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수 박사 /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 자연환경보전연구소 소장

서정수 박사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자연환경보전연구소 소장
[이투뉴스 칼럼 / 서정수] 심심찮게 들리던 야생 멧돼지들의 이상 행보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것도 그냥 도심 속 출몰로 끝나는 해프닝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심각한 해를 미치는 정도라 하니 그 심각성이 매우 우려스럽다. 도심뿐 만 아니라 농촌지역과 섬지역까지도 멧돼지들의 잦은 출몰로 그동안 단순 농작물 피해에서 이제는 사람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1900년대 후반부터 멧돼지에 의한 피해 사례가 있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그 빈도가 늘어난 기록이 있으나 효율적 대처 방안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단지 법으로 유해야생조수로 지정하고 해마다 지역을 달리해 수렵하는 정도다.

오랜 시간 서식밀도를 고려하여 구제한 결과, 이제는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정도가 됐으니 그 원인은 무엇인지, 대책은 없는 것인지 한번 짚어보아야 할 시기인 것 같다.

멧돼지는 산림지대에 사는 초식동물로 주로 참나무류의 열매인 도토리를 주식으로 한다.

그런데 그 도토리는 기원전부터 한국인들이 이용했다는 역사적 유적과 함께,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으로 남아 있을 정도다. 사람과 멧돼지가 함께 애용한 식량자원이라니 흔한 원조를 따지기에도 어려운 것 같다. 헌데 멧돼지에게는 주식이고 사람들에게는 구황식물이였으니 굳이 따져본다면 멧돼지가 우선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농사기술이 원만하여 사람들의 주식인 쌀이 남아돌아 가축사료로 사용한다는 지금도 가을철 산야에 떨어진 도토리 줍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단순 호기심이 아니고 생업으로 여기며 줄기차게 끊임없이 줍는다. 그도 그럴 것이 80kg 한가마당 쌀값의 5배 정도나 높다니 이해가 간다.

산림청 자료에 의하면 해를 거듭할수록 도토리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 생산량은 대부분 묘목생산을 위한 종자로 사용되는 것이고, 실제 개인적으로 줍는 양은 제외된 것이다.

품위 있게 사는 방식이 유행인 세태에 도토리가 지닌 약리작용과 옛 추억까지 더해진 먹거리로 도토리묵 예찬론이 당연할지 모른다. 이 논리는 자연속에서 사람만 먼저 살고보자는 인간 우월적 사고로 분명 자연과 함께하는 동양적 자연관과는 이질적 결과로만 보여 안타깝기도 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단순 방법으로 도토리 사용량을 줄이고, 사람들이 채취하는 행위를 근절 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헌데 이를 시행하려면 많이 이들로부터 비난의 원성이 들릴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 적절한 대안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묘안이 떠오른다. 세계에서 도토리를 식용으로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한 것 같다. 단지 중국과 일본에서는 계절민속식으로 쌀떡을 잎이 넓은 떡갈나무나 갈참나무 잎으로 싸서 쪄먹는 박라병(薄羅餠)과 가시와모찌(柏餠)만 있으니 도토리는 수요가 남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웃한 중국이나 일본 등지로부터 저렴하게 수입하여 먹거리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헌데 이미 국내 사용량의 90% 정도는 중국으로부터 수입된다고 하니 새로운 대안일 것은 없고, 단지 산에서의 무단 채취를 금지하는 방안에 대한 법적, 행정적 대안이 필요할 것 같다. 병행해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류의 집단 육묘를 통한 과수생산처럼 재배를 확대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 같다. 우수한 종묘를 통해 산촌지역에서 도토리나무를 재배하는 방식이다. 봄철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를 허가하는 형식도 고려해볼만 하지 않을까.

매년 전국에 서식하는 멧돼지의 서식밀도를 조사하여 순환수렵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좀 더 과학적인 자료에 의한 제도 개선도 요구된다. 야생동물의 활동영역을 고려한 적절한 구획 선정도 한 가지 해결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먹을 것이 풍부한 산을 등지고 도심지나 경작지로 나와 사람을 해할 멧돼지는 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도토리를 주식으로 하는 야생동물은 멧돼지 뿐 만이 아니다. 다람쥐 등 소형 설치류 등의 유용한 먹이자원인 것이며, 산림생태계의 후속 식물자원으로도 중요한 요소다.

깊은 산속을 제외하고 균형 잡힌 자연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지역이 점차 사라지는 것도 근본적 먹이사슬 파괴에서 오는 원인이 대부분이다. 실제 수도권 근교지 산과 탐방객이 많이 찾는 유명 명산지의 야생동물 현황에서 안정된 생태적 구조를 유지하는 지역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며, 특히 먹이사슬 파괴에서 오는 특정종의 감소 등 전반적으로 생물다양성이 감소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 현실이 우리 눈앞에 와있다.

야생동물들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안정된 자연생태계 유지는 미래 우리의 행복한 삶을 담보하는 지표다.

멧돼지와 다람쥐에게 도토리를 양보하는 후덕만으로도 한층 더 높고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는 작고 아름다운 자연관을 가짐을 기대해 봄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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