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학적 설치·불량 재사용 가설재 적합성 검증없이 유통
발주처 등 사용자가 도급업체에 규정준수 명확히 요구해야

▲ 한국비계기술원 안전진단 전문가가 가설공사 현장서 시공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이투뉴스] 건설업종에선 쉽게 통용되지만 아직 일반인에게 ‘비계(飛階)’란 용어는 낯설다. 영문으론 ‘스캐폴딩(Scaffolding)’, 현장에선 일본어인 ‘아시바(あしば)’로 주로 불린다. 굳이 한자 뜻풀이를 하자면 '공중의 계단(飛階)’ 정도가 될 것이다. 정확히는 각종 공사 때 높은 곳에서도 사람이 일할 수 있도록 임시 설치하는 가설구조물을 통칭하는 용어로, 추락이나 낙하를 예방하는 안전시설물 등이 모두 포함된다. 고소(高所) 작업 시 추락이나 전도(엎어짐)의 위험에 노출된 인부가 능률적이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허공 위의 바닥이자 통로, 또는 이들을 떠받는 구조물 등이 모두 비계다.

그래서 비계는 공사의 종류나 규모에 관계없이 전 산업분야에서 이용되는 필수 기자재다. 건설·플랜트 공사를 비롯해 조선·해양, 발전소 정비 및 유지보수 공사현장 등에서 두루 쓰인다. 다만 비계는 작업 대상이 되는 건물이나 설비와 달리 필요에 의해 임시로 설치됐다가 해체되는 존재다. 한번 생산된 기자재가 별도 연한 없이 10~20년씩 장기간 재사용되고 함부로 다뤄지는 이유다. 게다가 비계 가설공사는 발주처의 관심사인 공사나 작업자체가 아니다. 공사를 수주한 시공사, 또는 그 하청업체가 고용한 비계설치업자(가설업자)가 비계 임대업체로부터 가설재를 빌려 수행하는 작업정도로 경시되고 있다.  

문제는 가설공사에 대한 이런 인식과 도급구조가 수많은 근로자의 귀중한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것. 고용노동부가 2014년 산업재해 사망자의 사고 원인을 정밀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사망자 753명의 38.9%에 해당하는 293명이 가설공사나 가설구조물 관련 사고로 숨졌다. 대부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거나 상태가 불량한 비계나 거푸집, 동바리(거푸집 등을 지지하는 지지물)등이 하중이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화를 당한 경우다. 작년 7월 충남 천안 백석문화대 신축공사 현장에서 비계가 붕괴돼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당한 사고나 발전소 현장에서 빈발하는 추락·붕괴사고도 같은 케이스다.  

매년 가설공사 관련사고와 사상자가 지속 발생하자 정부도 관련 법규정을 강화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의 ‘도급사업 시 안전·보건조치 규정’을 확대 적용해 사고 발생 시 시공사뿐만 아니라 발주처(원청사)도 관리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국토부도 지난해 건설현장 가설구조물의 안전성 확인 의무규정을 건설기술진흥법에 추가하는 등 고삐를 죄고 있다. 가설공사로 사상사고가 발생하면 앞으론 발주처에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산업안전보건법(제34조, 제35조)은 이미 1991년말부터 신제품 가설재 제조사의 자율안전인증 수검과 인증표시 등을 의무화하고 미인증 제품의 제조나 양도 등을 금지해 왔다.

