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기관 제각각 부실통계 양산…에너지정책도 '까막눈'

[이투뉴스] #01. 경기도 분당에서 설비관리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J 대표는 국내외 시장 공략을 위해 새로운 연구개발을 추진해 보려다가 포기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새 상품이나 기술을 개발하려면 일단 정확한 시장 파악이 중요한데, 발품을 팔아 관련 자료나 통계를 구해도 신뢰성이 떨어지거나 효용성이 낮은 것들이 대부분이라서다.

J 대표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 새 기술을 개발해도 통계분석에서부터 문제가 있다보니 시장이 없어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면서 “미국 에너지부(DOE)는 엄청난 현황자료와 통계를 제공하던데, 왜 우리는 그런 기본적인 뒷받침도 못해 주는건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02.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업종별 배출권 할당량을 놓고 국내 산업계는 연일 아우성이다. 실제 감축여력에 비해 할당량이 턱없이 적거나 다른 업종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비철업계 관계자는 “우리는 처음부터 철강업종 대비 크게 적은량을 배출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조정계수를 적용하면서 (할당이)이상해졌고 기준도 납득이 안된다”면서 “이런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온실가스 감축은 불공평한 규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실한 국가 에너지통계가 기업경영은 물론 정부 정책까지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조차 통계 생산·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 가운데 유관기관들은 제각각 단편적 정보만 양산하고 있고, 이렇다보니 검증 안된 통계가 재유통 돼 정책을 왜곡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 

17일 업계와 유관기관들에 따르면, 현재 국가 에너지 관련 통계는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한국에너지공단, 에너지기술평가원, 에너지기술연구원 등이 주기적 또는 부정기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에경연의 경우 한전·석유공사·가스공사 등 주로 에너지 공급자들이 만든 데이터를 끌어 모아 에너지통계 월보 및 연보를 만들고 있고, 수요 통계의 경우 연구원과 에너지공단이 따로따로 정보를 취합하고 있다.

또 에기평은 R&D와 관련한 기술통계를, 에기연은 자체 수집한 일부 현황 통계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정보는 별도 책자나 각 기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일반에 공개되고 있으나 일부 정보는 정부3.0 정책이 무색하게 제때 업데이트가 안되거나 공개조차 되고 있지 않다.

에너지통계의 양(量) 못지 않게 질(質)도 형편 없다.

일례로 모 기관은 매년말 취합한 연례 통계를 만 1년 반이나 묵힌 후에야 슬쩍 홈페이지에 올려 놓고 있다. 또 다른 기관은 쓰임이 불분명한 엑셀 데이터를 파일 째 게시판에 첨부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 통계는 대부분 에너지 공급자 입장에서 생산된 정보여서 이후 수요측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언제, 얼마나 해당 에너지가 사용됐는지 등의 실질 정보는 파악이 어렵다. 

별도 에너지정보 전담기관을 통해 체계적으로 정보를 수집-분석-공개하는 선진국과는 딴판이다.

제대로 된 에너지통계가 없다보니 정부 주도 R&D나 정책 역시 부실화 될 수 밖에 없다.

중소기업 한 CEO는 "시장분석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R&D가 진행되다보니 '이건 아닌데' 싶은 사례가 여러번 있었다"면서 "정부가 특정분야에 대한 국내외 시장정보나 통계를 기반으로 R&D 과제를 제시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에너지기관 소속 한 고위간부는 "정부가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을 개발하거나 온실가스 배출량을 할당할 때도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지 못해 당위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게 오늘날 현실"이라며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문제점을 잘 알면서도 정부의 개선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EIA(미 에너지정보청)와 같은 에너지정보 전담기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앞서 현 정부초 에너지 유관기관들은 에너지통계 정보 통합 관리에 대한 물밑 협의를 벌였으나 미온적인 정부 반응과 각 기관 조직 이해 문제에 부딪혀 무산된 것으로 전해진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에너지통계에 너무 적은 예산을 쏟고 있고,  생산주체도 공급자라 시장에서 활용할만한 데이터가 거의 없다"면서 "이런 통계를 기반으로 추진하는 에너지정책은 눈을 감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손 교수는 "에너지가 부족하면 더 공급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 정부"라면서 "이제 경제가 완숙기에 도입한만큼 팩트에 기반한 정책을 수립해야 실효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신산업 육성이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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