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용 박사(한국도시가스협회 기획실장)

한 때는 그린으로 포장하면 모든 것이 용인되던 시절이 있었다. 중세시대 얘기가 아니다. 불과 3~4년 전 정부나 지자체 조직에서 추진하는 과제에는 공통분모가 그린으로 미화됐다. 지금은 어떠한가? 아마 유일하게 남아 있는 프로젝트가 수도권 그린히트 프로젝트가 아닌가 싶다. 그린히트 프로젝트가 최근에도 BCR이 1.1이 나온다고 한다. 지난 4월 이후 5개월만의 추가연구가 이전 연구결과를 99% 추인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슬픈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최고 연구기관의 무책임한 연구 자세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고가의 천연가스를 태워서 저가의 열을 만든다? 열역학적으로 또는 경제학적으로 볼 때 정상이 아니다. 수도권에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해 허가한 발전소가 사리사욕을 위해 전력생산을 줄이고 불필요한 열을 더 생산한다는 것이 정상인가? 또한 에너지공급시스템이 거미줄처럼 깔린 지역에 수천억원을 투자하는 사업이 정상인가? 아라뱃길과 같은 전철을 또 밟을 것인가? 전 정권의 자원외교는 전적으로 실패, 부실이라는 감사원의 감사보고서가 아직 잉크가 마르지 않음을 왜 모르는가 ?

그렇다면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왜 오류투성인 이 사업을 하려고 하는가? A-J효과(Averch-Johnsn effect)를 통해 몸집을 부풀리고 시장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버려지는 열의 활용, 중소 집단에너지사업자의 경영개선, 고용창출… 미문여구, 조삼모사에 불과한 수식어의 남용은 책임 있는 공기업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년 국감에서 한난의 신규사업 참여제한 지침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물론 한난의 성과이다. 그러나 정부는 집단에너지 시장구조 분석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 현 시점에서 지침 재검토는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난과 협의를 종료했다고 올해 국감에서 밝힌 내용이다. 한난 자신이 그린히트 프로젝트가 정부의 지침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가? 당초 1104만Gcal/y의 버려지는 열 주장은 최종 287만Gcal/y로 축소되었다. 1Gcal도 반영하지 못한 제철소, 산업체 및 폐기물의 열생산량은 허구에 불과했다. 이미 사업의 부실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반영한 소비자잉여(Consumer Surplus)는 치명적인 오류이다. 광역망 열도매가격 61,000원/Gcal에 1.71을 곱하여 도매열의 경제적 가치가 104,310원이며, 총 2조 407억원의 열공급편익이 나온다는 주장이다. 현금화되지 않은 단순 이익을 부풀려도 너무 부풀렸다.

KDI에게 묻고 싶다. 소비자잉여를 71%나 반영한 KDI 보고서가 있는지. 경제주체에게 직접 지불의사(Willingness to Pay)를 물어보는 조건부 가치측정법(CVM: Contingent Valuation Method)이 일반적이나, 설문조사도 없이 소비자잉여를 왜곡, 과다 산정한 것은 반드시 검증되어야 한다.

한편 한난의 주장을 보면 광역망이 아니면 수도권에 에너지 대란이라도 일어날 것 같다. 중부발전은 2018년 9월 완공 목표로 800MW의 서울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진행중에 있다. 기존 발전용량 387.5MW(369Gcal/h)를 감안하면 완공시에는 137.8만Gcal/y의 여유열이 발생한다. 이 물량은 광역망 총수요의 87%에 해당한다. 서울 전지역의 열수요가 서울복합 여유열로 공급이 가능한데 왜 수천억원을 투자하여 광역을 건설해야 하는가?

아라뱃길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 시장은 이미 잘 가동되고 있는 만큼 국민 혈세만 낭비하는 중후장대한 광역망은 불필요하다. 공정경쟁 촉진을 위해 지역지정제를 폐지하여 소비자에게 연료선택권을 확대하는 방안부터 검토되어야 한다. 그린히트 프로젝트는 훌륭한 발상이며, 한난은 국내 시장의 약 60%를 점하는 집단에너지전문 공기업이다. 을지문덕장군이 수나라 장군 우중문에게 보내 오언시가 생각난다. 욕심을 버리고 본연의 사업에 충실해 주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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