그러나 항상 문제는 법과 동떨어진 현실이다. 우선 비계는 건물이나 작업이 완료되면 바로 철거하는 임시시설물로 인력이 제한된 당국의 관리감독에 한계가 있다. 또 가설시공을 맡은 하청업자(도급자)는 원가 절감이나 공기 단축 측면에서 싸고 시공이 빠른 주먹구구식 공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산업현장의 근로자 안전과 사업자의 이문이 반비례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시로 세웠다 허무는 구조물이다보니 이같은 문제가 잠재해 있어도 인명사고가 발생해 외부로 알려지기 전엔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안전과 직결된 가설재 품질 관리감독이 허술하다는 것도 반복 지적된다. 업계에 의하면 작년말 기준 국내 인증제품 가설재 생산업체와 가설재 임대업체는 각각 110여개사, 500여개사에 달한다. 그런데 이들 임대업체가 보유한 가설재의 약 90%는 중고·재사용품. 재사용품이라고 모두 안전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변형·부식 정도가 심한 노후 가설재나 강도가 기준에 못미치는 중국산 가설재, 불법 용접 보수 가설재 등이 적잖게 유통되고 있다는 건 업계사이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현장 관리자가 건설현장에 반입된 수많은 가설재 가운데 불량자재를 육안으로 선별해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형 현장의 경우 3~4개 임대업체가 투입한 가설재가 뒤섞여 사용된 뒤 수량만 맞춰 회수되는 정도다. 주인도 품질도 확인되지 않는 기자재가 전국 산업현장에서 근로자들의 생명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실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앞서 정부는 사단법인 한국가설협회가 자체 등록 심사규정을 만들어 재사용기자재 관리를 맡도록 했다. 법적인 의무는 아니지만, 협회로부터 발급받은 등록스티커를 붙인 기자재는 단속을 면제해주는 인센티브도 줬다. 그런데 고용부 유관기관 퇴직 관료들이 임원자리를 꿰찬 이 단체는 2013년 발전공기업 5사가 추진한 시스템 비계 국산화 연구개발비 일부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임원들이 대거 사법처리된 전력이 있다. 일부 임원은 업체로부터 뇌물을 수수하고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현재 교육 및 진단업무가 취소·정지된 이 단체의 임원은 임대업체 대표들이 맡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장 근로자 안전을 위해서라도 가설공사를 둘러싼 이같은 악순환을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의외로 방법은 어렵지 않다고 조언한다. 노동자 사상사고 발생 시 최종 책임을 지게 되는 가설재 사용자(발주처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관심을 갖고 가설공사를 맡은 도급업자 등에 '법에 규정된대로 안전성이 확인된 기자재와 법정교육을 수료한 작업자를 통해 규정대로 공사를 수행하라'는 요구만 명확히 하면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관련 공사비는 표준단가로 이미 반영돼 있으므로 사용자가 이에 따른 추가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다. 이와 함께 재사용 가설재는 안전성능이 검증된 실명표시 가설재의 사용 의무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기철 한국비계기술원 원장은 "현행 비계 가설공사 문제의 핵심은 안전성이 검증 안됐거나 성능이 크게 떨어진 재사용 가설재를 무자격 작업자가 비과학적으로 설치해 추락이나 붕괴사고를 일으켜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것"이라며 "발주처 등 사용자가 도급업자에 규정준수를 분명히 요구하고, 재사용기자재의 성능 적합성 판정 여부와 소유자 실명을 기자재에 표시토록 하는 성능인증제 확대 등을 통해 사상자 발생을 최소화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인터뷰] 홍기철 한국비계기술원 원장
"발주처 관심이 인명사고 줄이고 안전문화 바꿔"

▲ 홍기철 한국비계기술원 원장
발전소나 건설·플랜트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뤄지는 가설공사는 추락이나 낙하, 붕괴 등의 산업재해 빈도가 높은 고위험 작업이다. 그래서 비계, 거푸집, 흙막이 지보공 작업 근로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지정 교육기관에서 법정교육을 받고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무자격자를 채용한 현장은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가설공사 현장에서 사용되는 가설재 역시 신제품은 안전인증을 받아 인증마크를 반드시 제품에 표시해야 한다. 미인증 제품이나 기준미달 제품 등을 제조·수입·양도·대여·사용해서도 안된다. 현재 안전인증이 의무화 된 가설재는 강관비계 부재, 틀형 비계 부재, 시스템비계를 비롯해 작업발판, 클램프, 받침철물, 난간 및 추락 방지망, 동바리 등 대부분 비계용이다.

이처럼 가설공사와 관련된 법적 안전규제는 이미 완비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실제 현장 상황은 이같은 법·규정이 무색할 만큼 딴판이란 게 업계 종사자들의 전언이다. 여전히 많은 현장 인력들이 법정교육을 받지 않고 현장에 투입되는가 하면 경력자들 역시 과학적 분석보다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외국인 근로자도 점점 늘고 있다. 품질관리가 부실한 재사용가설재도 큰 문제다. 임대업체를 통해 유통되는 가설재의 거의 대부분이 중고·재사용가설재인데, 정부가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수시로 생겼다 사라지는 전국 현장을 당국이 모두 뒤쫓아 다닐수도, 현장관리자가 수많은 반입 가설재 가운데 불량자재를 일일이 추려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홍기철 한국비계기술원 원장은 가설공사를 둘러싼 이같은 문제는 발주처(시행사)가 나서는 것이 유일무이한 해법이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발주처가 하청업자(도급자)에게 발주 조건(시방 규정)으로 안전 법·규정을 철저히 이행토록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결국 발주처가 책임지게 되는 인명사고가 최소화 되고 현장 근로자의 안전도 제고된다는 논리다. 홍 원장은 “사용자, 즉 발주처는 산업의 맨 하단에 있는 가설공사 현장 현실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막상 사고가 터지면 그 책임은 사용자 몫이 되므로 결코 간과해선 안될 문제”라면서 “시방에 엄격히 규정을 지키라고 명시하는 것만으로 부실 가설시공과 불량 가설재로 인한 문제의 70~80%는 해결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발주 시 도급업자에게 ▶현장특성에 맞춘 가설공사 계획을 수립토록 하고 ▶비계나 거푸집 작업자는 반드시 법정교육을 받도록 하며 ▶가설구조물 설치상태 안전진단과 현장 가설재 검사를 철저히 하도록 하는 등 ‘원칙준수’를 명확히 요구해야 원가절감이나 공기단축 등을 이유로 이 부분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품질관리가 분명히 이뤄진 재사용가설재 유통이 가설공사 안전성 확보의 첫단추라는 견해다. 홍 원장은 “가설재는 강도와 연신율이 기준 이상이어야 하는데 시중 재사용가설재중에는 강성이 부족한 중국산이나 배관용 자재, 불법 용접품 등이 상당수 섞여 있고, 이런 가설재가 1000개중 1개라도 설치되면 사고위험은 급증한다”며 “어떤 자재가 어떤 현장에서 쓰일 지 아무도 알 수 없고 전체 기자재의 90% 가량이 재사용기자재여서 발주처 누구도 이런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은 게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 산업체 출장 현장 실습교육 장면
 
