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위 공기업 업무보고] 野, 민영화 프레임으로 포화
"과거 담론 한발짝도 못 벗어나" 지적도

▲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업무보고에 배석한 공기업 사장단이 착잡한 표정으로 위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영민 광물공사 사장, 김정래 석유공사 사장, 조석 한수원 사장, 조환익 한전 사장, 이승훈 가스공사 사장, 권혁수 석탄공사 사장)

[이투뉴스] 한전이 독점해 온 전력 판매시장을 민간사업자에게 단계적으로 개방하는 내용의 정부 에너지 공기업·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에 대해 국회가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경쟁촉진과 대국민 서비스 제고를 목적으로 시장개방을 추진한다지만 기대효과가 불분명한데다 자칫 요금인상과 공공성 훼손이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7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공기업 업무보고에서 산업위 위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의 전력 판매시장 민간개방 추진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일부 위원들은 기관장을 상대로 국정감사 수준의 추궁을 이어갔고, 기관장들은 혹여나 주무부처(산업통상자원부)로 불똥이 튈까 애써 말을 아끼고 삼키는 듯 했다.

일단 야당 측은 ‘판매시장 개방=민영화’라는 프레임으로 포문을 열어 젖혔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발전자회사 분리 이후 국민편익이 증가했다는 확증이 없고, 오히려 재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며 조환익 한전 사장의 견해를 물었다.

조 사장은 “현재 시점에서 자회사 재통합은 불가능하다. 이미 지역으로 이전해 지역경제 거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다만 위치에 따른 부분적 정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그럼 좋아진 부분은 무엇이냐”고 되물었고, 조 사장은 “한전에 있을 때보다 부채감축이라든지 경쟁적으로 노력했다고 본다. 독립된 경영평가를 받아야 하므로 더 노력할 여지도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김 의원이 “(경쟁을 저지해야 할)한전 사장으로서 할 말은 아닌 듯하다”고 다그쳤지만, 조 사장은 “분할해서 경쟁촉진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거 같다”고 재차 선을 그었다.

조 사장의 정부 대리 설명은 판매시장 개방 문제까지 이어졌다. 김 의원은 “판매시장에 민간이 진출하면 어느 정도 수익을 보장해야 하는데, 앞으로 판매 분리하면 마찬가지 아니냐”고 공세를 폈다.

그러자 조 사장은 “OECD 국가중 100% 독점은 한국과 이스라엘 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부분적 개방은 불가피하다”고 응수했다.

다만 조 사장은 “하지만 전력의 공공성을 저버리는 쪽으로 가선 안된다. 우린 벽지에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하고 있는데 민간이 무임승차해 좋은 사업만 들어가는 건 반드시 제동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판매시장 개방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선결과제란 지적도 나왔다.

윤한홍 새누리당 의원은 “정부가 개방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사전에 국민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초기에 무엇이 좋아질 것이란 자료가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도 “공기업을 민영화 할 때는 자율경쟁에 의한 효율성 증대가 중요한데, 오히려 대기업 특혜라든지 가격인상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사장은 “민간개방이라기보다는 소매시장의 일부 개방인데, 양면성이 있다”고 전제하면서 “한전 입장은 근본적으로 전 세계적인 개방화 추세를 거스를 순 없다는 거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전기요금 인상이나 공공성은 안된다는 것”이라고 쟁점을 고쳐 잡았다.

한전 사장을 상대로 한 유도심문이 무위로 돌아가자 활시위는 산업부로 이동했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캐나다·영국 등의 민간개방이 가격상승만 초래했다며 “아무 근거도 없이 한전에 (민간개방을)강요하는 거냐, 편익 증가한다는 근거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채희봉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은 “새로운 사업자들이 기립하면 경쟁하게 되고, (가격이)오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요금인가제도도 있고 소비자 선택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왜 한전을 흔들어 대기업 밥그릇을 해줘야 하냐. 이해할 수 없다. 한전은 소비자 편익이 증가한다는 확신이 없으면 정확히 반대하라”고 몰아붙였다.

김경수 같은당 의원도 “시장을 개방하면 실제 가격이 낮아질 수 있나.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소매부터 개방하면 요금체계중 우량고객만 편취하고 오히려 요금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과연 요금이 낮아져 국민에게 실익이 가는지 의문”이라고 각을 세웠다.

