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싶어도 물량 없어 거래량 미미, 판매가격은 상승세
가격통제 아닌 시장에 맡기는 등 일관성 있는 정책 중요

“이월 허용기간 및 물량폭 제한, 가격제한폭도 확대해야”
“장외거래 늘면서 시장·가격 신뢰 잃어…장내거래 유도”

[이투뉴스] “배출권거래제 시행이 1년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활성화까지는 멀어 보입니다. 거래가 극히 부진한 것은 물론 지금 탄소배출권을 사고 싶어도 팔려는 물량이 없습니다. 배출권 할당량을 초과하는 업체의 경우 배출권을 사지 않으면 과징금을 내야 하는데, 대책이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1월 12일 시행한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이 여전히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일각에서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톤당 8640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1만8450원까지 2배 넘게 올랐지만, 호가만 넘칠 뿐 거래는 소꿉놀이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EU와 뉴질랜드 등 일부 선진국이 도입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는 시장에서 주식을 거래하듯 배출권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국가 단위 거래제도를 도입해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초부터 시행했다. 국가가 할당한 배출권보다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배출권을 확보해 팔 수 있고, 넘치면 사서 채워야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시장에서는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5년 1월 12일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이 개장한 이후 최근(4월 22일)까지 거래된 배출권은 할당배출권과 상쇄배출권을 모두 더해 정확히 200만톤이다. 정부가 내놓은 전체 배출권(5억4322만톤) 중 고작 0.36%만이 거래된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거래소를 통한 장내매매나 협의매매가 아닌 장외거래물량까지 고려하면 적잖은 배출권이 매매됐다는 시각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거래물량이 적다보니 배출권 가격 역시 적정한지 여부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아직 시장이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당장 올해 온실가스 할당량보다 배출이 많은 업체들의 입장에서 다급한 상황이다. 업종별로 차이가 크지만 반도체 및 집단에너지(산업단지 열병합발전), 비철금속 등의 경우 할당량이 적어 배출권 구매가 불가피하다는 전언이다. 문제는 배출권을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상황. 배출권을 구매해 제출하지 못할 경우 거래된 배출권 평균가격의 3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내야 해 과징금폭탄까지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1차년도(2015년) 전체적으로 700만톤 가량의 배출권 여유가 있다며,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거리고 있다. 또 400만톤에 달하는 외부감축 인증실적을 지난달 승인한 만큼 조만간 매도물량 부족문제 역시 해소될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시기적으로는 배출명세서 확인이 끝나 최종 제출시한인 6월 중에는 거래도 활발해 질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적잖은 사업자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체적으로 배출권이 남더라도 심리적인 요인으로 할당대상업체들이 이를 시장에 내다 팔 가능성이 적어 물량부족 사태가 쉽게 해소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거래시장 운영과정에서도 상당한 문제점이 드러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끊이지 않고 있다. 
 
◆배출권 가격 및 거래량 추이
할당배출권(KAU15)은 지난해 1월 12일 톤당 8640원으로 거래가 시작돼 그해 2월 10일 1만원으로 올랐다. 하지만 이후 무려 8개월 동안 가격변동이 전혀 없다가 10월 7일 1만1300원으로 1000원 남짓 올랐고 12월 23일 1만2000원으로 다시 상승했다.

올해 들어서는 2월 19일 1만3100원으로 오른 후 23일 1만5800원, 24일에는 1만6000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후 3월15일에 1만8450원으로 다시 오른 후 4월 22일 현재까지 이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협의매매가격은 이보다 50원 높은 톤당 1만8500원에 거래되고 있다.

▲ 할당배출권(kau15) 가격 및 거래량 추이.

거래물량은 지난해 최초 거래 당시부터 4월 22일 현재까지 모두 43만2780만톤(KAU)에 불과하다. 거래대금은 58억9267만원이다. 거래물량 중 협의매매(당사자 간 거래)가 전체의 88.1%를 차지하고, 장내 경쟁매매(불특정다수를 상대로 주문을 통해 거래를 체결)는 11.9%에 불과하다. 거래소측은 주로 대량의 물량을 협의매매로 거래하기 때문에 협의매매 비중이 높다고 설명하고, 향후 경쟁매매로 이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상쇄배출권(KCU15)은 2015년 4월 6일 톤당 1만100원으로 출발했다. 이후 12월 들어 가격이 오르기 시작해 12월 29일에는 1만3700원까지 오르는 등 KAU15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가격 강세가 이어져 2월 17일 1만5000원을 넘어섰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이면서 4월 25일 현재 1만8500원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거래량은 156만7546톤으로 할당배출권 43만2780톤에 비해 3.6배가 많다. 거래금액도 213억5572만원에 달한다.

