으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검토하되 연료전환이 확정된 건 아니다”고 답변했다.

전력수요가 근거없이 부풀려져 있고 목표예비율(22%)도 수요 불확실성 대비 과도하게 책정돼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안정적 공급능력 확보가 우선"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수요전망이 엉터리다. 어떤 근거로 했는지 나와 있지 않다. 수요는 계속 줄고 있는데 왜 연간 2.2%씩 늘어나는 결과냐. 에너지다소비 산업이 15~20년 뒤에도 계속 갈 것인가. 전력수요 정체는 단기적 현상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전력은 국민의 생명줄로 안정적 공급체제를 갖춰야 한다. 7차 계획에선 전력화라든지 기후변화라든지 선진국 모형을 반영했고, 극단적 최대 전력수요 대처와 요금인상 등 변동요인까지 충분히 반영했다”고 해명했다. 이창호 박사는 “최소 신뢰도를 위한 15%와 과거실적 분석에 의한 불확실요인 7%를 더해 책정한 적정예비율로 선진국 대비 높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밖에 정부는 아산만 조력발전댐 수급계획 반영 여부를 묻는 질문에 “사업자 의향은 접수돼 있으나 신재생에 확정설비가 되려면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발전사업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지금 단계에서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했고, 신경기변전소 송전선로 경과지 선정 일정 질의에 대해선 “한 두 달내에 결정이 날 것으로 본다”고 답변했다.

한편 이날 진통 끝에 공청회 절차를 밟은 7차 전력수급계획은 26일 국회 보고와 이달말 전력정책심의회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전력수급계획의 패러다임 전환을 목표로 수립된 이번 계획은 온실가스 감축 정책과의 정합성 확보, 송전선로 건설 최소화, 극노후설비 합리적 대체건설 유도 등의 소기 성과에도 불구 대국민 소통 부분에선 여전히 '불통 정책'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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