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는 경영실적 고공행진, 주유소는 경영난 호소
양측 윈윈 방안 모색해야…주유소 수 축소는 불가피

[이투뉴스] 석유업계에서 양극화를 보이는 정유사와 주유소. 정유사는 2014년 유가 급락으로 적자를 기록하다가, 하락세 흐름을 탄 이후 유가가 소폭 반등하면서 실적을 회복해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고유가시절 비싼 기름값으로 골머리를 썩던 주유소는 저유가 이후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유류세, 과잉공급에 따른 출혈경쟁, 알뜰주유소의 등장 등 여러가지 원인이 혼재돼 있다는 평가다. 하나의 커다란 산업 안에서 양지와 음지가 갈리는 업계가 상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정유사, 무심한 듯 공들이는 내수시장
올해 초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힘들다고 아우성인 주유소 앞에서 호실적 결과를 발표하려니 신경이 쓰인다”고 털어놨다. 정유산업과 석유유통시장의 성격이 명백히 다르다며 선을 그어온 정유업계가 속으로는 주유소의 경영난을 은근히 신경쓰고 있음을 내비친 셈이다.

지난 1분기 휘발유 기준 정유사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SK에너지 34.6%, GS칼텍스 26.1%, S-OIL 19.2%, 현대오일뱅크 19.5%를 차지했다. 정유사는 “내수시장에서 거두는 수익은 많지 않다”며 공급사로서 주유소 운영난에 대한 책임의 화살이 향하는 것에 불편해 했다.

그러나 정유4사의 내수 매출은 적지 않다. 2분기인 지난 6월 기준 누적 매출규모는 SK이노베이션이 휘발유 9532억100만원, 경유 1조8727억6900만원, GS칼텍스가 휘발유 6846억900만원, 경유 1조2968억8900만원, S-Oil이 휘발유 4814억4700만원, 경유 1조771억5200만원, 현대오일뱅크가 휘발유 5089억8300만원, 경유 1조1732억9500만원을 각각 기록했다. 특히 S-Oil은 휘발유 기준 내수 매출이 수출대비 2배 가까이 이르고, 현대오일뱅크는 경유의 내수실적이 수출의 2배에 가깝다.

매출이 곧 수익은 아니지만, 실상은 “내수시장 수익이 적다”고 입을 모으는 정유업계의 주장과는 크게 다를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영업비밀을 이유로 수익에 대해 철저히 말을 아끼면서도 알뜰주유소 정책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거나, 현물거래로 점유율 전쟁을 펼치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내수시장이 정유사를 구성하는 ‘거대한 축’이라는 의미다.

