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03년 하반기부터 국제유가가 급등하기 시작하였다. 지난 1980년 배럴당 36달러를 기록한 이래 한동안 25달러 아래에서 안정화되었는데 최근에는 60달러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왜 국제유가가 폭발적으로 상승하였을까? 전세계적으로 소득이 증가하고 자동차의 보급이 확산되면서 난방용과 교통용의 석유수요는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BRICs 등 신흥공업국가들이 소비하는 산업용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다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따라 중동정세가 악화되면서 국제유가가 폭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2003년 하반기에 국제유가가 증가하기 시작하였을 때 많은 전문가들과 권위 있는 기관들이 수급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고유가는 일시적인 현상일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수급 불안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고유가가 3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가격변수가 증가할 때 시장에서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것은 수요량의 변화이다. 가격이 뛸 때 수요량이 크게 준다면 가격은 바로 안정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수요량이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때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몇 차례 지속적으로 가격이 상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요량이 크게 요동하지 않는다면 가격은 급하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높은 가격에 따른 시장의 반응은 서서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기름값이 올랐다고 하루아침에 승용차를 소형으로 바꾸는 등 생활패턴을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급측면에서도 하루아침에 석유를 탐사하여 개발하고 공급시설을 건설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소비가 과거보다도 훨씬 덜 민감하게 유가상승에 반응할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NBER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소비자들이 교통수단으로 자동차에 더 많이 의존하고 또한 과거보다 도시가 광역화되어 통근거리가 늘어나면서 자동차에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게다가 소득은 70년대보다 크게 상승하여 실제로 휘발유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보다 줄어들었기 때문에 소비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사실 그동안의 물가상승을 감안하여 실질가격 수준으로 따져본다면 현재의 고유가는 과거의 1차 석유파동시의 수준 정도이며 2차 석유파동 수준만큼 인상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사정은 미국 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1, 2차 석유파동은 중동의 6일 전쟁과 이란의 회교혁명이라는 정변에 의하여 촉발된 공급중단으로 나타난 현상이지만 이번의 석유파동은 비록 중동의 정정불안으로 촉발되기는 하였으나 근본적으로 수요측 요인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고유가는 급한 오르막길을 탔지만 내리막길은 매우 완만하고 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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