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중해야 할 한전기술 기능조정
[칼럼] 신중해야 할 한전기술 기능조정
  • 노동석
  • 승인 2016.03.1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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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본부장/선임연구위원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본부장/선임연구위원
[이투뉴스 칼럼 / 노동석] 지난번 칼럼에서 필자는 어려움에 직면한 에너지업계에 ‘90년대 초반 태평양㈜가 추진했던 구조조정 정책사례를 참고해 보시라고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포함한 기업의 정책 실패사례는 성공사례 보다 훨씬 더 많다. 사례의 선정과 나열 보다는 포털에 '구조조정 실패사례'라 치고 찾아보시기를 권한다. 작년 말 포스코경영연구원은 '훌륭했던 기술이 실패하는 네가지 이유'라는 흥미로운 글을 발표했다. 이 중 제록스, 소니사가 실패한 이유를 포스코경영연구원은 '헛수고를 초래하는 방향감각 상실'에서 찾았다.     

최근 정부는 에너지공기업 기능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소문만 무성하다. 그 내용 중 하나가 원전 설계·엔지니어링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전력기술㈜에 관련된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한전기술의 경영효율화를 도모하기 위해 원전 상세설계 부문을 민간에 이양한다는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부분으로, 궁금증을 유발했다. 몇 가지 관점에서 한전기술의 원전설계 부문 기능조정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원전설계의 개념은 용어부터 생소하고 어렵다. 이에 대해 굳이 쓰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그것은 설계단계들의 관계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는 구조물(Structure), 계통(System), 기기(Component)로 구성되며, 원자로, 터빈, 발전기, 공조기, 밸브, 펌프, 계측기 등 수많은 기기 들을 연계하여 원하는 기능을 얻을 수 있도록 기기들을 배치하고 전기 회로, 계측제어, 배관 설계 등을 통하여 유기적으로 이 기기들을 연계한다. 참고로 요즘 건설되는 원전의 부품수는 약 3백만개라고 한다.

원전, 원자로설비의 설계는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의 3단계로 진행된다. 개념설계는 발전소 발전용량선정, 발전용량에 맞는 노형선택, 설계수명, 열출력, 원자로냉각재계통 설계변수, 핵연료, 제어봉집합체 등의 설계특성과 성능 및 안전관련 설계기준, 구조설계기준, 환경관련기준 등을 확립하는 단계이다. 기본설계는 개념설계 결과를 토대로 계통 및 기기 관련 요구조건 들을 확립하며, 이 요구조건들을 기준으로 계통의 기능 및 요건, 설계하중, 기기종류 및 설계요건 등을 확립하여  계통설계기준서 및 기기구매를 위한 기기구매사양서를 작성하는 단계이다.

상세설계는 계통설계기준서에서 확정된 설계요건에 따라 전기, 배관, 계측제어, 기기배치 설계를 수행하며, 각 설계의 도면들을 생산한다. 이 설계과정에는 원전설계에만 적용되는 수많은 법령, 기술기준 들이 설계요건에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ASME Ⅲ Design, 기기검증, 피로해석 등이다. 이와 동시에 기본설계에서 작성된 기기구매사양서를 바탕으로 기기공급업체들은 각 기기들의 종류에 따라 그 기기가 갖추어야 하는 기능과 요건을 만족하도록 설계, 검증, 제작한다. 상세설계과정에서 원전설계사(한전기술)는 각 계통의 설계요건 및 경계요건에 맞게 기기가 설계 및 제작되었는지를 검토하며, 서로의 설계에 불일치사항이 발생하거나 연계요건이 불만족하면 조정과 협의를 거쳐 계통설계를 완성한다. 한마디로 설계는 개념, 기본, 상세설계, 원자로기기 제작 단계로 이어지며 상호 빈번한 인터페이스가 있다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배경 지식이 약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자락을 깔았으니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원전 상세설계 부문을 한전기술에서 민간에 이양하는 기능조정안에 대해 말해 보자.