▲ 조환익 한전 사장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반면 최연혜 새누리당 의원은 시장 개방 여부보다 목적 달성을 위한 개방수준이 중요하다며 논점 조정을 주문했다.

최 의원은 “(정부가 개방을 추진하는 배경은)민간이 싸게 할 수 있으니 그런 것 아니겠냐. 결국 민간도 규모의 경제효과를 가져야 할 텐데 미미한 수준의 개방이면 효과도 없으면서 시장 불안전성만 높일 가능성이 있다. 구체적 실무 로드맵 작성 때 좋은 안이 나올 수 있도록 기관 입장을 대변하라”고 지적했다.

이날 최 의원은 특유의 차분한 어투로 다른 현안에서도 핵심을 잘 짚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력부문에서는 판매시장 개방 외에 전력수급 기본계획과 미세먼지 대책, 발전사 RPS 이행, 신재생에너지 정책 등이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손금주 국민의당 의원은 7차 수급계획상 수요예측이 과다해 공급과잉이 발생했다고 지적하면서 “계획 수립주기를 기존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면 안되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채희봉 산업부 실장은 “수급계획 수립에 1년이 소요된다. 만약 올해 시작하면 앞으로 1년 후에 만들어진다. 변경보다는 8차 계획에서 다루는 것이 맞다. 1년은 일정상 어렵다”고 답변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화력발전소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한데 발전사들이 RPS 의무이행 과정에 바이오매스 혼소로 꼼수를 쓰고 있다"며 정부차원의 제재와 순수 재생에너지 확대를 촉구했다.

답변에 나선 허엽 남동발전 사장은 “내년까지 바이오혼소를 30%까지 낮출 계획”이라며 “다만 우드펠릿은 폐목재와 달리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채희봉 실장은 우 의원이 “잠재량이 1679TWh에 달하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면 신고리 5,6호기가 필요 없다. 이런 것을 제대로 잡야야 하지 않냐”고 추궁하자 “발전사가 나름 손쉬운 부분으로 (RPS를)갔다. 지적에 공감한다”고만 답했다.

반면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석탄화력 감축은 전기요금 인상 부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질의도 나왔다.

정우택 의원은 김용진 동서발전 사장을 향해 “미세먼지 대책대로라면 석탄비중이 높은 5개 발전사가 (감축)대상이 되고, 전기료 인상이 눈에 보인다. 입장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김 사장은 “물론 에너지믹스를 조정하면 전기료 원가에 영향 갈 수밖에 없다. 중장기 수급전망과 환경성 문제에 따른 비용, 탄소저감 비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단계적으로 조정해 나가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가스공사는 해외자원개발 수익성 제고와 도매부문 개방 적절성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은 우즈벡 수르길 프로젝트와 관련, “최근 주총에서 해외사업 부실화 책임이 있는 김모 부사장을 법인장으로 선임했는데 적절한 조치냐”고 따져 물었다.

이승훈 가스공사 사장은 “김 법인장 근무 당시 IS가 현장을 급습했고, 당시 이라크 정부는 IS가 곧 퇴출 될테니 계속 가자고 했다. 지금 이라크가 대체사업을 마련해 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적극적 사업 완결을 위해서라도 이 사람(김 법인장)이 필요하다는 게 제 판단”이라고 확언했다.  

이 사장은 “가스 도매시장 민간개방에 따른 폐혜가 우려된다”는 홍의락 무소속 의원이 지적에 대해서도 “저는 학계에 있을 때부터 경쟁주의자다. 2025년부터 될 일이니 잘 연구해 대응하겠다”고 즉답했고, “적자를 보는 공기업을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찬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직격에는 “손님이 없는 곳까지 가스관이 가야하니, 공익을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며 설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해외자원개발 실패 등을 딛고 공기업이 다시 분투해야 한다며 격려한 위원도 있다.

정운천 새누리당 의원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데, 과거에만 매달려선 안된다. 자원이 없는 나라가 자원개발을 놓쳐서도 안된다"면서 "큰 변화에 어떻게 우리공기업들이 대응할 지 창조적이고 희망적인 보고서가 나와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이날 산업위의 공기업 업무보고에 대한 사후평가는 엇갈렸다. "초반부터 의욕이 넘쳐 보기 좋았다"는 반응이 있었던 반면 "여전히 과거 담론을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전문성도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혹평도 나왔다. 

일부 공기업 관계자는 "업무보고의 의미가 다소 변질됐다"고도 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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