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구체적인 감축수단·대안 없어 비용증가 요인만 산재
정부-미래위해 강력한 감축목표 선택 불가피, 생각 바꿔야


“정부가 생색 내려다 과속…국가적 부담 초래”
발전-에너지 부문이 대부분의 감축 떠안아, 요금상승 대책은?

[이투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5일 백악관에서 열린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기후변화 대응책으로 2017년부터 중국 전역에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키로 합의했다. 기후변화 대책은 그간 오바마 대통령이 핵심 국정 과제로 추진했던 현안으로,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등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나서기로 약속한 바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직 눈치를 보고 있기는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모양새를 띠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1)에서 새로운 기후체제 협정문이 타결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오는 2030년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배출 전망치(BAU) 대비 37%로 확정하고, 지난 6월 이를 UN에 제출했다.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정도로 높은 목표치다. 이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과연 합당한 지 여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체면을 세우기 위해 과도한 목표설정을 했다며, 현실성이 없을 뿐더러 많은 비용부담을 초래한다며 비판한다.

실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25.7%를 감축해야할뿐더러 11.3%는 해외에서 탄소배출권을 사다가 충당해야 한다. 아울러 산업계 의무 감축량을 BAU 대비 12%로 한정해 나머지는 사실상 발전·에너지업종에서 줄여야 한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 부담 중 대부분을 결국 국민이 에너지요금상승 형태로 떠안아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기후변화 대응은 당장 돈이 드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우리가 앞장서야 할 이유가 있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기후변화 대응을 환경규제로만 보지 말고 세계적인 정치·경제흐름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어렵다고 이 흐름을 거스를 경우 나중에는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 정부와 환경론자들의 주장이다.

▲ 우리 정부가 내놓은 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너무 과도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지나치게 과도한 감축목표 '한국이 봉'
우리나라가 지난 6월 신기후협약인 ‘포스트2020’을 대비해 내놓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잠잠하던 산업계가 다시 발끈하고 나섰다. 역사성이나 미래 측면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큰 미국과 중국 등은 살짝 물러섰는데 우리만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과도한 감축목표가 산업계에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국제적인 신뢰마저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감축 방식이 다른 주요국들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동일한 기준으로 변환, 분석한 결과 한국의 감축 목표가 28%로 가장 높다고 분석했다. 오는 2030년 BAU 대비 우리의 감축목표는 멕시코(21%)보다 높았고 캐나다(11%)의 2배, 미국(8%)의 3배, 일본(3%)의 9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중국(9%)과 러시아(53%)는 감축은커녕 온실가스 배출이 더 늘어나는 목표를 제시했다는 진단도 나왔다.

▲ bnef가 분석한 각국 온실가스 감축목표 비교.

BNEF의 분석이 나오자 정부가 온실가스를 2030년 BAU(8억5060만톤CO2-e) 대비 37% 감축하는 안을 유엔에 제출한 것이 과도했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당시 확정안은 정부가 기존에 제시했던 4개안(14.7∼31.3%)보다 강력한 수치로 이미 의견충돌이 예견된 바 있다. 특히 감축 목표 가운데 11.3%는 해외에서 배출권을 사들여 충당한다는 계획 등 무리한 내용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 재계의 지적이다. 정부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협조요청(?)’에 방향을 선회했다는 해석도 많다.

