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은 정책 따른 죄…구조조정하면 정부도 딜레마 빠질 것”

[이투뉴스]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광물자원공사의 구조조정 발표에 따라 자원개발 업계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정책에 따라 업무를 추진했던 양 기관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런 시기에 어느 때보다 고민스런 나날을 보내는 곳은 노동조합일 것이다. 본지가 최근 석유공사와 광물공사 노조의 상급단체인 한국노총 소속 전국공공산업 노동조합연맹(이하 공공노련) 사무실의 문을 두드린 이유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주영 공공노련 위원장은 이번 구조조정이 연맹에도 선례로 남을 수 있는 중요 사안인 만큼 대책 마련에 적극 힘을 싣겠다고 밝혔다. 또 “이번 일이 선례가 된다면 공기업은 물론 정부도 딜레마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정책으로 인해 기관이 부실화되고 구조조정까지 간 일은 유례가 없기 때문이다.   


◆ 본질 벗어난 경영평가, 공기업 무너뜨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산이 큰 소리를 내며 흔들리더니 뛰어나온 것은 쥐 한 마리 뿐이라는 뜻이다. 요란한 시작과 달리 결과는 보잘 것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김 위원장은 1년 넘게 떠들썩하게 흔들리던 자원개발 업계가 토해낸 공기업 구조조정안을 이에 빗댔다.

그는 “정부에서 강요한 일의 책임을 공공기관이 지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이라며 “정부 정책이 지금까지 여러 가지 문제와 부작용을 발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꼬집었다. “근시안적인 경영평가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공공기관은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이렇듯 경영평가(이하 경평)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했다. 경평은 공공기관의 경영 노력과 성과를 평가하는 제도다. 그는 “본질을 벗어난 경평이 진행되면서 공기업이 갈피를 잃고 있다”며 “평가가 왜곡되면 평가에 대한 수용도가 떨어지고, 결국 평가 자체의 존폐문제까지 거론될 것”이라고 밝혔다. 석유공사의 경우 하베스트 인수를 통한 자주개발률이 경영평가에 포함되면서 부실 인수를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또 “본질을 벗어난 경평이 진행되는 한 기관장들 또한 책임있는 경영을 할 수 없다”며 “지침을 만들어놓고 그 이행여부를 과도하게 평가에 반영하는 것은 공기업의 목을 죄는 전형적인 후진국 정책”이라고 일갈했다. “정부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일침을 가한 것이다.

◆ 공기업 노조, 노사갈등 아닌 노정갈등 대면 한계
공기업 노조는 민간기업의 경우와 좀 다르다는 게 김 위원장의 설명이다.공기업 경영자는 독자적 판단으로 인한 경영이 사실상 힘든 만큼, 실질적인 문제는 경영자가 아닌 정부와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영자가 정부에 반기를 들 수 없는 한계 탓에 때로는 노조가 회사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연출된다. 이는 공기업 노조가 지닌 태생적 한계이자 딜레마라고 그는 털어놨다.

자신 역시 한전 노조위원장 시절 전력산업 분할 민영화에 대해 정부와 끊임없이 갈등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어려움을 겪은 게 적지 않다고 말했다. “분할 민영화가 실현될 경우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데도, 경영진이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 수 없어 대신 앞장섰다”고 회고했다. 노조 본연의 의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부와 기관장, 노조 등 공기업이 지닌 특수성 때문이다.

“이같은 딜레마는 구조조정을 맞닥뜨린 양 기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그는 전했다. 사측이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후에도 노조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만큼 깊은 고민을 지녔다는 방증이라는 것. 이어 “노조의 강경한 태도로 인한 여파가 조합원에 미치는 영향 또한 무시하기 힘든 한계”라고 덧붙였다. 

◆ 정책 실명제 도입 필요
김 위원장은 주인-대리인 이론을 언급하며 “공공기관의 주인은 정부가 아닌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대리인인 정부가 정책을 남발한 결과 혈세를 탕진,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메커니즘에 대한 몰이해로 공기업을 향한 무차별적 비난이 최근 거세지는 점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특히 공기업이 방만경영을 일삼는 집단으로 인식되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이는 공기업의 새로운 딜레마라고도 털어놨다. 

그는 “내부감사, 감사원 감사, 주무부처 감사, 언론 보도 등 감시체계가 다중으로 이뤄진 공기업에서의 방만경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같은 내부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방만경영’이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오해와 편견으로 인한 마녀사냥”이라고 호소했다.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신의 직장’, ‘철밥통’으로 일컫던 공기업을 비판해 국민 정서를 달래려는 정부의 비대칭적 해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물론 공기업이 추진한 사업과 정책이 부실화로 이어진 것은 안타깝다”면서 “이의 개선방안은 기존 정책과 방향을 고치거나 대체방안을 찾는 것이지 구조조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구조조정이 임시책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방만경영도 아니라면 공기업이 실패와 부실을 초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위원장은 “시스템의 문제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목표가 부여되면 공기업은 이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책실명제라고 그는 피력했다. 책임주체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공기업 구조조정의 폐단은 누군가는 지시했을 책임의 실체가 불분명한 점이다. 한 마디로, 지시했을 누군가가 떠난 빈 자리와 책임을 이행기관이 떠안은 격이다.

김주영 위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이제부터라도 공공기관의 자율책임 경영을 보장해야 한다는 말을 보탰다. 그 근거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 제3항을 들었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김 위원장은 “이제는 공공기관의 운영권한을 기관에 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보장된 권한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자는 의미다. 제자리 찾기는 공기업에도 시급한 모양이다.

이주영 기자 jylee98@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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