▲ 상쇄배출권(kcu15) 가격 및 거래량 추이.

전반적으로 배출권 거래는 여전히 저조하지만, 가격은 올해 들어 서서히 꿈틀거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시장에서 알 수 없는 장외거래에서는 장내거래보다 물량도 많고, 가격 역시 더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거래소에서는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날이 많고, 가격변동폭도 제한적이다 보니 비밀스런 장외거래를 선호한다는 것. 배출권이 남아 팔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차기 할당량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염려도 한 몫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 거래가 소량이라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단 1톤도 거래가 안되는 날이 대부분이다 보니 가격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 잇는 상황”이라며 “참여자들이 정확한 가격이라는 확신이 없어, 장외에서 더 비싸게 팔려고 하는 욕구가 생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도자는 없고 매수자만 있는 시장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할당대상 업체들의 눈치보기 심화 등 심리적 요인을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한다. 정부가 업체별로 부여한 할당량을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 있게 배출권을 팔겠다고 시장에 내놓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각 기업은 공개적으로 자신이 가진 배출권을 시장에 내놓기 꺼린다. 자칫 할당량이 과도하게 부여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큰 부담이다.

당장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라 매년 감축률이 강화돼 더 많은 배출권이 필요한 상황에서 시행 첫해부터 남는 배출권을 파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거의 모든 업종이 할당량이 적다고 추가할당을 요청한 마당에 배출권이 남아돌아 팔겠다고 나설 경우 환경당국이 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배출권거래 장애요인이다. 괜히 얼마 안되는 배출권을 팔아 이득을 보려다 나중에 덤터기를 쓰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바로 그것이다.

시장 참여자가 극도로 제한돼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현재는 할당량을 확정 받은 525개 기업과 거래소가 선정한 44개 기업만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배출권거래 관련 컨설팅업체들이 참여를 희망하고 있지만, 정부와 거래소는 시장의 투명성을 해칠 수 있다며 허용하지 않고 있다. 시장참여자 확대에 대해서는 산업계에서도 일부 의견이 갈리고 있기는 하나 장기적으로 시장참여자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배출권 거래 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고 있다는 점도 거래량이 적은 이유 중 하나다. 정부는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을 열면서 기준 가격을 톤당 1만원으로 설정했다. 또 배출권 가격은 하루 ±10%를 넘지 않도록 상한선을 뒀다. 정부 입장에서는 탄소배출권 구입에 대한 기업 부담을 낮추겠다는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꼴이 됐다.

현재 배출권에 대한 수요는 많지만 공급량은 적다. 수요가 많으면 당연히 가격이 올라야 하는데, 큰 변화가 없다. 매수자 역시 시장을 통해 배출권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보니, 매도주문 자체를 내지 않은 채 지켜만 보고 있다. 또 역으로 매수를 고려하는 업체는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는 판단아래 관망세를 보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 형성된 톤당 1만8500원의 배출권 가격 역시 3월 15일 형성된 이후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그대로다.

최근 외부사업 인증실적(상쇄배출권으로 전환가능)을 중심으로 장외거래가 기승을 부리면서 오히려 장내거래를 개점휴업 분위기로 만든다는 분석도 나온다. 할당배출권의 경우 팔기를 꺼려하지만 외부 감축활동을 통해 확보한 인증실적의 경우 비교적 매도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개한 올해 장외거래 인증실적(KOC) 거래량은 258만톤(1∼4월)에 달한다. 장내에서도 할당배출권에 비해 상쇄배출권 거래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쏟아지는 배출권거래제 제도개선 요구
지난해 배출권에 대한 명세서 제출 및 인증이 마무리되고 있는 가운데 배출할당량을 넘긴 업체들의 제도개선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배출권을 사려해도 못사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과징금 대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5월 온실가스 배출명세서 검증이 끝나고, 6월까지 배출권 정산을 하는 일정을 감안할 때 앞으로 이러한 목소리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먼저 기준가격과 가격변동폭(±10%) 제한 등을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배출권거래제는 시장 메커니즘을 이용한 감축 수단인 만큼 배출권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돼야 한다. 지금처럼 배출권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라면 가격이 급등하고, 가격이 오르면 매도자가 늘어나는 것이 시장논리지만 현재는 이 구조가 제대로 지켜지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업체에서 확보한 배출권을 아무런 제한 없이 차기년도로 이월할 수 있는 것도 배출권 매도물량 부족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앞서 지적한 데로 배출권에 여유가 있는 기업이라 해도 심리적 요인으로 배출권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연도별로 감축의무량이 점차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월이 당연하다는 시각도 있다.

