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계량기 교체, 도시가스사 자산화, 교체·안전점검 주기 완화
공급비용 반영, 점검인력 유휴화, 수리업체 경영악화 등 선결과제

[이투뉴스] 우리나라에 도시가스가 보급되기 시작한 게 1987년이다. 지난 30년 동안 외형은 크게 성장했으나 서비스 부문에서는 아직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소비자와 최접점인 계량·안전점검·요금 분야는 초기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서비스 수준 향상 및 지속성장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인프라임에도 불구 개선해야 할 사안이 많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가 도시가스 계량·안전·공급시스템과 관련해 기존의 계량기를 양방향 통신이 가능한 최첨단 스마트계량기로 전면 교체하고, 공급자인 도시가스사의 자산으로 책정하며, 계량기의 교체 및 안전점검 주기를 완화하는 등 정책과 제도를 전면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런 정책 변화는 지난 5일 발표한 ‘에너지신산업 성과확산 및 규제개혁 종합대책’에서 5000억원을 투자해 1600만호의 가정용 계량기를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스마트계량기로 바꾼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계량기 선진화·자산화의 큰 틀을 내비쳤다.

이와 함께 차관 주재의 도시가스사장단 간담회를 열어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하고, 시·도 등 지자체 도시가스 담당관 실무회의를 개최해 계량기 공급자 자산화 규정개정계획과 스마트계량기 보급사업을 설명하며, 연내 제규정을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계량시스템 선진화·자산화를 추진하다 일선현장에서의 반발로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듯했던 프로젝트가 청와대 보고 등을 통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추진력을 더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의지를 확고히 한 셈이다.

소비자 편익을 우선한 계량시스템 선진화가 필요하다는 원론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 또한 적지 않다. 요금 승인권자인 지자체의 공급비용 반영, 원격검침에 따른 기존 점검인력의 유휴화 대안, 계량기 수리업체의 경영난 심화 대책 등 선결과제가 수두룩하다.

◆ 다시 떠오른 계량기 자산화·선진화
실태조사에 따르면 계량기 업체 간 경쟁이 가열되면서 원가절감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내구성이 떨어지고 있으며, 도시가스사도 소유권이 없다보니 능동적인 관리에 나서지 못하고, 표준화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관리책임도 모호하다. 계량기 소유는 사용자인 반면 법 규정 상 교체·안전점검 등 관리책임은 도시가스사에 있어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지역별 또는 회사별로 계량기 검정·관리방식도 달라 A사는 유효기간이 다 된 계량기를 폐기하는 반면 B사는 재검정해 다시 사용하면서 소비자 혼란도 빚어지고 있다. 도시가스사가 소유권이 없다보니 교체 또는 검정주기가 도래한 계량기의 처분조치를 놓고 법적 이견도 존재한다.

원격검침이 가능한 다기능계량기로 교체하려 해도 교체비용이 일반계량기 기준으로만 지원돼 추가비용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의 민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안전점검 부문도 문제다. 대부분 계량기가 실내에 설치돼 점검과정에서 사생활 침해 논란은 물론 점검원을 사칭한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도시가스사는 연간 2회인 안전점검 의무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수차례 방문이 불가피하고, 소비자는 점검원 방문에 따른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계량기 검정 주기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계량법 상 주택용 계량기 점검주기는 5년으로, 그동안의 계량기 성능·기술 수준 향상에도 불구하고 1963년 제정된 규정이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 일본 10년, 프랑스 20년 등 대부분 해외 선진국들이 10년 이상인 것과 대비된다.

검침 부문도 다르지 않다. 검침원이 세대별로 방문하거나 소비자의 자가검침 결과를 취합해 요금을 부과하는 인력 의존형 검침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고객 정보수집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공급계약 체결이 면제된 체납자는 채권 추심이 어렵다. 특히 개인정보 수집을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는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이 시행되게 되면 요금체납에 따른 대응이 한계에 부딪힌다. 요금체납 누적으로 발생한 대손상각비는 소매공급비용에 반영돼 요금인상 요인을 유발하고, 교차보조를 초래하게 된다. 2014년 전국 도시가스사의 대손상각비는 112억원에 달한다.

◆산업부가 추진하는 개편방안은
이처럼 계량·안전점검 부문에서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문제점이 많다고 판단한 산업부는 소비자 편익 제고 차원에서 계량기 자산화·선진화를 정책과제로 삼았다. 스마트계량기 전면 교체, 공급자 자산화, 스펙 관리강화, 검정주기 연장, 안전점검 주기 완화 등이 주요 과제다.

