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수준의 제품·합리적인 지원시스템이 절실하다"

▲ 손충렬 부회장

[이투뉴스] 손충렬 세계풍력에너지협회(WWEA) 부회장은 초창기 우리나라 풍력산업을 이끈 1세대 중 한명으로, 국내 풍력산업의 태동과 성장을 모두 곁에서 지켜본 학자다. 현재 한국풍력산업협회 자문위원과 인하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 WWEA 부회장에 재선임된 손 부회장에게 국내 풍력산업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물어보았다.(관련기사 : 손충렬 풍력산업協 위원, 세계풍력에너지협회 부회장 재선임)

우선 열악한 상황에 빠진 국내 풍력산업의 과거부터 되짚었다. 한국화이바가 블레이드와 터빈을 제작한 시점부터 로템·효성·두산·유니슨이 참여한 정부 R&D사업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초기 국내 풍력산업과 그 실패에 대해 손 부회장은 “당시 종사한 사람 모두에게 매우 쓰라린 아픔”이라며 굳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업체는 많은 제품을 설치하기 위해 정부에 트랙레코드 확보를 위한 풍력단지 확대를 요구하나, 현 시점에서 품질이 더욱 중요하다. 실제 풍력시스템을 운영한 결과 ‘효율이 매우 뛰어나다’라거나 ‘유지·보수가 탁월하다’는 외부 평가를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부회장에 따르면 풍력단지 개발을 위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조성 시, 국내 금융사가 국산제품 기피를 이유로 거부하는 사례가 많다. 발전공기업이 아니라면 외산보다 비싸고 효율·안전성은 떨어지는 제품을 살 이유가 없다는 설명.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부족하니 실제 국산 풍력단지에서 외산의 강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다. 금융사가 국산제품 설치를 위해 일정비율 외산 채택을 종용하는 게 국산 풍력시스템의 품질이고 현실이다.

손 부회장은 “처음 풍력발전기를 개발·운영할 때 당연히 문제가 발생한다. 초기 대기업들이 간과한 건 ‘사람’과 ‘시간’이다. 친환경·녹색에너지를 주창한 MB정부가 밀어주고 거대한 유럽·일본·미국시장이 아른거려 과감히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비싼 돈을 주고 설계도면과 타워, 기어박스 등을 모두 수입해 ‘그림’만 맞춰놓았다”고 비난했다.

이어 “처음 설치한 제품이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자연은 우리 예상과 항상 다르다. 독일 같은 선진국도 제품설치 후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필요했다”며 “처음 한 두기를 설치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모두 달라붙어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계소리만 들어도 문제를 알아내는 ‘장인’수준의 엔지니어가 태어나고 경험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다. 대기업은 빠른 수익창출을 위해 비용을 들여 높은 클래스의 제품을 만들었지만, 결국 시간을 앞당긴 게 아니라, 잃어버린 꼴이 됐다”고 말했다.      

손 부회장은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R&D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시장이 흘러갈 수 있는 합리적인 지원시스템을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 손 부회장에 따르면 독일은 본래 수익성이 부족한 신재생에너지를 산업으로 일구기 위해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거쳐 발전차액지원제도(FIT) 도입을 결정했다.

독일의 경우 초기 수년 동안 검토를 통해 처음에는 높은 수준의 보조금을 주었다가, 이후 ‘0’에 가까운 지원만을 하고 있다. FIT도입 시 15년 동안 단일한 보조금을 주었던 우리나라와 다른 결정이다.

손 교수는 “풍력단지별로 수익성에 대한 다각화된 검토를 통해 업체가 5년 또는 10년 내로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는 기간을 산정, 매년 보조금을 낮추고 경쟁력이 확보된 시점에서는 ‘0’에 가까운 지원만 하고 있다. 사업 초기, 업체의 부족한 투자여력을 고려해 높은 보조금으로 어려움을 상쇄해주고 추후  점차 보조금을 줄여가는 것이다. 물론 효율이나 기타성능은 업체가 책임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초기 높은 투자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전기산업기반기금이라는 정해진 재원에서 단편적인 지원만을 해왔다”고 꼬집었다.

특히 손 교수에 따르면 독일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사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생산단가가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중앙집중형 전원공급이 아닌 분산형 전원 정책을 적극 밀어주고 있고, 정부가 분산전원 중심 정책을 진행하면서, 일반시민들도 자연스럽게 조합이나 단체를 통해 대규모 자금조달을 할 수 있게 됐다. 한 업체가 대규모 PF를 일으키는 우리와는 다른 사업구조다. 이는 정치와 정부가 신재생에너지산업 성장을 위한 배경을 만들기 위해 정책의 흐름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손 부회장은 “요약하면 정치권이 우선 중압집중형방식보다 분산전원에 무게를 실어줘야 전체 그림이 나오고, 관련 부처는 R&D만 치중하지 말고 시장이 흐를 수 있도록 세부적인 시스템을 구성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업체는 우수한 엔지니어를 길러내고 반드시 명품을 만들어야한다”고 역설했다.

끝으로 손 부회장에게 WWEA 부회장으로서 포부를 물었다. 손 부회장은 “WWEA는 제 3국가나 개발도상국을 중심의 구성체다. OECD 국가는 많지 않다. 이곳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업체들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솔직히 WWEA 회장단 활동을 통해 우리 정부가 풍력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WWEA에는 같은 민족인 북한이 소속돼있다. 분산전원을 매개로 열악한 그들의 전력사정을 개선하고 참여를 촉진해 세계무대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최덕환 기자 hwan0324@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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