따라서 배출권 이월을 무한대가 아닌 일정기간으로, 물량 역시 일정비율만큼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거래활성화를 위해서는 이월 제한이 가장 유효한 정책수단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역시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축의무가 갈수록 세지는 등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어렵게 확보한 배출권을 무조건 팔라고 강요해선 안된다는 의미다.

여기에 배출권 거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참여자 제한을 풀어 플레이어를 늘리는 방안과 이행업체 위기관리를 위한 파생상품 시장과 선물시장 개설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울러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해 불이행 과징금을 납부하더라도 이행하지 못한 감축량을 면제해주는 것이 아니라 감축량을 차기연도에 더하는 방안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외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배출권 가격왜곡 현상이 심화되는 것은 물론 장내거래 전체를 위축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개선요구 목소리도 높다. 장내거래와 장외거래를 합치거나, 상쇄 실적을 장내에서만 거래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거래소 역시 탄소배출권 거래활성화를 위해서는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동의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아직 요지부동이다.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대를 점차 넓혀가고 있으나,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부처 간 업무조정으로 혼란 가중
환경부가 일률적으로 관리하던 배출권거래제가 부처별 업종을 나누어 관리하게 되면서 다양한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온실가스 총괄대응 업무는 총리실에 맡기고, 배출권거래제는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는 목표관리제처럼 업종별 관리에 나서도록 업무조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은 무엇보다 경제활성화를 우선시하는 기획재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이 목적인 배출권거래제 총괄을 맡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환경부가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모든 권한을 빼앗아 버렸지만, 장기적으로 무력화 시키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내놓는다. 아울러 산업부는 산업 육성을 위해 산하기업에 넉넉하게, 환경부는 환경보호를 위해 상수도 업체에 엄격하게 배정하는 등 부처별로 기준이 제각각이 될 개연성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우리나라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 대비 37%를 효과적으로 감축하기 위해서는 모든 부처가 총력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기능조정 이유를 밝혔다. 배출권거래제 관련 업무를 경제·재정정책과 국가발전전략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로 넘긴 것 역시 부처 간 조정기능 강화 및 통일기준 적용을 위한 것으로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가 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도개편 이후에도 연도별 배출권 총 허용량은 현행과 동일하게 경제부총리가 위원장인 배출권 할당위원회에서 국가 감축목표에 기초해 ‘배출권 할당계획’을 정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 계획을 통해 각 부처 배출한도를 정하고, 그 한도범위 내에서만 조정이 가능한 만큼 부처 또는 업종별 유·불리는 없다”며 “할당방식에 대한 통일기준도 별도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출권거래제 활성화에 대해선 지난 3월말까지 명세서를 제출한 할당업체(523개)의 배출량을 분석한 결과 전체적으로 약 7백만톤의 배출권 여유가 있어 우려할 만 한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 배출권 제출시한이 다가옴에 따라 4월에만 할당 및 상쇄배출권을 합해 40만톤 이상 거래되는 등 최근 거래량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족한 매도물량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올해 들어 상쇄배출권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감축인증실적(KOC) 256만7984톤이 장외에서 거래되는 등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5월초 상쇄배출권 120만톤을 인증해 줄 예정이며, 아직 팔리지 않아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KOC 물량도 130만톤이 남아있다는 근거를 댔다. 

배출권거래제 문제점 개선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무총리실 주관으로 추진 중인 배출권거래제법 시행령 개정은 참여업계 의견수렴을 마쳤으며, 5월 중으로 마무리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개정안에는 집단에너지 등 배출권거래제 이행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 애로를 해소해주고 시장 활성화를 유도하는 조치도 일부 담겨진 것으로 전해져 세부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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