먼저 실현가능성이다. 실현가능성은 행정·제도적인 측면과 기술적인 측면을 고려한다. 행정·제도적 측면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원전설계를 발주하는 원청사와 시행사가 모두 공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확인해야할 지점이 있다. 상세설계 전체를 민간이 감당할 수 있는가이다. 현재도 일부 상세설계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민간이 해 낼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위탁설계를 시행하고 있다. 또 개념, 기본, 상세 등 각 설계단계가 서로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설계주체가 분리되는 경우 불필요한 트래픽이 과다해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점검해야 한다.

둘째, 효과성이다. 정부는 상세설계 부문을 민간에 이양하면 원전산업 또는 한전기술의 경영이 효율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한전기술이 상세설계를 시행하면서 용역비를 과다하게 받고 있다면 원전의 발전원가를 다소라도 낮추는 효율성 제고를 기대할 수 있다. 과연 그런가? 한전기술의 용역비 과다 여부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원청사인 한수원으로부터 한전기술의 용역비가 과다하다는 불만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 반대의 소리는 간간히 들린다. 그것은 한수원이 한전기술과의 용역계약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효율성의 또 다른 측면은 설계분리가 전체적인 원전비용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한전기술은 민간의 설계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유일의 기관이다. 민간 설계 결과의 적합성을 한전기술이 점검·수정하느라 시간과 비용이 증가한다면 그것은 비효율적이다. 이것은 원전비용이 크게 증가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원전의 투자규모는 방대하기 때문에 시간의 기회비용이 막대하다. 하나 더. 우리는 원전 건설시 설계와 기자재 제작 및 시공이 동시에 진행되는 fast track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이 방식을 채택하는 이유는  건설공기를 단축하기 위함이다. 세계적으로 원전 건설이 계획한 공정대로 건설되는 나라는 현재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 지점이 국내 원전의 경쟁력이 발생하는 곳이다. 설계주체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오히려 원전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정책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셋째, 시의성이다. 상세설계의 민간 이전이 꼭 지금 시점이어야 하는 것인가? 공기업 기능조정이 일괄 시행될 필요는 없다. 사안별로 구분하여 이행시기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원전관계자들은 아직 원전기술이 완전히 자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축적된 설계기술의 유출, 사양화를 심각하게 걱정한다. UAE 원전 수출이후 정부, 사업자들은 후속기 수출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터키, 핀란드 등이 유력하게 추진되었으나 여러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아직 후속기 수출 소식은 감감 무소식이다. 설계분할시 해외의 원전건설 입찰참여시 원전설계부문도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설계주체의 분할은 설계책임의 소재를 불분명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입찰 평가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넷째, 원전 건설과 운영은 안전성을 최우선해야 한다. 2014년말 원전 관계자는 물론 국민을 공포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자칭 원전반대그룹이라는 해커조직이 한수원 내부전산망의 정보를 공개하면서 일부 원전의 가동을 중지하지 않을 경우 공격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원전에 대한 공격은 없었지만 작년 3월에는 다시 한 번 안전해석코드 및 표준형원전과 신형원전 관련 문서들과 동영상이 공개되었으며, 돈을 요구하는 협박도 있었다. 이후 관계자의 사과와 보안체계의 강화 등의 후속조치가 있었고 더 이상의 공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찜찜한 불안감은 남게 되었다. 

해커그룹이 공개한 자료 중에는 특정원전의 설계도면이 포함되어 있다. 이 뉴스를 접하는 일반국민이 느낀 공포는 기술유출의 문제가 아니었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흔하게 나오는 것처럼 테러리스트가 설계도면을 바라보는 장면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설계주체가 분할되면 보안문제는 어떻게 될까? 국민이 불안해하면 원전산업 전체가 어려워진다. 

설계 엔지니어링 분야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이것은 건설, 토목, 조선, 원전 등의 분야에서 공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는 독자적으로 원자로계통을 포함한 전체 원전설계 기술을 보유한 국가이다. 기술전담 회사인 한전기술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성급하게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워서는 안 되겠다. 한전기술의 기능조정, 특히 원전설계의 분할과 민간 이양은 신중히 추진되어야 한다. 잘 못하면 ’헛수고를 초래하는 방향감각 상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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