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요즘 국감 참 편해졌네. 예전엔 피감기관 한 곳씩 방문해 하루종일 감사를 진행했는데 말이야. 하루에 여러 기관을 한꺼번에 한다니 제대로 잘 되겠어?”

언론사에 오랜 기간 몸담은 선배가 국감 일정을 보고 조소를 띠며 한 마디 뱉었다. ‘추석연휴도 잊고 전념해 마지 않는’ 국정감사에도 불구, 일정표를 보니 하루에 8~10곳의 기관을 한꺼번에 번갯불에 콩 볶듯 감사한단다. 표적이 된 기관과 병풍역할을 맡은 기관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과연 기관별 감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높으신 분들의 속뜻을 어찌 다 알겠냐만은 국감은 이제 국회가 피감기관을 주무르는 얼차려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소리가 갈수록 커진다. “이번 기회에 그 기관 날려버리겠다”고 윽박지르는 의원실의 존재가 놀랍지 않다. 피감기관 사이에서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관계자를 무릎 꿇렸다거나, 방에 가뒀다는 얘기도 이제는 별로 충격적이지 않다.

지난해 국감 당시 잊지 못할 장면 하나.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의원실의 한 보좌관이 피감기관 관계자들에게 자료를 준비해 ‘갖다 바치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것이다. 처음에는 국회에서 그렇게 악악대는 사람이 누구인가 싶었다. 나중에 의원실 보좌관임을 알고나서는 오히려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새롭다. 

그 보좌관을 채용한 국회의원은 겉으로는 온갖 인자(仁者)인 척 이미지메이킹을 하면서 뒤에서는 보좌관을 시켜 피감기관을 윽박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 저변에는 피감기관에 대해 가진 값싼 우월의식이 존재했을 거라 여겨진다.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 '갑질' 논란이 국회에서도 예외가 아니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국정감사는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정부의 정책을 감시하고 올바로 잡기 위한 자리다. 그러나 국민이 '갑질 권한'을 준 것은 아니다.  비판과 협박의 오묘한 줄타기 속에서 최소한의 예의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박수받기 어렵다. 비판과 대안의 정당성이 감시자의 ‘갑질’마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감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는 앞서 비난한 갑질의 병폐가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현실은 갑질과 천박한 권위주의에 발동을 거는 그들을 향해 쓴웃음을 던질 준비를 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국감이 올바른 비판과 혁신적인 대안을 내놓기를 바란다는 표현은 피감기관 입장에선 너무 냉혹하게 들릴까.

이주영 기자 jylee98@e2news.com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