실제 앞서 한국가설협회를 통한 자율 등록제(스티커 부착방식) 운영 시 대부분의 발주처는 등록업체 여부만 확인하고 가설재 자체는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 등록증 발급 과정 역시 사전 방문 통보 후 회원사가 건넨 샘플 기자재를 검사하는 등 요식행위로 지적 받아왔다. 이런 맥락에서 홍 원장은 “누구 소유인지, 관리가 된 자재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자재 실명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법대로, 규정대로 안전성이 확보된 가설기자재를 사용하고 싶어도 지금은 정확한 소유주와 품질관리 여부 파악이 어렵기 때문. 비계기술원이 ‘재사용 가설기자재 성능인증제(이하 ’성능인증제‘)’를 운영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기술원에 따르면, 성능인증제는 건설․플랜트, 조선, 발전소 현장 관리자들이 안전기준 미달 가설재를 쉽게 걸러낼 수 있도록 재사용 적합 판정을 받은 기자재에 마킹 전용 스탬프를 찍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스탬프에는 ‘재사용 가(可)’ 표시와 판정일시, 소유자(기업), 성능인증 수행기관(한국비계기술원) 등이 나란히 기재
돼 한 눈에 기자재 품질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성능인증을 받으려면 적정한 수리·정비 담당인력과 장비·시설, 품질관리 자격자를 갖춘 뒤 비계기술원의 현장심사 및 성능검사를 거쳐야 한다. 또 인증제품은 매년 상·하반기별로 샘플링 성능검사와 불시 점검, 정기·보수 특별교육 등을 받아야 하며, 성능인증 제품을 사용한 현장에서 요청하는 경우 언제든 불시시험에 응해야 한다. 특히 인증업체 품질관리자는 비계기술원의 품질관리자 교육과 시험, 정례 보수교육도 받아야 한다.

홍 원장은 “지금까지의 자율등록제가 가설재 공급자 중심이었다면 비계기술원의 성능인증제는 가설재 안전성 제고를 원하는 사용자 중심의 기자재 실명제로, 일체 비용을 들이지 않고 가설현장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대안”이라며 “결국 국내 가설산업의 선순환 구조는 발주처의 관심과 인식전환,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전성이 검증 안된 재사용가설재가 국내 현장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해 가설공사 현장 사망자를 연간 50명 이상 줄이는 게 소망이자 목표”라면서 “안전한 가설공사가 안전한 작업공간을 확보하고, 안전한 공간이 작업 효율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발주처나 지자체들도 성능인증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부산=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 실내외 교육훈련이 가능한 부산 한국비계기술원 본부 전경

한국비계기술원(http://scaffolding.or.kr)은 산업현장의 비계 등 가설구조물과 안전시설 조립·해체 작업 종사자 및 관리·감독자의 교육·훈련과 기술개발 지원 등을 통해 산재 예방과 근로자 안전제고에 기여할 목적으로 2013년 11월 설립된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고용노동부 인가). 2014년부터 가설공사 관련 법정교육과 안전·보건 위탁교육, 위험성평가 담당자 교육 등을 수행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정부 안전진단기관으로 지정됐다. 실내외 실습이 가능한 국내 유일의 국제규격 전문훈련장을 갖추고 있으며, 부산 본부 외에 광역시도별로 5개 교육장을 운영하고 있다. 수십년의 현장경험을 보유한 기술사 인력의 가설구조물 안전진단을 지원하고, 부산 본부엔 가설재 성능시험과 성적서 발급이 가능한 설비가 완비돼 있다. 설립 이후 현재까지 1만2000여명의 교육생을 배출했고, 건설업 이외 조선·해양, 발전소 등은 현장에 최적화된 별도 전문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SK 울산 CLX, 현대오일뱅크, 전국플랜트건설노조, 한국수력원자력 등도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협력사 및 관계사 교육을 의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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