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자원 석학에 길을 묻다] Wide Interview-김태유 서울대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교수
"진짜 책임져야 할 이들은 에너지·자원 전문 학자…책임지는 학자로 기억되고파"

▲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경제학 박사)

[이투뉴스] 1973년 발발한 1차 오일쇼크로 바람앞 촛불 신세가 된 한국 경제를 목도한 공학도는 태평양을 건너 유학길에 올랐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에너지·자원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 위기를 해결하는 학문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하겠노라고 결심한 터였다. 에너지·자원을 가장 잘 가르친다는 선진 대학을 찾아 나섰고,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에서 경제학(석사)와 콜로라도스쿨오브마인즈에서 자원경제학(박사)을 수학했다. 이후 컬럼비아대 박사후연구원과 아이오나대 교수를 거쳐 모교인 서울대 자원공학과 강단에 선 것은 9년만인 1987년. 이미 한국 경제는 또 한 차례의 오일쇼크(1978)를 지나 3저(低)(저금리·저유가·저달러)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국내 자원경제학자 1세대이자 에너지·자원, 정책·기술 분야 최고 석학(碩學)으로 꼽히는 김태유(65)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운명처럼 이 분야와 연을 맺게 된 얘기다.

그는 학자출신 발탁 관료로 공직사회 혁신에 불을 댕겼다.2003년 노무현 정부의 초대 대통령 정보과학기술 수석보좌관으로 임명돼 저항을 무릅쓰고 이공계 공직진출과 이공계박사 사무관 특채, 신성장동력산업 지정 및 육성, 과학기술부총리와 기술혁신본부의 신설 등의 굵직한 정책을 직접 입안하고 관철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국정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면 우선 본인이 학자로서 국가발전에 관한 학문적 이론을 체계화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는 이유로 직을 내려놓고 학교로 돌아왔다. 김 교수가 3차 오일쇼크 발발 경고등을 켠 것도 이즈음이다. “중동 산유국에서 분쟁이 생기거나,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중국의 엄청난 석유소비 잠재력 탓에 국제유가가 앙등해 곧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내용이다. 당시 그는 한 신문 기고문에서 “3차 석유위기 위협에 대처하는 가장 현실적 방법은 해외 유전의 자주개발”이라며 프랑스 토탈과 같은 한국계 거대 석유회사 육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당시 유가는 배럴당 40달러 안팎이었다.

여기저기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서울대 교수가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 되겠느냐”, “100달러 시대가 오면 나라가 망한다. 함부로 그런 얘길 하면 안된다” 등의 감정적 대응이었다. “언제쯤 100달러 시대가 올 것 같냐”면서 지레 몸을 사리는 관료도 있었다.(2009년 <정부의 유전자를 변화시켜라> 발간 동기가 됨) 하지만 경고는 현실이 됐다. 중국의 수요증가와 함께 2007년경 가파르게 상승하던 유가는 단숨에 100달러를 뛰어넘어 이듬해 최고 147달러선까지 치솟았다. 깜짝 놀란 정부는 뒤늦게 해외유전개발 투자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미 때가 늦어다'며 적극 만류했다. 오일셰일에 대한 미국의 막대한 투자와 연구 동향을 주시하던 그는 유가 폭락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강연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유가가 다시 100달러 이하에서 안정되고, 3년 이내에 60~80달러를 기준으로 등락할 것”이라고 호언했다. 하지만 동조하는 이는 없었고, 정부 역시 그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유가는 1년 만에 반토막 이하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수십조 원의 국민세금이 해외 자원 투자로 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김 교수는 가슴을 쳤다. 급기야 제자들을 불러 모아 ‘에너지 연구’ 중단을 선언했다. 표면적으론 많은 후학이 양성됐으니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이유였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청년시절 이역만리 해외 광산대학으로 유학하며 쌓은 학업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하겠노라고 다짐했는데, 정작 학자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좌절감이 컸다. 물론 4차 산업혁명과 지식기반사회와 같은 미래 담론 연구에 전념한다는 계획도 하나의 배경이 됐다. 에너지·자원 정책 분야 대표 학자로 유수 저서와 논문을 펴낸 김태유 교수의 죽비소리는 그렇게 이 분야에서 서서히 멀어져갔다. 더러 전력산업의 난맥상이 드러날 때마다 2001년 구조개편 당시 ‘시기상조론’을 설파한 그를 회자하는 이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약 8년이 흐른 최근, 다시 그가 에너지 분야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올초 발족된 미래에너지융합포럼과 지난 6월 출범한 ‘포럼 에너지 4.0’의 대표를 맡고 있다. 두 포럼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4차 산업혁명, 에너지신산업, 기술혁신과 융복합 등으로 최근 연구활동과 맞닿아 있다. 지난 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공대 교수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100분을 훌쩍 넘긴 인터뷰는 목차 달린 단행본처럼 일목요연하고 명징했으며, 울림이 컸다.

