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중심 '전력분야 10대 프로젝트 추진案' 뒷말 무성
"전기료 인하여력으로 돈잔치, 정부 큰그림은 있나" 냉소

▲ 지난 19일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기자실에서 채희봉 에너지산업정책관(연단)이 '전력분야 10大 프로젝트'와 관련해 출입기자단에 사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투뉴스] “처음부터 끝까지 한전과 전력공기업이 다 하겠다는 거네요. 민간은 당장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인데 공공부문은 전기료 인하여력으로 돈잔치를 하겠다는 겁니다. 대통령은 민간의 창의가 발휘되는 시장을 만들자고 했지 이렇게 하자는 건 아니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8일 연초 대통령 업무보고의 후속조치로 제시한 ‘전력분야 10대 프로젝트’ 추진계획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전력공기업이 신산업 창출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은 맞지만 투자부터 주요사업까지 주·조연을 모두 꿰차는 형태는 애초 취지에 한참 벗어나 있다는 지적이다.

29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전날 정부가 발표한 10대 추진계획은 시쳇말로 ‘기승전’ 한전·공기업이다. 전력공기업들로 하여금 올해만 6조4000억원을 에너지신산업에 투자하도록 하겠다는 게 계획의 골자인데, 형식은 민간참여를 전제하고 있지만 내용은 공공이 주도권을 틀어쥐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우선 4분기부터 본격 운영을 목표로 추진하는 1조원 규모(내년 추가 1조원) 전력신산업 펀드는 한전이 출자하는 가칭 ‘KEPCO 키움 펀드’를 최상위 모(母) 펀드로 하부에 엔젤투자나 벤처캐피탈, 사모펀트 등 다양한 자(子) 펀드를 두는 형태여서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에너지 산업은 ICT 등 다른 산업에 비해 투자 회임기간이 길고 공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민간투자가 활발하지 않아 막대한 민간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도 한전의 선도적 투자가 중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민간 측은 "한전이 주도하고 출자하는 펀드에 얼마나 민간참여가 이뤄질 지 회의적"이란 반응이다.

IB업계 출신 사모펀드사 관계자는 “해외 전력기업들도 비슷한 형태로 투자하지만 공공부문이 시장을 과점하는 우리와는 환경이 다르고 이미 경쟁과 산업화가 상당부분 이뤄진 국가들”이라면서 “공공성을 가져가면서 민간투자를 유인한다는 정부 전략이 현실에 부합하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경영환경 개선으로 발생한 공공부문의 자금여력을 신재생에너지나 스마트미터(AMI), 주파수조정용 ESS(전력저장장치), 전기차 충전소에 집중 투자하도록 하는 계획도 단기성과에 급급한 보여주기 정책의 전형이란 비판이다.

우선 정부는 10대 계획에서 한전 등 전력공기업이 공동출자법인(SPC)을 설립해 학교 옥상 등 공공기관에 태양광을 설치한 뒤 전기판매 수익 일부를 학교와 공유하고 공급인증서(REC)를 확보하도록 할 예정이다. 이 사업에 향후 2년간 4000억원을 투자, 2000여개 학교에 200MW 옥상태양광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학교 등 공공기관 옥상 태양광은 이미 수년전부터 일부 발전공기업과 민간기업이 같은 사업모델로 접근했으나 건물구조 취약, 임대료 과잉, 낮은 수익성 등으로 확대가 제한적인 상황이다.  

태양광 시공사 관계자는 “공립학교는 상부 교육청의 과도한 수익성 위주 접근, 사립학교는 임대료 외 장학금이나 기업학과 개설 요구 등이 당연한 듯 뒤따른다"면서 "(정부가)수지타산을 따지지 않고 밀어붙일 순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시장창출에 기여하고 발전사들의 실질 성과로 돌아올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전이 주도하는 주파수조정용 ESS사업과 AMI 확대보급, 전기차 충전소 설치사업 등은 민간의 사업역량 축적과 틈새시장 진입이 충분히 보장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전이나 발전사가 사업자가 되고 민간은 시스템만 공급하는 과거 방식은 민간 전문기업 육성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에너지 공공기관 관계자는 "국내 ESS·AMI 제조사의 먹을거리를 제공해 파이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 목표는 이들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 민간 솔루션 육성이 돼야 한다"면서 "그렇게 하려면 공공부문이 모든 걸 다 하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공공의 역할은 플랫폼 구축까지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10대 프로젝트 계획에서 5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오는 9월께 한전·전력거래소·민간이 참여하는 '전력 빅데이터 활용 센터'를 설립하고, 3분기내에 한전 별도법인인 'KEPCO 에너지 솔루션'을 세워 민간 ESCO사업자와 에너지효율 사업에 3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한전의 전기료 인하 여력에도 (요금을)그대로 가는 건 미래 히든코스트나 온실가스 대응비용 등을 감안해서이지 이런식으로 돈잔치를 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당면한 전력부문의 현안도 해소하고 진정한 민간투자를 이끌 정부의 큰그림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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