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 수요-공급 인프라 갖추고도 이용률 제로화
집단에너지 열병합은 변경허가…속타는 발전공기업

▲ 동서발전 일산열병합발전소 항공사진

[이투뉴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와 성남시 분당구 일대는 1990년대 수도권 택지개발과 동시에 조성된 대표 1기 신도시다. 도시개발 이후 십수년만에 크게 성장해 현재는 각 구(區)인구만 50만명을 헤아린다. 이들 도심 한복판에는 1992~1996년 운영을 시작한 열병합발전소 두 곳이 있다. 동서발전 일산열병합과 남동발전 분당열병합이다.

열병합발전소는 도시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심장과 같은 존재다. 발전사와 지역난방공사의 협업을 통해 주택·상업·공공시설에서 사용하는 대량의 전력과 온수 및 난방열을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일산·분당열병합은 수요지와 맞붙어 있어 전력·열 수송에 따른 효율손실이 가장 적은 이상적 입지를 갖췄다.

하지만 신도시 성장의 양분을 제공해 온 이들 열병합은 최근 개점휴업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일부 발전기는 올해 전력피크 기간에도 한번도 발전기를 돌리지 못했다. 부지와 송전선로, 열배관 등 최적의 인프라와 안정적 수요처까지 완비한 이들 발전소가 이처럼 파행 운영되는 배경은 무엇일까. 효용가치가 높은 국가 전력시설을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할까. 

일산·분당 열병합발전소 사실상 개점휴업
결론부터 말하면 일산·분당 열병합발전소 개점휴업 사태의 1차적 원인은 설비 노후화에 있다. 우선 일산열병합은 1994년(1호기 600MW)과 1996년(2호기 300MW) 준공돼 각각 21년, 19년째 가동중이다. 분당열병합(1호기 574MW, 2호기 348MW)은 1992년과 1995년 발전을 시작해 1호기의 경우 무려 23년을 돌렸다. 가행 국내 열병합중 최고령이다.  

노후 설비다보니 효율은 낮고 발전원가는 높을 수밖에 없다. 일산 1,2호기와 분당 1호기는 41%대, 분당 2호기도 43%를 넘지 못한다. 55%대 효율을 자랑하는 최신 복합화력과 비교된다. 국내 LNG복합·열병합 70여기와 함께 효율 및 원가경쟁력이 높은 순서대로 일렬로 세우면 가까스로 60위권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노후화로 급전순위가 뒤로 밀리면서 신세는 더 처량해졌다. 경제급전 원칙에 따라 가동기회는 줄고 설비수명에 악영향을 주는 기동정지만 빈번해 진 것이다. 지난 5월 기준 분당열병합의 주기기 누적 운전시간은 설계수명(20만 시간)에 바짝 다가선 17만 시간(1호기), 15만 시간(2호기)에 달한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1년 전에는 그래도 하루에 두어번 기동·정지를 하는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하계피크때도 급전지시를 받지 못해 연중 정비만 해대고 있다”고 했고, 또 다른 발전사 관계자는 “일년 내내 세워 뒀다가 날이 추워지면 돌리는 난방용 열원설비로 전락한 지 오래”라고 한탄했다.

상황은 최근 1~2년간 저원가 신규 기저발전기 시장진입으로 악화일로다. 본지가 집계한 각사 발전기 이용률에 따르면, 일산·분당열병합(각 1,2호기순)의 올해 1~8월 평균 이용률은 각각 8.51%, 21.30%, 18.43%, 35.09%로 2013년 대비 반토막이 났다. 지난 8월 전력피크 때 단 몇시간만 가동된 뒤 지금까지 멈춰선 발전기도 있을 정도다.

이용률 하락은 SMP(전력시장가격) 하락과 동반해 발전사 손익에도 악영향을 줬다. 실제 일산열병합의 최근 3년간(2011~2013년) 매출원가는 전력판매수익과 열판매 수익보다 높다. 용량요금(CP)으로도 운영비 보전이 안돼 최근 수년간 적자를 냈다. 현재 각 발전소는 협력사 인력을 포함해 200~25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데, 경상경비 지출액은 발전소 이용률이 높든 낮든 큰 차이가 없다.