- 왕성한 연구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지내셨나

“공학과 경제학에 이어 역사학을 한 8년쯤 공부했다. 이것은 학문적 관심의 분산이 아니라 집중이다. 에너지·자원과 기술은 산업혁명의 동력인데 1,2차 산업혁명의 역사를 모르면서 3,4차 혁명의 동력을 얘기할 순 없다. 전통스포츠가 달리기, 들기처럼 개별 역량만을 요구한다면 근대스포츠인 축구는 종합 역량과 집중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단 하나 국가발전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이다.

- 우리의 시대적 환경과 그 앞에 놓인 도전, 또는 시련은 무엇인가

“시대적으론 지구온난화와 4차 산업혁명, 저유가일 것이고, 우리나라 내부적으론 경제성장 동력 상실, 소득 2만달러대 중진국의 함정, 구체적으로는 청년실업, 저출산, 고령화, 노인빈곤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성장이 정체되다보니 성장과 복지의 제로섬 게임이 심화되고 있고, 이것이 이념갈등과 빈부갈등, 세대갈등을 낳고 있다. 궁극의 해법은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포지티브섬 게임으로의 전환이다.

- 지구온난화가 세계경제의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 김태유 교수

지구온난화처럼 지구적이고 인류적인 문제에 대해 멜더스적 비관론과 유토피아적 낙관론이 부딪히고 있다. 양심적인 지성인들은 전자에 많고, 진취적 엘리트 중에는 후자가 많다. 이 두 상반된 논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인류문명이 발전해 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멜더스적 비관론이 성공했다면 아마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멜더스의 인구론이 결국 틀렸지만, 70년대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란 보고서를 통해서 자원고갈에 관한 비관론으로 계승되었다. 그러나 현재 이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그리고 또다시 지구온난화로 비관론이 대두된 것이다. 나는 비관론과 낙관론 자체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서로 균형을 맞추면서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게 내가 얘기하는 변증법적 발전이다. 미래를 예측하거나 논하는 것은 지나간 역사에 대해서 깊은 반성과 통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사회의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 균형감각을 상실한 흑백논리 쪽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라는 문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깊이 인식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비관론과 낙관론에 대해서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 화석연료 이용에 따른 온난화는 불가피해 보이는데

궁극적으로 신재생에너지로 가야한다는데 동의한다. 다만 자원빈국인 우리나라가 중간에 보틀랙(Bottle rack)이나 데스밸리(Death valley)에 빠지지 않고 현대 화석연료시대에서 미래신재생에너지시대로 잘 넘어가기(Soft landing) 위해서는 그 가교 역할을 천연가스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천연가스는 저공해 에너지로서 온실가스를 덜 발생시키고, 석유처럼 한 지역에 편재돼 있지 않고 지구상에 비교적 고루 분포돼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반도 북쪽 동시베리아지역에 천연가스 많이 매장돼 있다. 시베리아 천연가스가 우리가 화석연료 시대로부터 신재생에너지시대로, 또는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 사회로 넘어가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특히 한반도를 관통하는 가스파이프라인은 2030년경 상용화가 예측되는 북극항로의 해빙과 함께 한국경제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 4차 산업혁명의 정의와 성공요건은 무엇인가

178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1차 산업혁명을 석탄, 금속, 직물혁명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100여년 후 독일과 미국에서 일어난 2차 산업혁명은 화학, 전기, 강철혁명이다. 산업사회에서는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소위 기간산업으로 일컫는 철강, 에너지, 화학, 전기산업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3차 산업혁명으로 넘어가게 되면 주로 ICT나 신재생에너지기술에 근거한 산업이 중심이 되고,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3D프린터, 사물인터넷 나노로봇, 유전자 가위 등 ICT, BT, NT의 융복합기술 등으로 훨씬 더 다양하고 광범위해진다. 특정한 산업을 꼭 해야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많은 기술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선별적으로 취사선택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앞선 1, 2차 산업혁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토대로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연구되어야 한다.

- 4차 산업혁명은 주체는 누구인가

“4차 산업혁명의 경우에도 정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1차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은 유럽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던 변방 국가로 유럽의 후진국이었다. 영국은 비가 많이 내려 풀이 잘 자라고, 그래서 양을 많이 키웠다. 그래서 양모를 수출했지만 잘살지 못했다. 부가가치를 높여보자 해서 1337년 양모수출금지법을 만들어 모직물 상품을 만들어 수출하도록 강제하는 법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확보하기 위해 1555년 반제품 수출금지법을 만들어 완제품만 수출하도록 했다. 하지만 인도가 식민지로 편입되면서 캘리코면이란 부드러운 면직물이 수입됐고, 이른바 ‘캘리코 열풍’이 불어 모직물이 안 팔리기 시작했다. 결국 영국은 1700년 인도산 캘리코면직물 수입금지법을 만든다. 그럼에도 밀수가 판을 쳤고, 그래서 1721년 영국은 전대미문의 캘리코면 직물착용금지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겔리코면 수입이 근절되자 영국에서 모직물 산업이 되살아난 게 아니라 기계화된 면직물 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영국의 산업혁명이다. 결국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영국인들이 정책적으로 산업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업혁명의 발생 조건을 얘기하는데, 산업혁명은 사람이 일으켜야 하는 것이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영국 산업혁명을 뒤따르는 독일과 미국 산업혁명, 한국과 대만, 중국의 산업화 과정도 대부분 국가가 정책적으로 견인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시장에서 경제가 항상 저절로 성장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경제성장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 자본주의는 소위 ‘자본주의 4.0’으로 진화하고 있나

