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공백 막았다' 한 목소리…이제부터가 시작
INDC ‘진전 원칙’에 기대, 검증방식 보완에 집중해야


‘화석에너지시대 종말 vs 눈가리고 아웅’ 엇갈려

[이투뉴스] 지난 연말 회의를 하루 연기까지 하면서 파리 협약이 극적으로 타결되자, 국제사회와 각국 지도자들은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특히 앞장서 파리협약 타결을 촉구하던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승리를 만끽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협정 체결 직후 성명을 내고 “지구를 구하기 위한 최선의 기회”라며 “전 세계를 위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언론은 협정 타결로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또 한 번 큰 승리를 거뒀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공화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기후변화 대책을 핵심 어젠다로 설정하기 위해 공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이번 협정 체결로 “생명줄을 얻었다”고 환영했다. 그는 “파리협정이 전 세계의 청정에너지 전환을 이끌 것”이라고 덧붙였다. 협정의 숨은 주역으로 꼽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파리협정은 사람과 지구에 기념비적인 승리”라며 “역사가 오늘을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도국들 역시 파리협정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의무 부과에도 불구하고 각국이 정한 감축목표 자체에 구속력이 없다는 점에 비교적 만족하는 분위기다. 134개 개도국그룹인 G77의 노지포 음사카토디세코 대변인은 "우리는 모두 하나로 화합했다"고 말해 협정 내용에 별 불만이 없음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중국·인도·사우디아라비아 등 20여 개도국 모임인 LMDC(Like minded Developing Countries) 구르디알 싱 니자르 대변인 역시 "개도국들의 이해가 고려된 균형 잡힌 합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칭찬과 환호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파리협약 체결을 이끈 각국의 외교적인 노력에 대해서는 칭찬이 대다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비관론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한 마디로 구체적인 행동을 담보하지 않은 정치적인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 항국우주국(NASA) 출신의 세계적 기상학자인 제임스 핸슨 박사는 이번 협정이 “완전히 사기”라며 “아무런 행동이 없는 약속일뿐이며 화석연료가 가장 싼 에너지로 남아 있는 한 계속 소비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 우여곡절 끝에 파리협약이 타결돼 전 세계가 지구살리기에 일단 동참했다. 사진은 지난 연말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당사국총회 환경건정성그룹 회의 모습.


◆파리협약 세부 내용과 의미
<글로벌 장기목표> 먼저 감축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사실상 이전 목표와 마찬가지로 2도 이내로 억제하는 방안을 유지하면서도 태평양 도서국가 주장을 일부 수용, 1.5도 이내로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덧붙인 셈이다. 아울러 감축, 적응, 지속가능발전, 빈곤퇴치를 위한 재원 마련에도 합의했다.   

<감축(Mitigation)> 감축의무에 대해 선진국은 선도적 역할을 유지하고, 개도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스스로 결정한 기여방안을 5년 단위로 제출하고 이행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기여방안 제출은 의무로 하되, 이행은 각국이 국내적으로 노력키로 결정함으로써 국제법적인 구속력은 배제했다. 감축유형은 선진국은 절대량 방식을 유지하고, 개도국은 국별 여건감안, 경제 전반을 포괄하는 감축 목표를 점진적으로 채택 독려키로 했다. 더불어 모든 국가가 차기 기여방안 제출시 이전 수준보다 진전되고, 최고 수준의 의욕수준을 반영하도록 했다. 장기전략에 있어서는 모든 국가가 2020년까지 장기 저탄소 개발전략을 제출하되,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 원칙을 부여했으며, 국별 여건 등도 감안키로 했다.

<시장메커니즘> UN 기후변화협약 중심의 시장 이외에도 당사국 간의 자발적인 시장형태도 인정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국제 탄소시장 매커니즘 설립에도 합의했다. 이와 함께 환경적 건전성과 이중계산 방지 등의 원칙을 반영하고, 이행에 필요한 절차, 지침 등은 향후 후속논의를 통해 개발할 예정이다.

<적응(Adaptation)> 모든 국가가 적응계획 수립과 이행 등 적응 행동을 적절히 이행하며, 적응계획과 이행내용 등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보고서를 통해 각국의 적응 정책, 이행사례 등에 대한 정보 공유 등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밖에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 및 피해 대응의 중요성을 인정하며, 향후 관련 분야 국제협력을 강화키로 했다. 

<이행수단 지원>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재원 공급 의무 주체를 설정하고, 향후 지원규모 확대, 재원 지원에 관한 투명성 향상을 규정했다. 공급주체(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는 선진국으로 그들에게는 재원 공급 의무를 규정했으며, 선진국 이외 국가들에게도 자발적인 재원 공급을 장려키로 했다. 재원조성은 선진국의 선도적인 역할과 이전보다 진전된 재원 조성 노력의 필요성을 확인했다.

