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질식 제·개정도 한계 봉착…통합적 관전 재정비 필요
"에너지 전영역 조망 법·규제로 발전시켜 나가야"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관련 계획과 관련 법제 체제

[이투뉴스] 계획대로라면 제3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18~2040년. 이하 ‘3차 에기본’)은 19대 대통령 선거(내년 12월 19일) 이듬해인 2018년 수립·확정된다. 에기본은 5년마다 수립되는 20년 단위 중장기 에너지정책계획으로, 에너지자원개발-이용(소비)-유통(사업)-에너지원별 기본계획에 이르는 전 분야 관련법의 원칙 및 방향을 담는 최상위 국가에너지계획이다.

그런데 정부는 3차 에기본 수립에 앞서 올해부터 시작해 늦어도 2017년까지는 2년 단위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워야 한다. 또 3차 에기본을 확정하는 이듬해엔 지난해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결정을 미룬 신규원전 2기의 부지(삼척 또는 영덕)도 최종 확정해야 한다. 공교롭게 대선을 전·후로 2건의 굵직한 기본계획과 정책결정 일정이 잡힌 셈이다. 이들 계획이 제때 수립·발표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일정이 다소 지체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신산업 육성 특별법’ 제정 작업도 연내 처리가 시급하다. 정부는 상반기에 공청회를 열어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늦어도 7월까지는 입법 작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3차 에기본 및 8차 전력계획과 궤를 같이하는 차기 에너지이용합리화기본계획·해외자원개발기본계획·장기천연가스수급계획·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집단에너지기본계획 등 유관계획도 때맞춰 도안해야 한다.

3차 에기본·8차 전력계획 줄줄이 대기
법체계 갖췄지만 여전히 개별법 중심

문제는 중장기 에너지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에기본과 각종 기본계획이 2006년 에너지기본법, 2010년 저탄소 녹생성장 기본법 제정 등에 힘입어 나름의 상·하위 체계와 정합성의 토대를 구축했음에도 여전히 개별법 중심으로 수립·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체계적인 법제·법령 정비가 이뤄지지 않아 신기후체제 출범과 같은 외부 환경변화 대응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중장기 에너지계획을 만들 때마다 ‘100년 대계(大計)’를 운운하지만 현실은 ‘닥친 뒤에야’ 허겁지겁 급조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이같은 정책의 후진성은 일차적으로 에너지 문제를 안정적 수급 측면에서만 접근해 온 정부 정책과 오랫동안 그런 정책에 익숙해진 국민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국제유가 폭등, 전력 수급난 등 위기가 터질 때만 반짝 관심을 쏟을 뿐 에너지는 항상 정치,경제,사회 문제보다 후순위로 다뤄져 온 게 사실이다. 풍부한 에너지·자원을 보유한 자원부국도 국가 핵심 어젠다로 다루는 문제를 에너지빈국이자 다소비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가 산업경쟁력과 물가에 영향을 끼치는 부차적 문제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은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관점에서 해법을 찾지 않고 단기적이고 즉흥적인 시책 동원에 역량을 소진해 왔다. 유가가 폭등하자 투기하듯 해외자원개발에 뛰어들었고, 9.15 순환정전과 전력수급난이 터지자 대규모 발전설비 증설계획을 쏟아냈다. 그 결과 성급한 자원개발은 천문학적 국부유출을, 공급위주 전력정책은 되레 막대한 공기업 부채와 신기후체제 부정합 문제를 초래했다.

에너지·자원 이용을 효율화하고 산업구조를 에너지 저소비형으로 전환하면서 신기후 시대를 준비했어야 하지만, 정치적 부담을 느낀 정부는 근본적인 체질개선과 시스템 변화는 주저하면서 필요에 따라 원별 개별법을 일부 제·개정하는 땜질식 처방을 선호했고 경제주체들이나 국민 역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다. 일각에선 부처별·소관 사업별·기관별로 분리된 현행 개별법을 각 집단이 업역 및 헤게모니 유지의 보호장치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정부정책 자문역을 맡고 있는 모 교수는 "조직 이기주의가 팽배한 우리나라에서 부처별 협업으로 무슨 일을 해낸다는 것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그래서 경계가 모호한 사업은 여기저기 치이다 힘만 빼고 실패하기 십상이다. 융합산업을 키우려면 규제완화도 중요하지만 부처와 공기업, 관련법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기본법 하위 계획·개별법 '따로따로'
개별법간 칸막이 제거 및 통합 기본법 필요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현재 에너지원이나 사업주체, 기능별로 제각각인 하위 에너지 관련법에 대한 체계적 정비와 관계 재정립 및 선언적인 정책 방향만을 제시하는 상위법(에너지기본법 또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대한 통합적 관점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범정부적인 대한민국의 에너지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명쾌하게 설명될 수 있는 상·하위 법제가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에너지신기술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출하는 에너지신산업이 태동하려면 에너지 관련법의 전반적인 체계 재조정과 개별법간 칸막이 제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승일 서울대 교수는 “우리가 사용하는 법은 100년전 기술로 만든 법률 체계로 에너지신기술에 대한 대응이 현격히 부족하다”면서 “프랑스는 에너지정책과 미래에너지 기술변화에 대응해 정책추진 방법과 절차상의 원칙까지 명시하는 포괄적 법을 법제화 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예로 들면 기존의 법제도는 발전과 송전, 변전과 배전, 수용가가 일방향으로 가면서 중앙집중식 컨트롤도 가능하다고 보는 관점”이라며 “하지만 ESS 등 에너지신산업을 이런 경계선상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기술발달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규제장벽을 완화하는 방향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에너지정책은 물론 에너지생산, 소비, 유통 측면까지 포괄하는 총론적인 상위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광민 법무법인 영진 변호사(산업부 고문변호사)는 최근 논쟁이 된 신산업 육성 관련법 개정 논의와 관련, “결국 신산업도 기존 망과 결코 분리되거나 독립될 수 없다. 자치 별개법으로 가면 규율이나 통일성이 손상될 수 있어 전기사업법 속에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면서도 “하지만 전기분야만 놓고 얘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컨트롤 타워를 격상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총론적인 에너지법이 있고 산업부가 컨트롤타워도 맡고 있지만 그런 법제가 대개 선언적인 규정이며 규범적 측면은 모두 하위법인 각론으로 (규정을)미루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론 지엽적인 법에서 벗어나 광범위한 에너지생산, 소비, 유통 측면까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법과 규제로 발전시켜야 한다. 해외 법제는 이미 에너지시장까지 꿰뚫고 있다는 사실을 곱씹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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