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녕 자원환경경제학박사 /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허은녕
자원환경경제학박사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이투뉴스 칼럼 / 허은녕] 국제유가가 진짜 바닥을 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년 초 50달러 수준이던 두바이유 가격이 20달러대로 떨어진 것이다. 달러화 강세에 의한 영향에다가 투기자금의 영향이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현상일 뿐, 오래 가지 못한다는데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1월 4일에 열린 전미(全美)경제학공동학술대회(ASSA)의 세계에너지학회(IAEE) 세션에서, 전문가들은 조만간 생산과 수요가 맞으면서 국제원유가격이 일정한 가격대로 수렴할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범위가 대략 배럴 당 40~60달러 선일 것으로 전망하였다. 바로 미국 셰일가스의 생산단가이다. 발표자로 나온 민간투자회사 관계자는 앞으로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새로운 투자의 기회가 닥칠 것으로 보고 투자자들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기관들도 2025년에는 국제유가가 다시금 80~100 달러 선으로 회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실 국제 원유가격은 진작 하락을 시작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철, 구리 등 주요 광물가격과 석탄 및 천연가스 가격들은 이미 2011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꾹 참다가 터진 웃음보가 그치기가 더 어렵듯이, 국제유가는 다른 가격보다 오래 높이 있더니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사실 2008년에도 두바이유 가격은 단 5개월 만에 130달러에서 40달러까지 떨어졌었다. 금융위기 때문이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석유수요가 줄었다. 하지만 OPEC은 그해 9월부터 12월까지 세 번에 걸쳐 원유 생산량을 일일 420만 배럴까지 줄이는데 합의하면서 국제유가는 100달러 대에서 안정되었다. 그 영향이 이어져 2014년까지도 국제유가는 OPEC의 힘 아래 고유가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2014년, 미국의 셰일가스업계를 이기기 위하여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에 반대하면서 국제유가는 급락하고 말았다. 올해 초 나온 세계은행의 보고서를 인용하면, “OPEC이 산유량 조절로 가격을 유지하는 전략을 포기하면서 국제원유시장에서 ‘Swing Producer(원유생산량 조절을 통해 국제유가를 조정하는자)’의 역할이 미국의 셰일가스업계로 넘어갔다“. 이게 바로 지금 국제유가가 급락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기술개발로 인한 원가절감효과와 시장의 힘이 지역적 카르텔로 인한 힘과 장벽을 이긴 것이다.

우리나라는, 너무도 당연하게, 국제유가가 낮아지면 이익을 보는 나라이다. 수출하는 물건들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재료와 에너지의 95% 이상을 수입하기 때문이다. 단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여 이익을 보고 있었던 산유국 등 제3세계와 중국의 경제성장 감소로 우리가 수출하는 나라들의 경제사정이 나빠진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한 오랜 고유가로 인하여 우리나라 제조업의 석유 의존도 역시 줄어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 부가가치 100만원을 만들기 위하여 사용한 석유량(석유집약도)은 1997년 0.14TOE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계속 낮아져서 2014년에는 0.07TOE에 불과하다. 1, 2차 석유위기를 겪은 후 전력에서, 난방에서 석유를 원자력과 천연가스 등으로 꾸준히 대체하여왔고, 산업에서도 에너지 이용효율을 높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되었다. 중동의 종교문제로 중동 최대산유국인 사우디와 이란의 사이가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이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시작된 제2차 석유위기와 같이 진행될지, 두 진영 간의 다툼으로 OPEC의 힘이 더욱 약화되는 쪽으로 진행될지는 아직 모른다. 진짜 문제는 우리나라의 중동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라는 것이다. 중동의존도는 제2차 석유위기가 끝나가던 1985년에 57%까지 떨어졌으나, 곧 70%을 회복한 후 2005년 이후 줄곧 80% 이상을, 2011년 이후에는 85%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즉,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의 석유집약도는 내려갔지만, 중동의존도는 높아진 것이다.  따라서 작금의 중동 분쟁은 우리나라에 상당한 위험요소로 작동한다.

이는 절대로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석유를 사용하는 방법이 모두 수명이 긴 장비들을 사용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산업들이 사용하는 생산장비와 상업용 건물들은 물론, 국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자동차나 선박 등 수송수단들은 석유가격이 크게 올랐다고 다른 에너지원으로 당장 바꾸지 못한다. 학계에 알려져 있듯이, 가격상승이 수요를 줄이는데도 한계가 있어 결국 국민의 고통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저유가라고 안심하고는 단기적인 시각에서의 분석이나 진단만으로는 국가경제에 끼칠 불안요소를 극복할 수 없다. ‘수급대책을 점검하고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조’하는 정도로는 80%의 석유를 중동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작은 위기에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저유가로 인하여 이제 국민의 관심이 흐트러질 것이다 지난주 개막한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이미 고급차가 주류를 이루었다고 한다. 에너지신산업과 기후변화협약으로 겨우 국민의 관심을 끌어놓은 이때, 게다가 국제유가가 바닥을 쳐서 국가경제운용에 여유가 생긴 이때야 말로 다시금 미래를 위한 에너지 대안을 마련할 적기일 것이다. 기회를 놓치면 곤란하다.

2004년 국제원유가격이 배럴당 40달러를 넘어섰을 때도 회의 몇 번 하고 단기간에 별 문제 없다고 가만히 있다가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를 준비 없이 맞이하였다. 그리고는 해외자원개발과 신재생에너지 하겠다고 호들갑을 떨고는 다시 잘못 투자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우리나라의 지난 10년 동안의 모습이었다. 같은 10년 동안 유럽은 에너지절약과 신재생에너지개발로, 미국은 셰일가스개발로, 중국도 초대형 에너지회사를 육성하여 에너지위기를 넘기고 미래를 준비하였다. 기회가 왔는데 또 다시 적당히 넘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앞으로 10년, 우리는 어찌 해야 할까?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