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루시ㆍ러시아 에너지전쟁…유럽 '전전긍긍'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란 말은 벨로루시와 러시아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한 때 같은 국가였던 이 두 나라는 최근 불거진 에너지 전쟁으로 서로 등을 돌렸다.

문제의 단초는 양국 간 무역마찰 때문이었다. 러시아는 지난해 말 베로루시에 천연가스 가격인상을 포함한 5개년 계약을 맺을 것을 사실상 강요했다. 이를 거부할 경우 지난 1일 오후 4시(현지 시각)를 기해 벨로루시에 대한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사실 러시아는 지난해 1월에도 우크라이나와 천연가스 가격 분쟁으로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한 바 있다. 
 
울며겨자먹기로 벨로루시는 1일 시한 마감 직전 러시아의 강요에 무릎을 꿇었다. 천연가스 1000㎥당 47달러에서 100달러로 올리는 조건으로 러시아 국영기업인 가즈포롬과 5개년 수급계약을 맺는데 합의했다. 가즈포롬은 애초 200달러를 요구했다가 협상 막판에 105달러로 요구 가격을 낮췄었다.
반대급부로 벨로루시는 유럽지역으로 공급하는 러시아산 가스의 벨로루시 통과 수수료를 1000㎥당 0.75달러에서 1.45달러로 올려받기로 합의해 가스가격 인상분을 보충할 수 있게 됐다. 
 
이쯤에서 양국의 무역마찰은 상식선에서 매듭짓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 있을 에너지전쟁의 불씨에 불과했다.
 
러시아는 더 나아가 벨로루시로 수출하는 자국산 원유에 1톤당 180달러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기존 비관세제도의 혜택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값싸게 구입, 이를 석유제품으로 가공해 수출하는 것이 주요 산업인 벨로루시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더욱이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센코 대통령의 안정적 지지율은 값싼 러시아산 원유의 안정적 수급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루카센코 대통령은 자국 경제뿐 아니라 자신의 자리마저 위태롭게 만든 러시아측의 주장을 당연히 수용할 수 없었다. 이에 루카센코 대통령은 자국 내 러시아 송유관을 통과하는 원유 1톤당 45달러의 통행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러시아는 마직막 친구를 잃었다"고 강하게 응수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벨로루시측 조치가 '상대방 동의없이 어느 일방이 통과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1992년 석유공급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이를 수용치 않았다.
 
그러자 현지 시각으로 지난 7일 벨로루시는 자국을 거쳐 독일과 폴란드 등 서유럽으로 자국의 석유를 공급하던 '드루쥐바' 송유관을 차단했다. 드루쥐바 송유관은 벨로루시를 통해 독일과 폴란드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송유관으로 총 길이가 약 4000km에 달한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공급되는 석유의 25%(하루 120만 배럴) 정도를 담당한다.

러시아도 즉각 보복조치를 취했다. 러시아는 8일(현지 시각) 이 송유관으로 보내던 원유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러시아는 벨로루시가 송유관의 원유를 강탈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러시아 국영 송유관회사인 트랜스네프트는 벨로루시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7만9000톤의 원유를 송유관에서 몰래 빼냈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한 보상 전까지 원유 공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벨로루시 대표단은 8일 밤(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았지만 "협상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러시아 쪽 답변만 들었다.
러시아는 벨로루시를 경유하는 드루쥐바 송유관이 아닌 다른 루트로 유럽에 대한 석유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9일 밝혔다. 트란스네프트는 "우선 프리모르스크 송유관(발트 파이프라인 시스템)의 수송량을 1일 최대치인 154만 배럴까지 늘렸다"고 말했다. 프리모르스크 송유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최북단 항구도시인 프리모르스크까지 연결되고 여기서 선박으로 폴란드ㆍ독일로 석유를 수송한다.
 
양국의 에너지전쟁이 당분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유럽 국가들이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러시아의 원유 공급 중단은 유럽 국가들에겐 직격탄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폴란드는 원유 수급의 96%를, 독일은 3분의 1을 각각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과 폴란드는 유조선을 통한 러시아산 원유 수급 등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의장국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9일 "러시아가 석유공급 중단을 미리 통보를 하지 않아 신뢰를 무너뜨렸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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