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원자력진흥위원회 개최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 확정
영구처분장 준공 때까지 건식 중간저장시설 지어 보관
지역·시민단체 "제대로 된 논의 않고 저장고 일방 추진" 반발

▲ 황교안 국무총리(왼쪽 세번째)가 25일 정부 세종로청사에서 열린 제6차 원자력진흥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투뉴스] 기존 원자력발전단지가 갈 곳 없는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폐물)의 저장고 역할까지 하게 됐다. 지하 영구처분장을 건설해 운영을 시작하는 2053년까지란 단서가 달렸지만, 실제 처분장 건설·운영 일정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기한없는 저장시설이 될 공산도 커졌다.   

정부는 25일 서울 세종청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6차 원자력진흥위원회를 열어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을 위한 지하연구시설(URL)과 영구처분장 건설, 핵연료 감축연구 추진을 골자로 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및 '미래원자력시스템 기술개발 및 실증 추진전략'을 심의 확정했다.

이번 계획에 따라 정부는 향후 12년간 영구처분장 유치지역 공모-주민의사 확인-심층 조사 등을 거쳐 2028년까지 처분장 부지를 확정한 뒤 이후 24년간 지하시설을 건설해 늦어도 2053년부터는 처분장을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고준위 방폐물에서 고방열·고독성물질(TRU)을 별도 분리해 독성을 낮추고 연료 일부를 발전용으로 재활용(소듐냉각고속로)하는 미래 원자력기술개발에 나서 사용후핵연료 발생에 따른 미래세대 부담을 저감하는 노력도 병행키로 했다.

이 과정에 정부는 영구처분장 준공 때까지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건식 중간저장시설을 별도 건설, 일단 발전소내 임시저장고 포화 문제를 우회한다는 구상이다. 중간저장시설은 기존 원전부지에 건설하되, 원전과 별개 시설인만큼 따로 지역을 재정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원전 부지내 건식저장시설의 경우 중간저장이 아닌 원전 운영상 보관 목적이고, 중저준위 특별법에서 규정한 사용후핵연료 시설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방폐장 유치지역에 사용후핵연료시설을 둘 수 없도록 한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중간저장시설은 연내 월성원전부터 착공해 한빛과 고리원전도 2018년 첫삽을 뜰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말 현재 국내 사용후핵연료 보관량은 경수로형원전 1만6297다발, 중수로원전 40만8797다발, 연구용원자로 502다발 등 모두 1만3250여톤이며, 매년 운영원전 24기에서 750톤 가량이 새로 배출되고 있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 영덕 신규원전 2기를 포함해 향후 36기가 최소 가동연한까지 모두 가동된다고 가정하면, 올해 이후 경수로형 원전에서 7만3110다발, 중수로형에서 25만5840다발, 연구용에서 1600다발이 각각 추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기존 원전내 임시저장시설은 월성원전이 2019년부터 포화되는 것으로 시작해 한빛·고리 원전은 2024년부터, 한울원전은 2037년부터, 신월성원전은 2038년부터 각각 들어찬다. 그램(g)당 4000베크렐(Bq) 이상의 강한 방사선과 고열을 내뿜는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곳을 마련하지 못하면 기존 원전가동도 불투명해진다. 영구처분장이 없는 원전 운영을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비유하는 이유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원자력진흥위원회 모두 발언을 통해 "원자력 발전 규모가 확대되고 운영실적이 쌓여가면서 방사성폐기물 관리라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겨졌다"면서 "이는 더 이상 미루거나 지체해서는 안될 과제로, 반드시 우리 세대안에 책임있는 자세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총리는 "원자력 정책이 본격 추진된 지 60년이 지났고, 미래의 또 다른 60년을 대비하는 원자력 정책을 논의하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며 "원자력은 경제적이 안정적인 전력공급원이자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이어서 앞으로 기후변화 대응에도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 해외에서 운영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한편 이날 확정된 기본계획을 통해 고준위 방폐물 처리에 관한 정부 차원의 밑그림은 나왔지만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원전 이외 중간저장시설까지 떠안게 된 기존 원전 소재지역의 반감이 커 향후 후속일정 추진에 적잖은 진통이 예상되고 있어서다. 

영광·고창·경주·영덕 등 원전 지역주민과 종교·시민단체로 구성된 탈핵지역대책위원회와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겸한 정책 규탄 시위를 벌였다.

이들 단체는 "정부는 핵폐기물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시급성과 필요성만 강조했을 뿐 정작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이나 시민사회와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않았을 뿐더러 2005년 방폐장 주민투표 당시 경주에 짓지 않기로 법률로 약속한 사용후핵연료 시설을 짓는 것은 물론 지역주민이 입을 모아 반대한 임시저장고 증설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측은 "고준위 핵폐기물 관리는 윤리성과 도덕성을 기초로 국민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져야 함에도 쟁점사안인 임시저장고 문제에 대해서는 지역주민 반대에도 별일 아닌 듯 제대로 된 언급조차 없다"면서 "기본 계획 백지화를 위해 법률소송, 국회와의 공조를 통한 고준위 관리절차 법률 저지 투쟁, 지역 집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원자력진흥위 결정에 맞서 싸우겠다"고 규탄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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