◆ 주유소 ‘부익부빈익빈’ 예고된 수순인가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주유소 경영실적은 연간 수익 3800만원, 영업이익률 1% 내외다. 협회는 적정마진이 리터당 100원이라면 실제 이익은 20~30원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또 주유소의 상위 40%는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했으며, 월평균 판매량은 손익분기점인 140㎘에 미치지 못하는 주유소도 40%에 달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주유소의 영업이익률은 1.8%로, 이는 일반소매업 이익률(6.1%)대비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기준 전체 1만2000여개의 전체 주유소 중에서 휴폐업 주유소는 폐업 273개, 휴업 532개 등 805개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같은 추세는 최근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6월말 기준 휴업 주유소는 569개, 휴업신고도 하지 않고 영업이 중단된 채 방치된 주유소도 1000여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에 얼마 전 청주의 한 아파트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던 40대 부부가 빚에 시달리다 자녀 2명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운영난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주유소업계는 주유소의 경영악화 요인으로 크게 두가지를 꼽는다. 공급과잉에 따른 출혈경쟁, 정제마진 등 대외변수에 따라 수익률이 변하는 정유업과 달리 국내 시장 경쟁상황과 정부정책 영향을 직접 받는 점 등이다. 특히 ‘알뜰주유소’ 정책에 대해서는 정부 개입에 따른 시장왜곡, 기존사업자의 경영환경을 악화시켰다는 비난의 화살을 던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정부는 과거 허가제였던 주유소시장을 가격 자유화와 거리제한 철폐, 신고제 전환 등 자율경쟁시장으로 만들었다”면서 “기름값 인하를 이유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서 허가제보다도 못한 전매제도에 가까운 상황을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공급 과잉도 주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과 주유소협회 등 석유업계에서는 국내 적정 주유소 수를 7000~8000여개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1만2000여개로 집계되는 주유소 수는 이보다 30% 이상이 많은 규모다. 최근에는 유류세, 신용카드 수수료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주유소의 고충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연이은 호실적을 기록하는 정유사와 달리 주유소시장은 점점 운영난을 호소하는 곳이 늘고 있다(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 정유사, 주유소 경영난 책임 있나
주유소업계는 주유소가 힘들어진 현재 상황에 정유사에도 일부 원인이 있음을 강조한다. 한 관계자는 “주유소의 거리제한이 철폐되자 정유사들이 땅따먹기식으로 우후죽순 주유소를 만든 결과 공급과잉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며 “여기에 스팟성 현물로 일반 공급가격보다 가격을 낮춰 경쟁에서 도태된 곳들이 살아남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공급과잉의 여파로 현재 주유소의 운영난이 가중되는 것은 적정 주유소수로 가지치기가 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주유소업계는 최근 공급 과잉 속에서 차별화를 통한 경영난 타개를 위해 주유소와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등을 설치한 복합주유소로 탈바꿈하는 등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영세한 주유소는 비용과 규모의 문제로 쉽지 않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또 인건비와 관리비를 줄이기 위한 셀프주유소도 급증 추세다.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만으로는 적정 이윤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주유소업계 현실의 방증이라는 분석이 이어지는 이유다.

현물거래 증가도 주유소시장을 교란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주유소와 정유사 간 거래는 판매량 대비 물량거래계약 혹은 일정 비율로 정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한 주유소시장에서 저렴한 현물을 취급하는 주유소가 주변에 있을 경우 가격경쟁에 뒤쳐지기 때문이다.

한 주유소사업자는 “규모가 작고 매출이 높지 않은 영세한 주유소의 경우 정유사로부터 받는 공급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며 “주변에 현물을 취급하는 주유소가 있으면 가격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 정유사에 공급가를 낮춰달라 말해도 큰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운영이 힘든 영세한 주유소는 유지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폐업에도 1억5000만원 상당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영업을 중단한 채 방치되는 곳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유소협회는 공제조합 설립을 통한 폐업비용 지원 등을 정부에 호소하고 있지만, 이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개인 사업자의 폐업비용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과 사회적 가치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 “상생 필요, 주유소 축소 불가피” 공감
정유사와 주유소의 희비교차에 상생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석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는 고도화시설 정비로 인한 정제마진 개선을 실적 일등공신으로 꼽고 있지만, 내수시장의 영향력 또한 적지 않다”며 “주유소시장의 어려움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못박았다. 정유사가 기름을 파는 석유유통구조에서 주유소는 소비자와 가장 가깝고 밀접하게 존재하는 시장인 만큼 두 곳을 따로 떼어놓고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주유소가 급증해 공급과잉에 이르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정유사 간 점유율 전쟁도 한 몫했으며, 정유사가 수익을 창출하는 유통구조에서 주유소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중국에서의 경유 수입과 관련해 정유사와 주유소의 희비가 바뀔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중국 경유가 국내에 들어올 경우, 공급사 다변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주유소와 경쟁사 증가로 부담이 늘어날 정유사의 입장이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알뜰주유소에 대한 비판도 여전하다. 한 사업자는 “알뜰주유소 정책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도태됐을 주유소를 인위적으로 살아남게 만든 것”이라며 “공급과잉에 따른 시장 교란, 자율경쟁시장의 왜곡때문에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이유로 현재 지나치게 많은 주유소수가 적정 규모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게 전망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주유소가 지나치게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무조건 정유사 탓으로 몰아가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1만2000곳에 달하는 주유소수를 1만곳 미만으로 줄여야 현 상황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주영 기자 jylee98@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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