정부 감축목표를 비판하는 것은 과도한 목표설정이 결국 산업계와 국민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시 목표량의 11.3%를 외부에서 사와야 하고 나머지 25.7%의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원전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명확히 하는 등 원전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신규원전 건설에 대해 반대목소리가 커 확대가 어려운 상황이다. 신재생에너지 역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는 있지만 10∼20년 안에 전통 에너지원을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따라서 재계는 정부의 이 같은 규제가 오히려 국익에 해로 작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 등은 탄소배출권 거래제 시행으로 이미 외국인 투자기업들의 연구개발 프로젝트 유치에 차질을 빚었고, 신규 설비투자 보류와 생산량 감축 등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전한 바 있다. 투자 위축과 함께 국내 제조업계의 비용 부담도 만만찮다. 중국 저가제품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철강, 반도체·디스플레이, 정유·화학 등의 수출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의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이번 감축목표는 폼을 내려다 너무 앞질러 간 것으로 두고두고 나라 전체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배출권거래제 시행 이후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과 향후 달성목표를 위한 세부방안 등을 점검, 보완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온실가스 감축의무 발전부문에만 산더미
어마어마한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에 따라 가장 코앞에 문제가 닥친 업종은 바로 발전·에너지 분야다. 국내에서 발생되는 온실가스의 절반 이상은 발전업계에서 나오고 있어 정부의 감축목표 달성 여부는 발전업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의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중 산업 부문의 감축률을 경제환경 측면에서 12% 내로 제한하기로 함에 따라 발전 부문이 감축률의 30% 이상을 감당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초 정부가 인정한 발전 부문의 온실가스 할당량은 7억3585만톤으로, 발전·에너지 업종 38개사가 신청한 10억1068만톤을 감안하면 평균 감축률은 27% 정도였다. 그러나 산업 부문의 반발로 불똥이 발전 부문으로 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최소한 1억t 이상의 이산화탄소 감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발전부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IGCC(석탄가스화발전)나 CCS(이산화탄소 수집-저장-활용) 등이 요구되나 아직 기술 및 경제적인 측면 모두 걸림돌이 많다. 관련 기술개발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으나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데다 무엇보다도 경제성이 턱없이 부족해 많은 정부지원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보급이 불가능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당장 기저발전원인 석탄화력이 최대 타깃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연구자료에 따르면 탄소발생량을 BAU 대비 30% 이상 감축시키려면 현재 전체 발전 설비의 28.2%를 담당하고 있는 석탄화력의 발전량이 55% 수준으로 감소되어야 한다. 현재보다 45% 가량 석탄화력의 발전량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뚜렷한 해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의 정책처럼 원전ㆍ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발전원의 비중확대가 이뤄진다면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있겠으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원전은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신재생에너지는 대규모 용량 증가가 힘든데다 입지선정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고려할 경우 최종적으로 석탄화력의 감발 물량을 LNG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얼마전 갑자기 등장한 '석탄과 LNG간 연료전환(LNG발전 우선 후 부족분을 석탄발전)' 방안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비용이 발생한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으로 석탄과 LNG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GWh당 각각 949톤과 390톤 가량이다. 반면 연료비용은 석탄이 훨씬 낮아 연료전환 시 1㎾h당 16원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추정이다.

LNG와 석탄발전의 급전순위 변경은 지금까지 국내 전력경제를 이끌어 온 경제급전 원칙을 완전 바꿔야 하는 문제로 발전비용 상승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발전원가가 가장 싼 발전기부터 가동해야 하는데, 석탄발전을 제한하고 LNG를 돌리기 위해선 수많은 제도와 규정을 바꿔야 한다. 연료전환은 향후 설비투자 유인 측면에서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으며, 전력시장구조 전체를 흔들 수도 있다는 진단이다.

여기에 집단에너지업계는 열병합발전의 경우 원천적인 온실가스 저감시설인 만큼 반드시 이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산업단지 열병합발전업체의 경우 과도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산업경쟁력과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일반 석탄화력과는 확실하게 차등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GS E&R 관계자는 이와 관련 "산단 열병합의 경우 스팀의 가격경쟁력 때문에 불가피하게 석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정부가 앞으로 석탄화력에 십자포화를 퍼부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너무 석탄만 온실가스 주범으로 몰아붙여선 안될 것이며 설비특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국회서도 '정부 마땅한 대응방안 없다' 맹공
온실가스 감축문제는 올해 국감에서도 이슈로 떠올랐다. 환경부와 산업부 국감에서 다수 의원들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감축방안이 있느냐고 따지고 국민부담으로만 전가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장윤석 의원(새누리당)은 “포스트 2020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목표를 설정했지만, 마땅한 수단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결국 석탄화력을 줄이거나 석탄화력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진복 의원(새누리당)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올해부터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됐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마땅한 수단이 없는데다 배출권 거래 실적도 거의 없다”며 “결국 탄소배출 감축 이행비용은 국민들의 전기요금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고 따졌다. 홍영표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역시 “목표는 정부가 설정해 놓고, 그 부담은 결국 국민에게 떠넘기는 게 무슨 정책”이라며 “지금부터 철저히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산업정책관도 발전업종이 감축에 적극 나서야 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어려움을 인정했다. 그는 “발전사들에게 주어지는 감축의무량은 도전적인 목표가 될 것이고, 현실적으로 이를 달성할만한 획기적인 수단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유엔에서 신기후체제가 본격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전략을 모두 공개할 수 없다며 해외 배출권 확보방안 등 구체적인 실행계획에 대해서는 조금 기다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련주 국무총리실 국정운영실장은 "오는 12월까지 전 세계 국가와 협상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부 검토자료 및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공개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정부가 국제협상 핑계만 댈 것이 아니라 발전-에너지업종을 포함한 산업계와 하루빨리 진지한 논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부에서는 유엔에 제출한 장기감축목표를 철회, 우리 현실에 맞는 감축목표를 다시 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울러 국제적으로 공표된 감축안을 물리기가 힘든 상황이라면 이제는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나중에 발생할 혼란을 막을 것이란  지적이다.

여기에 온실가스 감축논의가 이해당사자들만의 밀실협상에서 벗어나 국민 전체가 공감하고 호응할 수 있도록 논의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쏟아지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문제는 최종적으로 비용부담과 실행에 나서야 하는 국민의 뜻과 의지에 성공여부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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