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생명을 살리는 빗물(活命雨), 경제를 살리는 빗물(活經雨)-

한무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이투뉴스 칼럼 / 한무영] 영화 ‘동물의 왕국’을 보면 아프리카 초원지대에 건기가 찾아오면 코끼리나 기린 등 야생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물을 따라 이동하다가 물을 찾지 못하면 고통스럽게 서서히 죽어나가는 것을 본다. 하지만 우기가 시작되면서 비가 내리면 다시금 초원에 생기가 돈다. 짝짓기를 하고, 새로운 식구가 탄생한다. 그렇게 생태계는 수천만년을 지속해 왔다. 모든 생명을 살리는 빗물이다.

지금도 아프리카 사하라 남쪽 지역에서는 가뭄 때는 여러 부족들이 가축떼를 몰고 물을 찾아 이동한다. 다른 부족들은 총을 들고 자신의 물가를 지킨다. 이렇게 물 때문에 갈등이 시작되고 부족간 전쟁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갈등은 비만 오면 다 해소된다. 평화를 만들어 주는 빗물이다.

빗물은 가장 깨끗하고 누구에게나 떨어지는 하늘의 축복이다. 이러한 소중한 빗물로 경제도 살려보자. 호주의 어느 항공사에서는 비즈니스석 이상에만 클라우드 주스(구름주스)라는 이름의 빗물생수를 제공한다. 미국 텍사스 대학 구내의 자판기에는 빗물생수가 콜라를 밀어내고 있고, 어느 식당의 메뉴에는 주스보다 비싼 가격의 빗물생수가 있다. 칵테일 바에서도 빗물생수를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 돈을 벌어주는 빗물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민 대부분이 ‘산성비의 주술’에 걸려 있어서 공포수준의 우려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주술은 어린이들도 간단히 풀 수 있다. 산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pH를 리트머스 시험지를 이용해 직접 재보면 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마시는 콜라나 주스의 pH와 비교하면 전혀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등학교 과학반 정도의 수준이면 이것을 화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일단 산성비에 대한 오해를 걷어내면 빗물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반도체 공장과 같이 초순수가 필요한 곳에서 하천수나 수돗물 대신 빗물을 이용하면 아주 경제적으로 초순수를 만들 수 있다. 만약 이상한 물질이 원수 중에 섞여 들어온다면 생산공정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 같은 우려도 빗물을 사용하면 쉽게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자신이나 이웃공장의 지붕에 떨어지는 빗물을 이용하면 일부 또는 전부를 충당할 수 있다.

약품이나 식품 성분 중 미량의 물질이 물속의 성분과 반응하여 부산물을 만들어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따라서 약품이나 식품의 원료인 물을 쓸 때 물속에 들어 있는 이물질의 양을 줄이기 위해 공정을 거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땅에 떨어지기 직전의 빗물을 써보자. 빗물은 마일리지가 가장 짧기 때문에 이물질이 적어 다른 화학물질과의 반응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므로 가장 좋은 원료가 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의 탕액편을 보면 물을 여러 약재 중 가장 먼저 설명하고 있다. 그중 12번째 반천하수편을 보면 ‘빗물은 깨끗한데 하늘에서 내려와 땅의 더럽고 흐린 것이 섞이지 않은 물로서 늙지 않게 하는 좋은 약을 만드는데 쓸 수 있다’고 하였다. 한약을 다릴 때 항아리에 담아둔 빗물을 쓰면 가장 약효가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빗물에 대한 오해를 풀고 빗물을 잘만 이용하면 생태계, 수자원, 기후변화 적응, 생산공정 개선, 신제품 개발 등 여러 분야에서 생명도 살리고 경제도 살릴 수 있다. ‘산성비의 주술’을 풀기 위해 우리 국민 다 같이 주문을 외워보자. “수비수비 마하수비 수수비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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