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사 재원조달·착공 올스톱…일부 PF 약정 무산 발동동
전문가 "전력정책 대전환 필요, 용단내야 기회비용 줄어"

[이투뉴스] 물경 18조6000억원을 투입해 2021년까지 5기(설비용량 8610MW)의 새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민자사업이 난데없는 풍랑을 만나 표류할 처지에 놓였다. 이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전력시장에서 정산하는 방식을 규정한 관련제도 시행을 정부가 돌연 철회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완공을 앞두고 이미 시운전에 들어간 발전소는 물론 발전기와 보일러 주문까지 끝내고 한창 금융조달 작업을 벌이던 발전사와 지자체, 제도 운영을 준비하던 한전·전력거래소 등 당국까지 일체 혼란에 빠졌다.

19일 전력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민자석탄 측에 정부승인 차액계약제(Vesting Contract(VC). 베스팅컨트렉트) 시행 전면 철회를 시사했다. 2014년 4월 전기사업법 개정을 통해 법적근거를 마련한 뒤 2년여에 걸쳐 세부 운영방안까지 만든 제도를 시행 직전 스스로 거둬들인 셈이다.

당사자인 민간 발전사들은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VC 시행의 적절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던 2년전부터 최근까지 일관되게 이 제도를 밀어붙인 주체가 정부라서다.

VC는 정부가 승인한 가격과 물량, 기간 등에 따라 발전사와 한전이 계약가격과 시장가격간 차액을 정산하는 제도다. 원가가 낮은 발전기의 이윤 제한을 주목적으로 도입돼 현재 민간 부생가스 발전기에 한해 우선 시행하고 있다. 한전 소유 발전자회사는 정산조정계수를 그대로 쓰고 있다.

예고 없던 정책 선회로 십수조원이 투자되는 민자석탄 프로젝트는 당장 공중에 떴다.

본지가 각 발전사로부터 집계한 민간석탄 현황자료에 따르면, 5~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돼 올해부터 2021년말까지 순차 가동 예정인 발전소는 5기 8610MW에 달한다. 전체 투자비는 18조6000억원이며, 이미 투입된 자금(자본금 포함)도 수조원에 육박한다.

우선 GS동해전력이 건설한 북평화력(1190MW)은 조만간 준공식을 갖고 상업운전에 들어간다. GS E&R을 대주주(51%)로 동서발전과 삼탄이 각각 34%와 15%를 투자했다. 하지만 이 발전소는 이번 VC 철회 방침에 따라 대안이 제시될 때까지 당분간 매전(買電) 수익을 임의 정산할 처지가 됐다.

발전기와 터빈 등 주기기 계약과 실시계획승인까지 마친 뒤 본공사 착공을 앞둔 발전소들은 투자비 조달 단계에서 된서리를 맞았다. 금융권과 한창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약정체결 협상을 벌이던 과정에 VC 철회소식이 전해지자 사업성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은행들이 발을 빼고 있다.

A사의 경우 약정 체결을 앞둔 1조원대 PF가 수포로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주기기계약·공사계획인가를 완료하고 이미 실시계획승인을 받았거나 승인 예정인 발전소(괄호안은 용량 및 대주주)는 고성그린파워(2080MW, KDB자산운용·남동발전·SK가스·SK건설), 강릉에코파워(2080MW,국민은행·삼성물산·남동발전), 포스파워(2100MW, 포스코에너지) 등이다.

SK가스와 동서발전, KDB산업은행 등이 참여한 당진에코파워도 실시계획승인을 거쳐 연내 부지 정지공사에 들어갈 참이었다.  정부의 대안마련이 지체되면 이들 발전소의 착공 및 준공일정도 상당기간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은 투자수익을 예측하기 어려운 사업에 자본을 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업자들은 빠른 시일내 정부가 대안을 제시해 주길 호소하고 있다.

현 도매 전력시장에서 당장 VC 대체가 가능한 정산제는 기존 정산조정계수가 사실상 유일하다. 차액계약 형태는 유지하되 비용평가 세부운영 기준을 일부 수정해 별도 정산계수를 적용하는 임시방편이 있다. 물론 이렇게 하더라도 적정투자보수율 산정은 여전한 난제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2년간의 논의가 한순간에 원점이 됐다”면서 “VC가 됐건 다른 방식이 됐건 하루 빨리 방향을 정해줘야 사업자 비용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자석탄 정산결정이 계속 미뤄지면서 재무적 투자자는 물론 설비계약사와 협력사, 발전소를 유치한 지역사회까지 술렁이고 있다. 큰 파장이 우려된다”고 부연했다.

전력시장제도와 수급계획을 수립한 정부는 말을 아끼고 있다. 김성열 산업부 전력진흥과장은 “여러 측면을 고민하고 있고, (대안을)들여다보고 있다. 나중에 (방침을)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만 했다.

노건기 전력산업과 과장은 전원믹스 향배와 관련, “7차 계획상으로도 2029년 석탄비중은 감소하는 것으로 돼 있다”면서 “최근 발표한 대책(신규 석탄 환경설비 강화, 친환경 전원 확대, 노후화력 연료전환 등)을 토대로 구체적 방향을 차기계획에 담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력시장의 큰 변화에 걸맞은 정책적 용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前 에너지경제연구원장)는 "5년도 못 갈 것으로 봤던 CBP(변동비반영전력시장) 제도를 15년째 쓰고 있다. 민간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 이미 제도수명은 다했다"면서 "앞으로 에너지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날텐데, 더 이상 인위적 시장 조정은 안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지금은 전력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로, 훨씬 신중한 설비투자와 수급조정이 있어야 하고 환경이나 온실가스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문제는 (정책)추진력이다. 모두 움츠려 있고 국회는 호통치는 시스템에서 누군가 용단을 내려야 조선·해운과 같은 비용유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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