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경제학 박사)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경제학 박사)
[이투뉴스 칼럼 / 이창호] 3년 전 이맘때 전기요금체제 특히 주택용 누진제 개선에 대해 많은 논의와 방안이 제시됐었다. 핵심은 과도한 주택용 누진제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오랫동안 유지돼온 왜곡된 요금구조를 바로잡는 것이기에 누진제의 완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지만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주택용 전력에 대한 과도한 누진제는 전기가 턱없이 부족하던 70년대에 만들어진 제도다. 일반 국민의  전기소비를 강력하게 억제하는 일종의 에너지절약 수단으로 시행됐으나, 지금의 전력여건이나 환경은 그때와는 판이하게 변했다. 누차 지적됐지만 과도한 누진제의 문제점은 소비자에 대한 심각한 가격차별로 정당성이 없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누진제를 시행하는 나라 자체가 많지 않으며, 우리와 같이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누진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 일본, 대만 등에서 시행한다고 하나 블록간의 요금격차는 1.1∼3.0 수준으로 그리 크지 않다.

우리나라가 일인당 전기소비에서 대부분의 유럽국가나 일본보다도 높은 전력다소비국가이지만, 주택용 수요만 보자면 미국의 4분의 1, 프랑스 일본의 2분의 1, 영국 독일의 60∼70% 수준에 불과한 저소비국이다. 당연히 주택용 비중도 전체수요의 약 13% 수준으로 미국 37%, 일본 31%, 프랑스 40%, 영국 38%, 독일 24% 등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다. 주거형태, 기후, 기기보급, 사용습관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누진제에 따른 영향이 클 것이다. 최근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전기요금 수준은 kwh당 약 110원 정도이고 주택용은 이보다 높은 125원 수준이다. 그러나 통상 3, 4인 가구의 경우 월평균 300∼400kWh를 사용한다고 보면 실제 지불하는 요금수준은 150∼200원/kWh로 훌쩍 올라가게 된다. 여름이나 겨울철에 냉방이라도 하게 되면 그 보다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일부에서는 누진제로 인한 전기절약 효과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수요비중이 적은 일반 가정에만 절약을 요구하는 것은 형평성이나 효과측면에서 당위성이 높지 않다. 오히려 누진제로 인한 전력소비 왜곡, 에너지원 간, 용도 간 교차보조 등 부작용이 더 크다 하겠다.

특히 지금처럼 설비예비력이 충분함에도 전기사용을 억제하는 것은 수요관리가 아니라 사용 규제나 다를 바 없다. 더구나 현재와 같은 단순 계량방식으로 인해 저렴한 설비가 충분한 시간대인 저녁이나 공휴일에도 전력사용을 제약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불편을 감내하게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누진제가 장기간 시행된 때문인지 이를 바로 잡는데도 상당한 장애요인이 있는 것 같다. 전력회사는 수익감소 문제를 내세우고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등에서는 소득계층 간 형평의 문제로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문제도 짚어보아야 하지만 이는 요금구조의 정상화라는 본래의 테두리 안에서 얼마든지 보완조치를 통해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금은 누진제를 개선하기에 상당히 좋은 시기다. 우선은 전력회사가 안게 되는 수익감소의 부담이 적다는 것이다. 3/4분기 현재 한전의 영업이익이 8조7000억원에 달한다고 하니 연내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수익이 너무 많은 걸 고민해야 될 상황이다. 주택용 누진효과의 축소로 수익이 다소 줄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 같지 않다.

다음으로 전력수급문제인데 요즘 들어 전력수급을 거론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설비가 남아돌아 발전기가 안돌아간다고 걱정하는 지경이다. 누진제 완화로 인해 수요가 다소 늘더라도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수급불안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특히 주택용 전기절약이 전력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으로  피크시간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전력소비 증가에 따른 우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누진제 완화의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기 보다는 서서히 나타날 것이므로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서 거론한 소득계층간의 형평성 문제다. 일부 전력 다소비자가구가 부담하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요금이 낮아진다고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훨씬 많은 대부분의 가구에서 좀 더 저렴하게 전기소비를 할 수 있다는 긍정의 공감대가 더 크지 않겠는가? 이는 소수가 얻는 부담감소의 불편함보다는 소비자 대다수가 얻는 편리함과 혜택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누진제의 단계와 폭은 줄이면서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제도개선을 한다면 이를 반대할 명분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진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이에 대한 보완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수급측면에서는 수요자원을 더욱 확대하거나 피크요금제와 같은 수요관리형 요금제 도입을 통해 제도적 안전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더욱 늘릴 필요가 있다면 이 또한 기존 제도의 확대나 새로운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하면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누진제 개선을 망설일 이유는 없다. 전력수요를 인위적으로 억지하고 감성으로 대응하는 접근으로는 어떠한 성과도 얻기 어렵다. 이제는 어지럽게 헝클어진 요금체제를 새롭게 추스르고 오랜 세월동안 주택용에 채워졌던 누진제의 굴레를 걷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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