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에너지신산업 띄우기에만 ‘올인’
2년 주기 전력수급계획 연장 검토설도

[이투뉴스] ‘신산업이란 레토릭(Rhetoric)만 난무하고 빅픽처(Big picture)는 없다’

신기후체제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저(低) 배출형 전원체제 구축이 시급한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에너지신산업이란 미시정책 ‘치적쌓기’에 혈안이 된 정부가 정작 탄소정책의 골간이자 핵심수단인 전력믹스 재설계는 무작정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정부는 신산업 창출의 속도를 앞당기겠다며 검증은 물론 설계작업도 끝나지 않은 각종 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한편 거꾸로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정책계획은 기존 2년 수립주기를 대폭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에너지신산업은 아이템보다 시장시스템 선진화가 성패의 관건인데, 산업부는 겉모양만 그럴싸한 아이템에서 단기성과를 짜내느라 힘을 빼고 있다”면서 “최근 정책이 4대강이나 녹색성장사업의 전철을 다시 밟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10일 정부 안팎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근 한전을 비롯한 산업부 산하 전력 유관기관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열리는 정부 국(局)·과(課) 주재 회의에 불려 다니느라 고유업무를 챙길 겨를이 없다. 주로 신산업 투자나 시범사업 추진, 제도설계 협의를 위한 소집령이다.

특히 최근 ‘전력분야 10대 프로젝트’ 발표 이후 부쩍 회의 빈도가 증가했고, 속도전을 요구하는 정부의 압박도 이전보다 한층 강해졌다는 게 공기업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발전사 관계자는 “예고 없이 일정을 절반으로 단축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워낙 정부가 쪼는 바람에 만사 제쳐놓고 달라붙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기관 관계자는 “마치 몇 달 안에 담판을 짓겠다는 느낌”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앞서 지난달말 산업부는 연초 업무보고의 후속조치 차원에 전력공기업들로 하여금 올해만 6조4000억원을 신산업에 투자하도록 하고, 연내 전력 프로슈머 사업과 소규모 분산자원 중개시장 개설을 목표로 하는 시장 진입규제 과제 조기 완료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하지만 신산업의 주체가 될 민·관 사업자들은 이런 방식의 접근이 방향은 맞을지 몰라도 속도전으로 몰아붙일 일은 결코 아니라는 견해다. 신산업은 탄소감축을 최상위 개념으로 전력믹스 정책과 양대축을 이뤄 균형 있게 추진될 사안이지 바로 성과를 낼 성질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 시점에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본질적 문제는 어떻게 기존 전력믹스를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해 파리 기후변화 총회 이후의 신기후체제에 대응할 것인지로 집중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40%를 차지하는 발전부문에서 기존 믹스재편 없이 탄소를 줄이고 에너지신산업도 키우겠다는 건 큰 줄기는 건드리지 않고 규제마인드로 접근해 시장을 만들겠다는 난센스 같은 얘기”라면서 “과연 이런 접근이 우리 경제에 진정 도움이 될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출연연구기관 모 연구원은 "요즘 신산업 정책 동향을 보고 있노라면 과거 스마트그리드 정책이나 신재생에너지 보급사업이 떠오른다. 현 정부가 아니라 차기, 차차기 정부까지 지속성과 일관성을 갖고 추진돼 큰 과실을 거둘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매번 공무원들은 같은 패턴"이라고 혀를 내찼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믹스정책의 핵심 계획인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주기를 기존 2년에서 크게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전력수요 증가율 감소로 당분간 신규 설비수요가 불필요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사회적 민감도가 높은 수급계획의 수립주기를 늘리려고 한다는 것.

발전공기업 관계자는 "에너지공기업 기능조정 검토과정에 정부가 발전소 위치별로 다시 발전사를 재편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데, 이런 것이야말로 실익도 없고 명분도 없는 탁상행정"이라면서 "각 발전사가 저탄소 전원시대를 준비할 수 있도록 믹스의 건전성을 살펴보는 게 진짜 정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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