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찬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이투뉴스 칼럼 / 강희찬] 극심한 무더위로 호되게 고생한 2016년 여름도 이제 한풀 꺾인 듯하다. 청랑한 하늘을 보며 가을을 만끽하는 사이, 요금 폭탄으로 날아온 8월 분 전기요금 고지서에 마음이 무겁다. 더위가 최고조로 치닫던 8월 중순, 정부와 국회는 당정 전기요금개편 TF팀을 꾸리고, 주택용 전기요금의 누진구조를 개편하고, 산업용 전기요금을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전기요금 폭탄을 통해 온 국민은 현행 전기요금 구조의 문제점을 실감하게 되었고, 이의 개선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고 동시에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한국의 전기요금체계는 1,2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강력한 징벌적 구조를 갖고 탄생하였다. 2004년 개편을 거쳐 요금률은 6개 구간으로 나눠져 있고, 가장 낮은 구간과 가장 높은 구간 사이에 요금률 차이가 11.7배나 난다. 이처럼 누진적 구조를 가진 한국의 전기요금체계는 지나친 전기 사용을 억제하고, 저소득 계층의 부담을 완화하는 두 가지 목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그러나 연일 계속된 폭염으로 냉방기기 사용이 늘면서 가격을 통한 에너지 소비 억제보다는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할 정도로 일상생활을 옥죄는 천덕꾸러기 제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노약자나 영유아가 있는 집에서는 무더운 여름을 일단 나기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에어컨을 가동할 수밖에 없었기에, 이들은 누진적 요금체계를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는 것 같다. 구간을 지금보다 더 단순하게 하는 것, 구간 내 요금률을 낮추는 것, 아예 누진제를 없애는 것 등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대안을 선택하더라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사실은 평균적인 전기요금률은 현재보다 올라간다는 것이다. 즉,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맘 놓고 틀 것이라는 기대는 안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전기를 열심히 아껴서 낮은 요금의 행운을 보거나, 전기 사용이 과다하여 엄청난 요금 폭탄을 맞는 일은 없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기대와 달리 현재 누진제 개편 논의는 쉽게 진행되진 않는 듯하다.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만일 누진제를 없애거나 단순화할 경우, 주택용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여 2011년 대규모 정전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거나, 다른 한편에서는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어 한전에 큰 영업손실이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세금을 통해 보전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물론 주택용은 산업용 전기사용량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지만, 가득 담긴 컵에 몇 방울의 물로 넘치게 있듯이, 주택용 전기사용량 증가를 가벼이 여길 순 없다. 따라서 주택용 전기요금의 누진제 개편 문제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각 주택의 전기 사용 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격 변화에 따른 수요의 변화 소위 ‘수요의 가격탄력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이런 분야의 연구는 상당한 시간과 인력 그리고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한전과 정부의 전폭적인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각각의 전력사용량 구간을 놓고, 각 구간에 내에 있는 소비자들이 가격이 내리거나 오르게 되면, 얼마나 전기사용량을 늘리거나 줄일지에 대해 분석해야 하며, 특별히 구간의 양 끝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변화에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면밀한 분석없는 섣부른 정책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현 시점에서는 누진제 개편의 효과가 어떤 방향으로 나타날지 그 누구도 확답을 내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당정 합동 전기요금개편 TF가 결과를 급하게 내놓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정밀한 분석이 있기까지는 이번 무더운 여름 때문에 평소보다 사용량이 늘 수밖에 없었던 사안을 고려하여 전기폭탄을 받지 않도록 7~8월의 전기요금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이후 본격적인 누진제 개편은 데이터에 근거한 세밀한 분석과 각계각층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책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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