A 발전소 한 임원은 "본사 입장에서 보면 우리 사업장은 수익을 못내거나 까먹는 애물단지일 것"이라며 "노후설비라 고장 사고가 나지 않도록 더 신경을 써야하는데 가동률이 낮다보니 본사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고 직원들 사기도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 성남시 분당구에 소재한 남동발전 분당열병합발전소 야경.

전기·열 판매수익보다 비싼 원가…설비대체 시급
신도시 수도권 열병합들이 터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고충은 이뿐만이 아니다. 일단 노후 발전설비는 기계적 수명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아 고장정지는 물론 안전사고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신도시내 발전소 고장·사고는 단순한 전기·열공급 장애와 수선유지비 등의 문제를 넘어 인접 주거지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설비 노후화는 주민수용성과 환경성 측면에서도 걸림돌이다. 일산열병합의 경우 20년이 경과한 노후 외관이 주변환경과 부조화를 일으켜 다양한 형태의 민원요인이 되고 있고, 분당열병합은 인접주민을 위한 별도 편의시설을 확충하려해도 기존 부지 배치로는 공간 확보가 어렵다. 향후 대기환경배출기준 강화에 대응해 낡은 설비에 별도의 환경설비를 갖춰야 하는 상황도 이들 발전소로선 부담이다.

이 때문에 이들 열병합발전소는 적기에 기존 설비 대체 건설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후설비를 고효율 최신설비로 교체할 경우 효율상승에 따라 이용률과 수익성이 제고되고, 이 과정에 자연스레 환경성과 주민수용성이 개선돼 기존 현안들을 일거에 해소될 것이란 판단이다.

발전사들은 ▶기존 부지와 송전선로, 열배관 등 인프라 추가개발 불필요 ▶주변환경과 부합된 미래지향적 디자인 적용과 주민개방형 시설 확충 가능 ▶효율 향상에 따른 전기 및 열공급 단가 인하 여력 확보 ▶저탄소 고효율 LNG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과 최신설비의 우수한 오염물질 저감효과 등을 노후열병합 대체사업의 당위성으로 들고 있다.

발전사 관계자는 "국내 열병합은 대체와 관련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사전에 장기 가동설비 교체계획을 수립하는 게 어렵고, 제때 준비하지 못해 훗날 기존 수용가에 대한 열공급 차질이 발생할 우려도 높다"면서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해법과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발전사 관계자도 "수도권 열병합은 가스공사, 한난, 발전공기업 등 3개 기관의 역할이 융합돼 기능을 발휘하는 곳으로, 정부가 도심 노후 열병합의 역할과 중요성을 재정립하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후 열병합 대체를 지역에너지 자립도 제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다른 발전사 관계자는 "수도권 열병합은 국내 제1 수요지에 있는 공급-수요 일치형 분산전원이자 저탄소 발전원"이라면서 "도심내 신규 발전소 확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노후 발전소 활용도를 높여 지역내 자급률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후 열병합 대체건설 명확한 기준 부재
한편 노후 열병합 대체에 관한 명분과 실리는 이처럼 분명한 반면 인·허가 기준 등 법제적 규정은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 않아 사업자들의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수도권 열병합은 같은 시기에 건설돼 같은 역할을 하는 발전소라도 소유주체에 따라 소관법과 대체건설 승인 절차가 달라진다.

동서발전과 남동발전처럼 발전공기업 소유 열병합은 전기사업법 적용을 받아 까다로운 전력수급계획 심의와 인·허가를 거쳐야 하지만, 나머지 안양·부천 등 민간소유 열병합은 집단에너지 시설로 분류돼 변경허가만으로 대체건설이 가능한 것이 대표적 예다. 실제 분당열병합은 6, 7차 수급계획 당시 대체공사 후 기존 발전소 폐지를 골자로 하는 건설의향을 연이어 냈으나 주민동의 절차 미비, 수급계획상 필요물량 초과 등을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반면 집단에너지사업 지위를 누리는 위례·마곡·동탄2·청주열병합 등은 2013년 이후 수차례의 변경허가를 통해 대체건설이나 용량증설을 관철시킨 사례가 있다. B발전사 전원계획 담당자는 "정부가 7차 계획에서 노후 석탄에 대한 대체기준을 새로 정립했듯 열병합도 관련법을 초월하는 규제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예측 가능한 수급계획 수립이 가능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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