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시장 재설계 대신 신산업 아이콘 띄우기 급급

[이투뉴스] “한마디로 핸들 빠진 차에 올라탄 느낌이다. 어디로 갈 예정인지, 지금 우리가 어디쯤인지 묻고 싶다.”(발전사 A간부), “에너지신산업 띄우기보다 지속가능한 시장 재설계가 먼저다. 낡은 틀을 단번에 바꾸기 어렵다면 방향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B 교수)

현 정부의 ‘신산업 드라이브’를 지켜보면서 전력시장 참여자들이 불안감과 동시에 갑갑증을 호소하고 있다. 전력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드러난 기존 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은 그대로인데, 고장난 핸들을 움켜진 정부는 일단 가속페달 밟기에 여념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0일 전력업계 산·학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전력수급은 숨통을 터 여유를 되찾았지만 십 수 년째 임기응변식 처방에 의존해 온 전력시장은 난맥상을 거듭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공기업 누적적자, 낡은 CBP(변동비반영) 시스템이 양산한 특정 전원의 생존여건 악화 등은 차치하더라도 ‘시장으로, 미래로, 세계로’라는 정부 좌표는 물론 최대 현안이 된 저탄소 시장체제 구축과도 거리가 먼 형태란 것이다.

B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급한 불만 끄고 가는 대응이 통했지만 시장이 한계를 드러내 앞으론 어림도 없는 얘기”라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냉철히 바라보면서 시장시스템을 전면 재설계한다는 각오로 덤벼야 한다. 문제는 정부의 관심이 그것보다 보여주기 좋은 신산업 아이콘에 있다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같은 맥락에서 업계는 정부가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기존 노후시스템을 대체할 새 제도를 설계·도입하되 일련의 정책이 지향하는 바를 이해관계자들에게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일례로 기존 도매시장 판도를 바꿀 정부승인차액계약제(VC)는 계약당사자인 한전-발전사간 이견조율이 쉽지 않아 당초 예정된 일정보다 계약체결이 지연된 채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과거 SMP 상한규제 차원에 도입이 결정된 이 제도가 현 시장환경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는 향후 제도 운용계획이나 방향성에 대해 아직 이해관계자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주지 않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발전사 관계자는 "이제와서 다시 법을 물리고 중장기 계획을 세울 수도, 그렇다고 정부가 여러 여건을 따져보지 않고 함부로 밀어붙일수도 없는 게 VC에 대한 정부의 딜레마일 것"이라면서 "정부가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는 인상을 주다보니 한전이나 발전사 모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정부 측은 일정대로 신규 민자석탄이 진입하기전인 내년까지 계약 당사자간 합의를 마무리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일단 VC와 관련한 전체적인 쟁점은 모두 짚었고, 조만간 2라운드 협의를 통해 다시 이견조정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나라마다 여건이 다른데 처음부터 완벽한 새 시장 시스템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기간의 시장운영시스템 설계보다 전력수급계획과 선순환 구조를 갖는 시장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더 우선 시 돼야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력당국 내부 관계자는 "현 전력시장과 수급계획은 시장효율과 공급안정이란 제각각 다른 정책목표를 지향하지만 이 둘간의 연계고리가 없어 부조화와 빈번한 시장개입을 유발하고 있다"며 "온실가스 감축과 신산업 육성이란 정책 목표까지 녹여낼 중장기 정책을 수립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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