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문승일 기초전력연구원장 (서울대 전기공학과 교수)
기초전력 R&D기능 정상화…통일시대 협력도 대비

▲ 문승일 기초전력연구원 원장

[이투뉴스] 문승일 기초전력연구원장(서울대 전기정보공학과 교수)<56·사진>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기존 에너지시스템이 스마트그리드나 에너지신산업 쪽으로 갈 것이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오픈 시크릿(open secret)'”이라며 “우리가 한 발짝이라도 앞서가면 시장의 리더가 되겠지만, 한 발만 뒤처지면 결국 또 뒤쫓아가는 형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원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관악구 기초전력연구원 집무실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에너지신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역할을 하려면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선제적 인프라 투자가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인프라를 만들면 그 기반 위에 기업이 뛰어들고, 여기에 소비자로서 국민이 참여하면 자연스럽게 신산업 생태계가 완성된다는 논리다.

문 원장은 ‘에너지신산업에 대한 기업 반응이 미적지근하다’고 운을 떼자 “생태계를 기업에게 만들라고 해선 안된다. 충전시설도 없는데 전기차를 구입하고 만들어 팔 생각을 할 수 있겠나. 지금처럼 시범사업 정도가 아니라 국가적 규모로 큰 그림을 갖고 인프라 투자계획을 발표하면 기업도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지금 기업들은 투자여력인 없는 게 아니라 확신이 없는 거다. 구체화 된 인프라 투자계획이 나와 주면 산업계도 그걸 바탕으로 움직일 거다. 그런 맥락에서 이제는 제도개 선만이 아닌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설 때다. 개인적으로는 올해와 내년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고 부연했다.

"생태계 조성은 기업 몫 아니다…政, 인프라 투자 필요"
지난달 중순 뉴욕에서 열린 신에너지컨퍼런스(AEC. Advanced energy conference) 참석차 해외 출장길에 올랐다가 일주일여만에 돌아온 문 원장을 이날 만났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그는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 전기차와 교통시스템을 어떻게 연계할 지 고민하는 뉴욕시 당국자의 발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특별히 앞서 나간 기술이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훨씬 먼저 뛰어든 분야임에도 그들은 이미 현실로 받아들여 실행에 옮기고 있는데 아직 우린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 원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녹색성장 정책 추진과정에 에너지 체계 개편이 검토되자 스마트그리드를 전력부문의 대안으로 제안해 지능형전력망 촉진법이 제정되도록 산파 역할을 했다.

차세대 전력시스템 도입을 주창해 온 이 분야 1세대로, 현 정부서도 녹색성장위원회 산업기술분과위원장,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정책심의회위원장, 에너지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년 3월 국내 유일 전력산업 분야 기초연구 지원기관인 기초전력연구원의 원장으로 부임해 R&D기능 회복·위상강화 등을 위해 힘쓰고 있다.

정부 차원에 에너지신산업 육성이 한창인 최근에는 시장 태동기인 지금이 다른 나라보다 한걸음 빨리 치고나갈 골든타임이라며 연일 정책 드라이브를 주문하고 있다. 서서히 시장이 발아하고 있지만 어떤 나라도 아직 제도화 단계로 넘어가지 않은 이 때가 우리에게는 세계시장의 리더로 앞서갈 수 있는 호기라는 게 그의 일관된 목소리다.  

문 원장은 “조선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라고 하는데, 불황의 늪을 빠져 나와도 과연 우리가 예전의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겠나. 유럽·일본 기술로 시장에 뛰어들어 그들을 제쳤고, 이제 그런 역할을 중국이 하게 된 것”이라며 “강을 건너면 배를 바꿔 타듯 또다른 산업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게 바로 에너지신산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도 열심히 뛰고 있지만 아쉬운 게 있다면 이 산업이 (기업들에게)가자고 해서 가지는 산업이 아니라 공공이 선제 투자해 인프라를 적절히 갖춰주면 그 위에서 일어서는 산업이란 것”이라며 “고속도로를 먼저 깔아 자동차 산업을, 발전소와 송전선로를 건설해 반도체 산업을 각각 키운 과거 경험을 되살려 투자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에너지신산업, 우리 산업이 갈아 탈 배(船)"


보급속도가 아직 더딘 전기차는 "이미 중국에 선두자리를 빼앗긴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안팎에서 ‘중국이 우리를 추격하고 있다’고 종종 표현하는데 ‘중국은 이미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한 인식이라고 꼬집었다.

