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선회 전력산업·시장 전면 재편 필요
정책 추진력과 의지·대국민 이해 제고가 성패 관건

[이투뉴스] “공기나 물 같은 환경재는 외부불경제(外部不經濟) 특성이 있다. 적당한 오염을 당연 시하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불특정 다수에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래서 환경문제는 사전배려가 효과적이다. 사전에 1달러를 투입하면 수십~수백달러 효과를 얻을 수 있다. 5~10년을 미리 대처해야 문제가 안 생기고, 그걸 못하면 5~10년 뒤 국민이 큰 피해를 본다.”

지난달 15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제4차 KEI 환경포럼. ‘환경과 국민행복’을 주제로 직접 발표에 나선 윤성규 환경부 장관의 표정은 주제와 달리 시종 어두웠다. 미세먼지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으로 성난 민심이 한창 환경부를 향해 있을 때다. 이날 윤 장관의 일성은 “최근 국민들께서 환경 때문에 불행해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였다. 물론 이들사건의 뿌리는 이전 정부까지 닿아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완성도가 100%는 아니지만 ‘화평법’(2015년)과 ‘화관법’(2015) 제정 및 전면개정을 4수만에 성공했다”, “맹탕이란 혹평이 있지만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함께 수립한 미세먼지 특별대책에는 에너지상대가격조정, 발전소 미세먼지 관리 같은 핵심과제가 다 들어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부처의 힘에 밀려 환경부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여론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다만 윤 장관은 '환경부의 권한과 조직이 더 강해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패널 질의가 나오자 “조직이 강해야 일을 할 수 있는 건 틀림없다”고 수긍하면서도 “국가사회 전반적 인식을 융합할 수 있는 선에서는 (환경부가)강하지만, 돈키호테처럼 갈 순 없다. 다른 편에선 경제의 뒷발을 잡는다고 (지적)한다. 양쪽의 균형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로부터 20여일이 흐른 이달 6일 서울 서초동 팔래스 호텔에서 열린 산업부 장관 주재 석탄화력발전 대책회의. 조환익 한전 사장과 산하 화력발전 공기업 5사 사장단을 마주보고 앉은 주형환 장관이 모두발언을 시작하자 장내 분위기가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날 산업부는 30년 이상 가동 노후 석탄화력 10기 순차 폐지, 건설 발전소 환경설비 대폭 강화, 신규 석탄화력 진입 원칙적 제한 및 저탄소 전원 확대 등을 발전분야 미세먼지 세부 대책으로 발표했다. 이를 두고 환경단체 측은 '건설예정 신규 석탄은 강행하겠다는 뜻'이라며 평가절하 했으나 석탄발전이 주업인 화력발전사들은 예고 없던 '석탄종언' 선언에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이날 회의에서 주 장관은 “그간 전력산업은 국가경제 원동력으로 막중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산업경쟁력과 수급안정이 강조되면서 환경에 대한 고려가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기후변화 등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 하루 빨리 저탄소․친환경에너지 중심으로 전력시스템을 바꾸어야할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앞서 하루전 산업부는 RPS 의무비율 재상향 조정 등을 통한 신재생에너지 대폭 확대, 에너지시장의 민간참여 활성화 및 신산업 사업자 판매시장 진출 허용, 가스 도매시장 경쟁 강화 및 LNG발전 용량요금 합리화 등을 골자로 하는 ‘에너지신산업 성과확산 및 규제개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불과 이틀새 다년간 산업부의 2대 금기어로 통하던 '석탄감축'과 '판매시장 개방'이 정책용어로 바뀐 셈이다.

비용과 가격중심의 한국 전기에너지 산업이 효율과 환경적 가치를 우선 순위로 두는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우연찮은 대통령의 미세먼지 발언으로 촉발된 정책 전환인지, 아니면 임계점에 달한 대외환경변화에서 비롯된 피동적 변화인지 분별은 어렵지만 어느 때보다 진일보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같은 변화의 물결은 저성장·저소비·저유가 장기화로 대변되는 뉴노멀 시대 도래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신기후체제 발효, 저탄소·저위험 전원의 비약적 기술발전 등의 영향을 받아 갈수록 속도와 파장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기존 전력믹스, 시장제도, 계통운영 등 전력산업의 모든 근간은 전면적인 재편을 요구받게 될 공산이 크다.  

충분히 예견된 일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는 견해도 있다. 우리보다 앞서 큰 변화를 맞은 일본이나 유럽 선진국의 메이저 전력회사들 역시 공급이 수요를 크게 앞서고 수요정체가 뚜렷해진 시점에 우리와 유사한 변혁기를 맞았고, 이때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지 못한 기업들은 예외없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이 지난 7일 무역투자진흥회의 합동브리핑에서 "우리는 거대위기와 거대기회가 공존하는 대전환기에 서 있다.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에너지신산업을 수출주력산업으로 키우겠다"고 공언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제는 이를 위해 돌파해야 할 난관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강력한 정책 추진력과 관철 의지, 시장경쟁 원칙과 사회·환경적 비용까지 고려한 전기가격 책정, 그리고 오랜기간 값싼 전기료에 중독된 산업과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고 사회적 공론화를 이루느냐에 성패가 달렸다고 지적한다. 

옥기열 전력거래소 전력경제연구실 부장은 "시장자유화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닐수도 있지만, 필수조건은 과도한 요금규제 포기다. 원가연동제만 충실히 해나간다면 한층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더라도 쉬운 길은 아니다. 유기농 과일은 편익이 눈에 보이지만 저탄소는 그렇지 않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책의지와 그걸 뒷받침할 사회적 공론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옥 부장은 "발전부문의 경우 발전량 믹스에 대한 정책과 시장제도에 대한 합의를 만든 뒤 기후와 요금, 수급정책을 아우르는 전원믹스와 시장 매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2030, 2050과 같은 큰 틀의 방향성을 정하고, 거기에 기반해 전력시장을 전면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기업 노조 문제와 민영화 문제로 접근하면 반발도 크고, 의외로 그런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국민들도 많다. 지금도 싸고 충분한 전력이 공급되는데 굳이 왜 변해야 하느냐는 대중도 많다"면서 "관건은 정부의 추진력이다. 변화는 누군가의 용단을 필요로 한다. 성장경제에서나 통하던 시스템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걸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태규 전기위원회 위원장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전 세계적인 방향이다. 후손들에게 지속가능한 세상을 물려주려면 기후변화에 동참해야 하고, 그런 선택은 대가를 요구한다. 지금 전기료에는 그런비용이 빠져 있다"며 "무엇보다 신재생을 언제든 수용할 수 있도록 전력망 계획을 다시짜야 한다.  전력망의 공공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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