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경제학박사)

이창호
한국전기연구원
(경제학박사)

[이투뉴스 칼럼 / 이창호] 2000년대 이후 전력산업은 지속적인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지구온난화, 신재생에너지, 에너지 소비절약과 같은 지구적인 트랜드가 확실하고 일관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먼 미래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신재생발전설비가 곳곳에 들어서고 전기자동차가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은 2015년 신규발전용량의 절반이 신재생설비이고, 독일은 신재생발전이 전체 발전량의 35%에 달하고 있으며, 덴마크나 하와이는 2050년까지 100% 신재생에너지를 선언하고 있다. 주요국의 태양에너지 설치용량을 보면 2015년 현재 중국이 43GW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독일 40GW, 일본 33GW, 미국 25GW, 이태리 19GW 그리고 영국이 9GW 수준에 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3GW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5년간 태양에너지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연평균 증가율이 무려 74%에 달하고 있고, 2030년에는 태양에너지가 840GW, 풍력이 1400GW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력산업에 불어 닥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은 신재생에너지나 분산형 전원을 기존발전의 보조적인 수단이나 단순한 잉여전력으로 보던 시각에서 점차 주된 공급수단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값싸고 안정적인 공급력 확보에 필수적인 전원으로 간주되던 석탄발전은 온실가스 미세먼지 등으로 말미암아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으며, 원자력도 전원으로서의 역할이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태양광 등 분산전원의 제조, 설치, 운영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으며 여기서 생산된 에너지를 거래, 중개, 관리하는 새로운 서비스가 늘어남에 따라 많은 일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태양에너지만 보더라도 산업 종사자 수가 2010년 이후 2배 이상 증가하여 현재 21만개에 달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다시 두배가 늘어 42만개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너지산업에 ‘프로슈머(prosumer)’라는 생소한 용어가 등장한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도 프로슈머 시대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대규모 발전소로부터 생산된 전기를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일방적으로 공급받던 방식에서 이제는 자가발전설비를 설치한 경우 자가소비는 물론 남은 전력의 판매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경제성과 효율성 그리고 공급안정성이라는 기준에 의해 오랫동안 유지되던 철옹성과 같은 전력시스템에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환경이나 안전과 같은 가치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으며, 동시에 프로슈머를 위한 기술적 경제적 토대 또한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남의 이야기처럼 멀게만 생각되던 프로슈머의 물결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으며 새로운 에너지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프로슈머의 등장은 지금까지 전력 또는 에너지산업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엄격하게 구분하던 에너지의 조달과 유통구조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동안 ‘안정적인 전력공급’이라는 틀에서 전력생산이나 유통 판매를 책임지던 발전사업자나 ‘유틸리티’도 이러한 변화를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이미 전력회사의 전력판매량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정체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분산전원의 보급이 확대와 더불어 장기적으로 판매량 증가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0년 이후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에너지소비가 늘지 않는 디커풀링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근래 들어 이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분산전원 등에 의한 자가발전의 공급비용이 소매요금보다 낮아진다면 전력회사로부터의 전력공급은 당연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태양광발전만 보더라도 공급비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달러 수준이던 모듈가격이 지금은 절반인 50센트로 떨어졌고 2025년에는 35센트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미국의 몇몇 주에서는 태양광발전이 그리드페리티(grid parity)인 kWh당 12센트 수준에 도달하였고 우리나라 또한 머지않아 근접에 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무수히 많은 프로슈머가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프로슈머 확대, 다양한 공급방식, 공급규모, 공급자에 의한 분산시스템으로의 전환 은 궁극적으로 전력수급시스템의 변화는 물론 전력조달과 유통구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어 정부에서도 프로슈머는 물론 소규모 분산전원의 시장거래 허용 등 새로운 정책과 제도개선을 통해 앞으로 나타날 비지니즈 환경조성에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전력산업의 비즈니스는 이러한 새로운 기술과 니즈를 신속히 받아들이고 확대해 나갈 때 형성될 수 있다. 또 다시 시대착오적인 산업구조 논쟁이나 정치적 접근에 빠져서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다. 미국, 독일, 일본 등에는 이미 수십 개에서 수백 개에 이르는 배전 및 판매사업자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경쟁적으로 만들어나가고 있고 이를 통해 시시각각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미래도 과거의 공급사이드 중심에서 배전과 판매라는 수요사이드로의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 새로운 도약과 발전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종업원 1인당 판매전력량이나 설비규모를 가지고 효율성을 판단하던 과거방식은 지금처럼 달라진 환경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이제는 전력, 에너지산업에서 쏟아지고 있는 다양한 유틸리티자원과 기술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서비스와 일자리를 만들어 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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