문 원장은 “우리는 이미 2010년께 (전기차)보급계획을 크게 세웠는데, 당시만 해도 중국은 전기차로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 못하던 시절”이라며 “하지만 지금 중국은 최소한 수량 면에서 가장 앞서고 있고 정부도 굉장히 체계적이고 예측가능하게 가고 있다.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그런 치고 나가는 리더십을 상실해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문 원장은 “경영학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닐지, 그 시장에서 승리할 지 아닐 지 두 종류의 불확실성이 있다고 하는데 적어도 전기차가 기존 내연차를 대체하고 에너지산업이 화석연료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 아니냐”면서 “우리가 가진 능력이 잘 발휘되도록 전략을 세워 시장의 위너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신산업중 전기차의 임팩트가 가장  크다. 향후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발전소와 송전선로 확충 한계를 극복하며 새 산업을 일으키는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그 때가 된다면 전기차는 문화를 바꾸는 수단이 된다. 변화가 오지 않을 것 같지만 한순간이다. 반값 내연차는 어려워도 전기차 값이 3분의 1이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에너지신산업 업종의 진입규제 완화와 지원을 골자로 하는 에너지신산업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서는 “신기술을 담아갈 수 있는 유연한 법체계를 기술전문가와 법전문가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서 그는 외부석상에서 현행 전기사업법을 ‘100년전 기술을 기반으로 만든 법’이라고 규정한 뒤 “기존 틀 안에서는 에너지신산업이 설 자리가 없다”고 직격한 바 있다.

문 원장은 “신산업 가운데 기술특성 자체가 발전-송전-배전 등으로 구분되는 전기사업법 프레임에 넣을 수 없는 게 있다. 대표적인 것이 ESS”라면서 “엄밀한 의미에서 ESS는 발전기도 송전망도 소비처도 아닌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는 설비다. 이런 걸 기존 구조에 넣으려다 보니 자꾸 예외조항을 만들게 되고 예측 못했던 새 설비가 나올 때마다 법체계가 굉장히 혼란스러워 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엔지니어로 볼 때 전력·에너지 관련법은 당위법이라기보다 현실의 기술을 뒷받침하는 서비스법이다. 그래서 현실의 기술이 바뀌면 법도 바뀌는 게 당연하다. 차제에 기술을 잘 이해하는 사람과 법을 잘 아는 사람이 함께 협의해 에너지와 관련한 새 프레임을 갖추는 법체계를 만들면 법제사에도 남을 만한 결과를 내고 신산업이 한층 탄력을 받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술 바뀌면 법도 바뀌어야…신기술 담을 새 법체계 필요" 
원장 취임 만 1년의 성과에 대해선 나름 만족감을 드러냈다. 문 원장은 부임 당시 2012년 에너지기술평가원으로 연구원의 R&D기능을 이관하는 과정에 소실된 전력산업 연구개발 기능을 되살리고, 신산업 현장인 나주 에너지밸리와 제주에 분원을 세워 긴밀한 산·학 협력을 이뤄나가겠다고 공언했었다. 이중 R&D기능은 한전의 재정지원을 이끌어 내 숨통을 텄고, 신설 2개 분원도 외양과 내실을 다져가는 중이다.

문 원장은 "기초연의 원래 설립목적은 전력분야의 유일하게 기초연구기관으로서 대학을 기반으로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에너지신산업 같은  산업에서 필요한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것이었는데 한전에서 관심을 갖고 투자해 작년부터 많은 연구과제를 할 수 있었다. 일단 기능회복은 했다"면서 "앞으로는 정부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도 충실히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아직 이런 부분이 제도화 되지 않아 한전 경영여건 등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면서 "전력 부문의 기초연구는 공공재란 인식으로 한전을 비롯한 발전사들도 펀딩에 참여해 안정적으로 기초연구가 수행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여기에 대해 별도평가와 미션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문 원장은 또 연구원의 새 과제로 제시한 통일 대비 남·북 에너지협력과 한·중·일·러 슈퍼그리드와 관련, "지금은 정치적으로 어렵지만 이런 상황이 끝까지 가지는 않을 거다. 상황이 반전 됐을 때 가장 먼저 언급될 게 에너지 문제인데 전기의 역할에 대해 기초연이 나름 준비도 하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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