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한무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이투뉴스 칼럼 / 한무영] 우리나라는 개도국의 ODA(공적개발원조,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지원, 특히 식수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개도국에서는 대규모 자본과 기술이 들어가는 집중형 시설보다는 우물이나 빗물과 같은 소규모 공동체 단위의 식수공급시설이 훨씬 더 싸고 빠르게 실현가능하여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서울대 빗물연구센터는  2014년 베트남 하노이 인근 쿠케마을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롯데백화점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환경재단과 함께 빗물탱크 12톤짜리를 설치했다. 21개월 후인 지난 주말, 현장을 다시 가 보고, 만족과 아쉬움 그리고 교훈을 얻었다.

만족한 곳은 유치원이다. 식당 옆의 잘 보이는 운동장의 한편에 설치돼 있는 빗물탱크의 수위가 최근 비가 안와서 낮아져 있고 (그만큼 많이 썼다는 이야기), 그 사이 유량계는 111톤을 표시한다. 탱크 주위는 잘 정돈되어 있고 탱크 위에는 먼지하나 안 묻어 있다. 손님에게는 빗물을 생수병에 담아 대접한다. 원생들이 빗물을 마시기 전후해서 특별한 건강상의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학교에 내는 물 값이 학생 일인당 일 년에 9만동에서 5만동으로 줄었다. 관할 교육청, 인민위원회, 언론사에서 와서 보고 흡족해 한다. 아마도 어린 원생들이 먹는 식수이기 때문에 부모들이 각별한 신경과 관심을 가져서 그런 듯하다.

아쉬운 곳은 초등학교다. 학교 뒤편 후미진 곳에 설치된 빗물시설은 주위에 쓰레기, 거미줄들이 보인다. 93톤을 가리키는 유량계는 유치원처럼 활발히 사용되었음을 말해주지만, 최근 한 달간 비가 안 왔는데도 빗물이 꽉 차 있는 것을 보니 최근에는 빗물을 사용하지 않은 듯하다. 아마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되었거니와, 지금 본관의 개축공사를 하는 바람에 담당자도 바뀌어 점점 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서 사용이 줄어든 듯하다.

같은 지역에, 같은 기술로 만든 시설인데 결과는 서로 다르다. 공사를 시작할 때 기술만 좋으면, 주민들 스스로가 빗물을 식수로 영원히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오히려 기술 외에 사회적, 경제적인 요소까지도 함께 고려해야만 된다는 반성과 교훈을 얻게 된다.

문제점을 정리하면 첫째 빗물 식수화에 대한 사회 전반적 경험 부족과 빗물의 수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따라서 식수화 시설의 예산배정, 계획, 시공, 유지관리, 사용에 관여하는 사람들 중 어느 한 분야의 사람이라도 식수공급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 전체 시설은 식수용으로 만들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비유하자면 병목 현상과 같아서 한 부분이라도 부족하면 전체가 원활해지지 않는다.

둘째, 유지관리비용의 지출에 대한 체계적인 고려가 부족했다. 먹는 물이 제대로 만들어지게 하려면, 지붕면이나 주변의 청결유지, 필터교체, 소독, 수질검사비용, 홍보나 교육이 필요하다. 빗물의 유지관리 비용은 기존에 학교가 지불하던 식수비용의 3분의 1도 안 되기 때문에 학교가 충분히 잘 관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식수를 사는 것과 달리 관리에 대한 지출은 인색했다. 학교가 예산을 관리에 투입하고 잘 관리하는지에 대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셋째 올바른 기술적 문서가 체계적으로 남겨져 전달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전문적인 기술자가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일목요연하게 수집, 정리하는 것이다. 담당자가 바뀌면, 올바로 이해를 못하고 그 사이 이력이나 사정을 알 수 없으니, 원래 설계의도대로 관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넷째, 관리자나 감시자의 투명한 감시와 관리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 재량으로 관리하다보니 학교에 따라 관리 수준이 다르고 기록이 없으니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 특히 초등학교처럼 시설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면 학부모와 같은 감시자의 눈에서 멀어지니, 관리가 소홀해지기 쉽다. 정기적으로 관리기록을 의무화했다면 시설에 더 관심을 가졌을 것이고 책임소재도 분명해졌을 것이다.  

다섯째, 목표의 정량적 설정이다. 과연 몇 년을 사용하기를 원하고 만들어 주는 것인가? 초등학교의 경우 아직 빗물 식수화 시설이 있는 건물까지 개보수를 한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건물을 다시 짓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시설이 설치될 곳의 개발계획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더 경제적으로 설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한 관리계획도 세울 것이다.

문제점을 알면 해결책이 보인다. 빗물 식수화 시설을 만들 때 올바른 사전조사로부터 적절한 설계를 하고, 준공도와 현장의 여건과 지역주민들의 수준에 맞는 설계도서와 유지관리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자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빗물 식수화 사업이 성공하려면 마치 기계를 가동하면 검사 및 유지관리비가 들어가듯이 목표로 한 기간 동안 계속 유지관리비를 책정하거나 스스로 비용을 조달하고 감독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계속 바뀌는 운전자나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과 홍보를 할 수 있는 교재를 개발하되, 학생들이나 지역주민들 중 지역의 빗물시설 감시 운전단을 만들 수 있다. 그들의 SNS를 통해 빗물시설의 현황을 수치적으로 파악하고, 빗물 식수화 시설을 함께 고민하는 대화의 창을 만들어 타 지역 사람들의 사정도 찾아보는 자립형 시스템의 구축이 필수적이다.

물 문제는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 지역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모니터링을 하면서 기술적, 사회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아마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해결책은 우리나라의 ODA를 계획, 실행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고 실행해야만 최선의 결과를 보장할 수 있다. 대규모 물량공세를 하기 전에 제대로 된 모범사례를 벤치마킹해서 스스로 확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계속해서 현지 주민들로부터 고맙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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