계량기 성능 개선의 경우 품질과 스펙을 상향조정하고 원격검침 및 안전차단 기능이 적용된 신형 다기능계량기를 개발, 단계적으로 교체해 2022년까지 1600만 세대의 계량기를 모두 바꾼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검침 편의성과 신뢰도를 높이고, 가스누출 사고를 사전 예방하겠다는 의도다. 일본은 이미 마이콤미터, 안전차단기능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으며,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각국은 2020년까지 스마트계량기 보급을 완료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교체주기는 품질 수준을 높인 계량기를 설치함으로써 계량법 상의 가스계량기 검정유효기간을 기존의 5년에서 8년 또는 10년으로 연장한다는 계획이다. 안전기능이 강화됨에 따라 의무점검주기도 기존 연간 2회인 점검주기를 2년에 1회로 완화한다.

공급자 자산화의 경우 도시가스사가 신규 또는 교체시기가 도래한 G10 등급 미만의 가정용 계량기를 스마트계량기로 설치하고, 그 시점부터 회사의 자산으로 삼는다. 도시가스사로 계량기 소유권과 안전·유지관리업무를 일원화함으로써 공급자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산업부 측은 도시가스산업이 전국 단위의 사업이라는 점에서 회사들이 개별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정부와 도시가스협회 등을 중심으로 추진동력에 힘을 더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 도시가스업계에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있으며. 산업부 가스산업과를 비롯해 도시가스사, 한국도시가스협회, SK E&S 등이 과제별로 검토한 사항을 주기적인 회의를 통해 논의하고 있다. 또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SK E&S가 계열 도시가스사를 통해 서울 강남, 부산, 춘천 일부지역과 홍천 친환경에너지타운 등에 선진형 계량기를 시범운영 중이다.

◆시·도 협조, 피해업계 구제 등 숙제 산적
하지만 각계의 반발이 예상되는 이 같은 도시가스 계량기의 자산화·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선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철저한 검증을 거친 신중한 검토가 요구되는 배경이다.

우선 소매공급비용을 결정하는 시·도의 적정한 반영이 필수다. 스마트계량기로 교체하는데 따른 비용은 연간 950억원에 달하나 교체주기나 안전점검주기 완화 등 제도개선에 따른 절감액은 730억원에 그쳐 매년 220억원 상당의 추가부담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최초 1년차는 기존에 반영된 계량기 교체비의 영향을 받아 인하효과가 발생하나, 2년차부터는 지속적으로 인상돼 5년차 이후에는 매년 전국적으로 평균 ㎥당 8~9원의 공급비용 인상이 예상된다. 공급자 자산화에 따른 투자비의 공급비용 반영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물가관리에 신경을 써야하는 시·도 입장에서는 요금인상 요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숙제다.

아울러 풍선효과로 가정용을 제외한 타 용도의 공급비용이 인상돼 해당분야의 경쟁력 약화가 빚어지면서 또 다른 불만을 초래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수도권의 경우 평균공급비용 적용에 따른 도시가스사 간 교차보조 우려도 크다. 실제로 6개 도시가스사의 평균공급비용을 소비자 요금에 반영하는 경기도의 경우 보급률과 판매실적이 높은 도시가스사와 다른 도시가스사와의 개별공급비용 편차액이 최대 1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앞으로 가정용 계량기 교체에 막대한 투자가 이뤄져 평균공급비용이 올라갈 경우 가정용 비중이 낮은 삼천리가 더 큰 이익을 거두게 된다. 지금도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불합리한 수익구조가 더 확대되는 셈이다.

이와 함께 교체주기 및 안전점검 주기 완화 등으로 수수료가 줄어들면서 고객센터의 운영기반이 흔들리고, 검침원 등 일선현장의 인력 유휴화가 불가피해 상당수의 검침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안마련이 절실하다.

또한 전자식 스마트계량기는 수리가 불가해 교체 후 폐기된다는 점에서 계량기 검·교정 수리업체는 경영악화 및 도산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계량기 비용만이 아니라 통신비, 유지관리비에 대한 소비자 이해와 함께 원격검침 정확도, 통신 품질 등도 100% 담보돼야 할 과제다.

언제부터 해야 한다는 타이머를 걸기보다 철저한 검증을 거쳐 신뢰가 쌓이고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채제용 기자 top27@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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