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류가격표시제등실시요령이 원인

값싼 주유소를 찾는 소비자들과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려는 주유소가 가격표시판을 놓고 한판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다. 고유가 시대에 기름값이 부담스런 운전자들이 기왕이면 값싼 주유소를 찾는 것은 인지상정. 그런데 주유소 입장에서 보자면 가격표시는 매출과 직결되는 문제로 결코 소홀히 다룰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값싼 주유소는 최저가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대형 현수막이나 별도의 표시판을 이용해 운전자들을 유인한다. 반대로 판매가가 비싼 주유소의 경우 도로에서 식별이 어려운 위치에 표시판을 두는 등의 방법을 통해 고객을 빼앗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행법상 두 경우 모두 문제될 것이 없다. 지난 2004년 개정, 고시된 산자부의 석유류가격표시제등실시요령 제5조에 따르면 "가격표시의무자(주유소등)는 소비자가 사업소의 입구에서 용이하게 식별할 수 있는 사업소 내의 장소에 가격표시판을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유소 입구에서 주유소 측이 어느 곳에 가격표시를 내걸든지 소비자가 확인만 가능하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게 이 고시의 주된 내용이다. 문제는 애매한 고시규정을 일부 주유소들이 악용하고 있다는 것.

 

본지 실태조사 결과 판매가가 높은 일부 주유소의 경우 일부러 가격표시 입간판을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공지함으로써 산자부의 고시를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일 본지는 서울시 은평구 일대에 위치한 10여개의 주유소를 대상으로 가격표시 실태조사에 나섰다. 조사 대상은 주거지역과 상권이 밀집해 있는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 응암오거리 반경 1.5km 이내의 주유소 10여 곳. 이 일대는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일부 중소제조업체가 골고루 분포해 있고 서울시 서북부의 교통요충지로 타지역 차량의 유동이 많다는 점도 감안됐다.

 

조사결과 대부분의 주유소는 현행 '석유류가격표시제등실시요령'을 준수하면서도 일부 주유소는 의도적으로 가격표시에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6일 현재 휘발유가 기준으로 가장 판매가가 비쌌던 주유소는 응암오거리를 기준으로 동서축선에 위치한 M주유소. 휘발유를 기준으로 판매가가 리터당 1534원이었던 이 주유소에서 가격표시판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주유소 입구에서 바로 확인이 불가능한 사무실 한 편에 가격표지판이 위치해 있었고 이조차 건물 도색에 사용된 색상과 동일한 배경색을 사용하면서 의도적으로 식별을 어렵게 했다. 주유소 관계자는 "특별히 잘 보이는 곳에 놓아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사대상 주유소 중에서 두 번째로 판매가가 높았던 T주유소 역시 동일한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혼란을 주고 있었다. 응암오거리 기준 서북축선에 위치한 이 주유소의 6일 휘발유 판매가는 리터당 1495원. T주유소는 도로에서 확인이 불가능한 건물 내측에 가격표시판을 두고도 비스듬히 돌려놓은 방법을 썼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주유소들의 의도된 행위로 볼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반면 판매가가 낮은 축에 속했던 주유소들은 가격표시판을 주유소 마케팅 주된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휘발유가 기준 리터당 1389원을 기록하면서 가장 값싼 주유소로 나타난 S주유소(동서축선)는 도로 옆 인도와 가까이 규정 표시판을 세워놓고도 가로 2.5m, 세로 1m의 대형 표시판을 별도로 설치했다.

 

또 남북축선에 위치한 W주유소(휘발유가 기준 리터당 1419원 판매)는 보통 주유소가 사용하는 입간판보다 1.5배에 달하는 가격표시판을 사용해 판매가가 싸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물론 이 주유소는 주유소 내측에 또 다른 가격표시판을 게재하고 있었다.

 

이 밖에 6일 현재 휘발유가 기준 리터당 1449원에 판매하고 나섰던 대부분의 주유소는 가격표시판 상단으로부터 무연휘발유, 경유, 카드할인가 순으로 가격이 나열된 가격표시판을 주유소입구에 공지하고 있었다.

 

값 비싼 주유소와 값싼 주유소들이 가격표시 행태가 분명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가격표시에 대한 이들의 행태를 제한할 방법이 없다. 관할 시ㆍ군ㆍ구는  '물가안정에관한법률' 제29조 1항에 의해 아예 표시를 하지 않거나 카드할인가만 표시하는 행위만 단속할 뿐이다.

 

정상필 주유소협회 기획팀장은 "가격표시판 설치 위치에 대해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고시상에는 입구에서 용이하게 식별할 수 있는 장소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도로상에서 확인이 안 되거나 주유소 안쪽에 표시판이 있더라도 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업체 간의 상이한 가격표시 행태에 대해 산업자원부는 고시에 규정된 원칙만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산자부 석유산업팀의 한 관계자는 "할인가격을 일반 가격보다 크게 표시하거나 정상가격보다 위에 표시하는 행위, 글자 모양이나 색깔을 다르게 표시하는 경우만 위반 사례에 해당한다"며 "가격표시판의 설치 위치는 구체적으로 제제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