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비롯한 석유업계 위기감, 대응책 마련 고심
“10년 뒤 수송시장 석유, 전기 판도 바뀔 것” 관측도

[이투뉴스] 정부의 전기차 정책 쏠림현상에 석유업계가 편치 않은 분위기다. 정부에 직접 반기를 들 수는 없지만, 전기차가 과연 올바른 대안이냐는 의구심도 은근히 내비친다.

최근 정부가 전기차 보급확대 정책을 발표하면서 석유업계에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전기차 인프라 구축에 협조를 바란다는 정부 요청에 난색을 표하는 이유다. 내부에서의 공감대도 형성되기 힘들뿐더러 업역 축소, 안전성 논란 등 스스로에게 화살을 겨누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업계 내부에서는 전기차 보급확대 정책이 업역 위협에 적잖은 파장을 부른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시는 전기차 구매 시 일반 시민에게 지급하는 보조금을 지난달 1650만원에서 200만원 인상했고, 제주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대폭 확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경유차와는 상반된 행보다.

여기에 지난달 말 산업통상자원부가 석유업계 유관협회와 4대 정유사에 보낸 ‘전기차 충전기 설치 협조요청’ 공문에 당사자들은 불편함을 숨기지 않고 있다. 주유소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할 경우 안전성과 경제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전기차 인프라 확충의 일환으로 지난 2일부터 시행된 ‘위험물안전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 내용 중에는 분전반의 방폭성능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을 담은 예외조항이 신설됐다. 고정주유설비(주유기)의 중심선으로부터 6미터 이상 분전반을 이격해 설치하는 경우 방폭성능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대형 주유소가 아닌 영세 주유소의 경우 이 같은 예외조항에 해당되기 힘들다. 6미터 이상 이격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부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확보하려면 추가비용이 만만치 않다.

석유업계 한 관계자는 “업역이 엄연히 다르고 연료 종류도 다른데 협조 공문을 보내와 황당하다”며 “멀쩡히 영업하고 있는 가게에 자기 물건도 함께 팔자고 요구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수송 연료가 석유에서 전기로 바뀐다고 해서 문제될 게 없다. 세수확보가 문제이지만, 이마저도 전기에 유류세같은 세금을 붙이면 되는 것”이라며 “정유사들도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고 전했다.

LIG투자증권의 신재영 애널리스트는 지난 3일 ‘전기차 확대, 전기는 충분한가?’ 리포트를 통해 “전기차 보급이 확대될수록 추가로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발전소 건설이 필요하다”며 전기차 확대 시 전력 부족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가 전기차 확대안에 대한 의지는 밝혔으나, 공급 안정성 확충은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다. 

한 관계자는 “정부의 전기차 보급 시도는 20~30년 전부터 시작됐으나 정유사를 비롯한 석유업계의 로비와 기술 부족으로 번번히 저지돼 오다가, 최근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등 친환경 프레임이 대두되면서 그 전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전기차를 친환경적이라고 보기에는 화력발전소로 인한 국민의 피해 규모가 너무 크다”며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는 전기차의 혜택을 보는 반면 원전과 화력발전소가 있는 지방이 입는 피해는 오히려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의 전기차 시장은 수요가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지만 우리는 정부 정책이 인위적으로 키우고 있어 안정화되기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주영 기자 jylee98@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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