<기술 및 혁신 메커니즘> 감축과 적응에 있어 기술이 핵심이라는 장기비전을 공유하고, 기술협력 확대와 중장기 전략 마련을 위한 기술 프레임워크를 수립키로 했다. 프레임워크는 기술 개발과 이전을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실질적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수요 평가 및 이를 위한 재정·기술적 지원 등의 촉진을 담당한다. 효과적이고도 장기적인 기후변화대응에 혁신이 중요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하고 이를 위한 R&D 협력 및 기술 접근 확대를 위해 기술 및 재정 메커니즘을 통해 지원한다.

<이행점검 및 이행 투명성 강화> 2023년부터 5년 단위로 파리협정 이행 전반에 대한 국제사회 차원의 종합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ing)을 실시키로 합의했다. 종합점검은 개별 국가 단위가 아닌 전지구적 단위의 감축·적응·재정지원 현황 점검으로 포괄적이며 촉진적 방식으로 시행키로 규정했다. 또 각 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지원에 대해 이행상황을 보고하고 점검을 받되, 개도국에게는 보고 범위, 주기, 검토 범위 등 유연성을 부여했다.

▲ 파리총회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와 윤성규 환경부장관(오른쪽), 윤병세 외교부장관(왼쪽)이 다른 나라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전문가 “파국은 피했으나, 결코 완전하지 않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파리협약은 지금까지 선진국에만 부여하던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모든 나라에 부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교토의정서 이후 공백이 우려되던 지구적인 노력에 다시 불을 붙여 이번 세기말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는 합의를 이뤘다는 데 안도하는 목소리가 많다. 여기에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재정지원에 대해서도 2020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를 조성해 가난한 나라의 기후적응을 돕기로 했다. 인류가 적어도 공동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하고, 합의에 나섰다는 것을 보여줬으며,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기후협상의 분위기 전환에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팽팽한 대립에서 극적으로 합의를 도출한 만큼 파리협약은 극단에 있는 의견들을 중간쯤에서 조정하는 형식의 합의내용이 많았다. 좋게 말하면 합의고, 나쁘게 말하면 ‘짜깁기에 따른 누더기’가 됐다는 표현도 나온다. 특히 전문가들은 파리협정이 ‘파국’은 피했으나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먼저 파리합의문 만으로는 인류가 기후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결코 자신할 수 없다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1.5도 라는 장기목표와 현재 각국이 수립한 감축목표량(INDC)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다. 현재 각국의 감축목표량으로는 2.7도 가량의 온도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1.5도는 고사하고 2도에도 턱없이 못미친다는 얘기다.

여기에 각국이 제출하는 INDC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지 못했다는 점도 파리협약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각국이 정한 자발적 감축목표를 상향시킬 강제 수단도 없고, 국가별 감축목표를 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수 있는 조항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격차를 조정하기 위해 5년마다 검증과 재수립한다는 보완 조항을 만들었지만 5년마다 이를 두고 또다시 대립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신기후체제의 출범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화석연료 시대를 인류 스스로 마감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국제적 합의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제 세계 각국의 정책과 산업, 경제는 저탄소 사회로 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파리협약에 재생에너지 등 지속가능에너지 이용 확대 필요성을 명시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나라 역시 시급한 대책이 요구된다. 우선 정부 목표인 BAU 대비 37% 감축안부터 구체적이고 세심한 이행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협약이 체결된 만큼 과거처럼 개발도상국 범주에 안주할 수 없는 형편이다. 국제사회의 압박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2018년부터 진행될 장기감축목표 실현 방안 및 5년 뒤 목표조정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상향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한 만큼 사전에 대비가 요구된다.

에너지 산업의 대격변도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석탄수입 세계 4위 국가다. 석탄발전 비중은 높은데도 재생가능에너지가 1%대에 불과하다. 석탄화력발전소의 증설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함은 물론 있는 발전소의 가동도 최대 10기 가량 줄여야 한다는 예상도 나온다. 효율이 높은 열병합과 가스복합화력을 늘려 재생에너지 사회로 가기까지의 브릿지 역할도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또 수요관리체제로의 에너지패러다임 변화와 함께 일관되고 합리적인 지속가능에너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 세계가 함께 탑승한 ‘신기후체제’라는 기차가 출발하고 있는데, 많은 우리 기업들이 아직 탈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것도 큰 골칫거리다. 미래를 위해 가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신기후체제의 출범은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은 엄청나다. 정부가 나서 미래변화요인을 소상히 설명하고 앞장서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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