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에너지산업 우울한 혼돈 속으로
[칼럼] 에너지산업 우울한 혼돈 속으로
  • 노동석
  • 승인 2015.12.2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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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투뉴스 칼럼 / 노동석] 자주 돌아오지도 않는데 칼럼 주문이 오면 골머리가 아프다. 글재주가 없기도 하지만 써야할 소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소재의 가뭄은 공부가 부족해서 자신감이 없기도 하지만, 칭찬의 달콤함보다는 돌아올지도 모르는 비난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칼럼 몇 차례 썼더니 어느새 연말이다. 작년 말부터 불어 닥친 유가급락과 에너지가격 하락, 에너지수요 부진과 전력·가스수급계획, INDC(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COP21이 올 한해 에너지업계의 화두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영덕 천지원전에 대한 주민들의 투표과정과 결과도 큰 관심사 중 하나였다.

에너지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30년 넘은지 오래지만 요즘과 같이 예측불가의 혼돈 상황은 처음이다. 에너지소비는 언제나 예상보다 높게 증가하고 에너지시설은 늘 부족해 온 타성에 젖은 탓이다. 반전은 3~4년 전부터 시작됐다. 에너지소비가 예상에 비해 지지부진한 증가세를 보인 것. 2000년 이후 십년간 에너지소비는 연평균 2.7% 증가했다. 최근 3년간은 그 반 토막에도 못 미치는 1.3%에 그쳤다. 올 들어 8월까지는 작년대비 0.4%만이 증가했다. 그나마 전체적인 에너지소비가 감소하지 않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막막한 경우도 있다. 천연가스 부문은 2013년 연간 소비량 4천만 톤의 정점을 찍더니 계속 내리막길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도 정점의 80%나 소비될까?

산업용이 주류인 우리의 에너지소비구조에서 산업활동은 에너지소비의 결정적 변수다. 얼마전 한국은행은 3분기 GDP 성장률(전분기 대비 1.3% 증가, 잠정)을 발표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 2.7%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발표했다.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그러나 수치가 불만족스럽다. 달성은 못했지만 이전 정부의 747정책(연간 7% 경제성장, 1인당 소득 4만 달러, 세계7대 강국)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경제성장이 부진하니 에너지소비 증가도 둔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더 문제는 경제성장과 에너지소비가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세계 2위의 영국국영석유회사(BP)는 2014.1월 전세계의 GDP의 에너지원단위(에너지/GDP)는 2035년까지 현수준에 비해 36%(연평균 1.9%)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예전같으면 이 현상은 그간 에너지를 방만하게 소비하던, 에너지소비가 이미 포화된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에너지소비가 증가 중인 제3세계에는 해당되지 않는 전망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BP는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신흥국에서도 이 현상이 동일하게 발생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실제 최근 몇 년간 우리가 경험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둔화와 에너지소비, GDP 성장의 상관관계가 약해지는 ‘디커플링’의 진전은 어디까지 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이러다 에너지소비 증가 없이 경제가 성장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겠다.

세계 문화의 중심지 ‘꽃의 도시’ 파리에서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가 열렸다. 이번 회의는 교토의정서 체제가 끝나는 2020년 이후의 ‘신기후체제’가 주요의제다. 전세계 185개국이 INDC를 제출했고, 협상이 끝났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기준안(BAU)의 온실가스 배출전망치 대비 37%를 감축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통령께서는 기조연설에서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다”, “전 지구적 의지와 역량을 결집해 이번 총회에서 ‘신기후체제’를 반드시 출범시켜야 한다”고 표명했다. 산업계는 기후변화대응이라는 말만 들어도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감축시나리오 중 가장 약한 1안, BAU 대비 14.7% 감축도 어렵다는 것이 산업계의 입장이다. 에너지산업으로서는 경제성장 둔화, 디커플링과 더불어 또 다른 악재임에 분명하다. 기후변화대응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에너지절약과 재생에너지의 확대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원자력 비중의 유지 내지 확대이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에너지원간 뿐만아니라, 동일 에너지원간의 경쟁이 이미 치열해진 상황이다. ‘땅집고 헤엄치던’ 시대는 지나갔다. 파이가 늘어나지 않으니 ‘제 몫 키우기’에 나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최근 원자력에 대한 반대가 극심해지는 것도, 또 열병합으로 전환하는 발전전용 가스발전소가 증가하는 것도 ‘제 몫 키우기’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신재생업계는 발전사업자들이 RPS이행을 위해서 석탄발전소에서 우드칩을 섞어 때는 것에 대해서도 규제를 요구한다. 가스발전 사업자들은 전력도매시장의 정산금 인상을 정부에 요구하고, 그런가하면 에너지소비 절감 유도를 위해 에너지가격이 인상돼야 한다는 시민단체 주장에 산업계는 경기(驚氣)를 한다. 규제방향과 에너지정책에 대해 원자력 대 비원자력, 가스업계, 신재생업계 내부에서 불만과 요구가 봇물 쏟아지는 상황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적정 수준을 찾아가려는 노력과 논의는 사라지고 자신이 처한 입장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다 공멸의 수순을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몹시 걱정되는 장면이다.   

업계에는 기업구조조정의 모범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태평양(주)의 사례를, 정부에는 최근 일본정부의 에너지시스템 개혁 추진을 검토해 보십사하고 권하고 싶다. 위기타개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국내 재벌사들이 사업다각화에 열 올리던 1990년대 초반 태평양은 대대적인, 그리고 성공적인 구조조정 시행으로 경쟁력을 확보해 외환위기 속에서도 큰 폭의 매출증가를 시현했을 뿐만 아니라 설화수를 비롯 5개의 메가브랜드를 탄생시키고 일류기업이 됐다. 보수적인 일본정부는 전력사들의 송배전부문 분사화를 의무화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2015년 6월 통과시켜 3단계로 추진해 오던 전력개혁 법안개정을 마무리했다. 뿐만 아니라 가스소매사업 전면자유화, 열병합사업의 요금규제와 공급의무 철폐 등의 개혁을 진행 중이다. 평가를 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에너지사업의 소매자유화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지 확대, 사업자의 사업기회 확대 등 에너지업계의 역동성이 뚜렷이 회복되고 있다. 우리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 버린 알렉산더 대왕의 고심의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우울하다.

희망찬 연말연시에 우울한 글, 독자여러분께 죄송하기 짝이 없다. 짧게 무책임한 덕담 한마디. “대도무문, 만사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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