자본주의 발전과정을 잘 정의한 사람은 <자본주의 4.0>을 펴낸 칼럼리스트 칼레츠키다. 학자는 아니지만 그가 분류해 놓은 경제성장 과정에 학계에서도 대부분 동의한다. 미국의 대량생산에 의해 시장을 중심으로 대기업들이 일으킨 자본주의 시대를 자본주의 1.0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영원할 것 같던 자본주의 1.0 시대는 대공황으로 막을 내린다. 풍요속의 빈곤, 즉 상품은 있는데 살 돈은 없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다. 유효수요를 자극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뉴딜정책은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하등의 증거가 없다. 정치적으로만 성공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세계대전을 중심으로 완전고용이 이뤄졌고, 뉴딜정책이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유효수요를 만들어 세계경제가 전후에도 활황을 이뤘다는 게 기존의 해석이다.

하지만 나는 반대이론을 제시하고 있는데, 만약 대공황이 엄청난 전쟁수요에 의해 해결됐다면 종전과 함께 다시 불황이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종전 후 30년간 골든에이지(황금기), 즉 번영의 시대가 왔다. 나는 이를 ‘불사조 효과(War, Peace and Economic Growth: The Phoenix Factor Reexamined)’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2차 대전은 그냥 수요만 자극한 게 아니라 엄청난 생산기술과 신기술의 등장을 촉발했다. 가령 현재의 컴퓨터는 전시 탄도계산과 암호해석에서 기원했고, 인터넷은 군(軍)이 사용한 알파넷에서 나왔다. 또 어군탐지기는 잠수함을 잡는 음향탐지기가 기원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핵심적 과학기술의 새로운 발명은 전쟁 때 많이 나왔다. 2차 대전은 경제적으로 단순한 전쟁수요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의 창출과 발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30년간의 황금기가 지나고 오일쇼크 터지면서 스테그플레이션(경기침제속 물가상승)이 왔다. 케인스의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자본주의 2.0 시대가 지나고 자본주의 3.0 시대가 왔다. 독일 프리드리드 하이에크의 자유경제이론을 바탕으로 뎃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공급중심 구조조정)가 추진되면서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라, 정부는 손을 떼라’라고 주창한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다. 달리 말하면 시장만능주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 없고 금융거품과 빈부격차만 키워 놓았다. 게다가 2008년 금융위기 발발로 신자유주의는 해결책이 아니라 훨씬 더 큰 문제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판명 됐다. 자본주의 3.0 시대의 종언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4.0 시대의 도래이다. 혼합경제, 따뜻한 자본주의 등 자본주의 4.0에 대해 다양한 가설이 등장하고 있다. 나는 자본주의 4.0의 실체를 경제성장론(Economic Growth, Springer, 2013)에 제시했다.

- 간략하게라도 설명해 달라 (그는 화이트보드에 도식을 그려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가령 우리가 사용하는 모바일폰(피쳐폰) 가격이 20만원이라 치자. 일단 수요를 자극하면 판매량이 계속 늘거다. 하지만 모바일폰 보유자가 점점 늘어날수록 수요는 줄고, 폭발적 새 수요가 생기지 않는다. 이걸 해결하려면 100만원 짜리 스마트폰을 새로 만들어 팔아야 된다. 나는 신기술이 만드는 신제품과, 신제품이 만드는 신수요만이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이 ‘확대재생산체제(Expensive Reproduction System)이론’이다. 경제가 발전하려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통하여 시장에서 이윤이 창출되고 자본이 축적돼 소득이 높아진다. 또 이것이 기존수요를 증가시킨다. 또 기술혁신이 신제품에 의한 거대 신수요를 창출하고, 공정혁신이 신제품을 대량 공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속하는 산업사회(Accelerating Industrial Society)” 이론의 기반이다. (현재 김 교수의 ‘확대재생산체제이론’은 유럽 석학들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고, 공동연구가 제안되고 있다). 지금 내 연구의 핵심은 4차 산업혁명이고, 자본주의 4.0 연구가 바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고찰이다.

- 한국 경제, 한국의 자본주의는 어느 지점에 와 있나, 난맥상은 무엇인가

“한국사회는 아직도 자본주의 3.0에 매몰돼 있다는 사실은 가슴 아픈 일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IMF 경제위기 때부터 한국경제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3.0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어떻게 3.0을 벗어나 4.0으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이 시대의 화두이다. 조선은 500년간 주자학의 나라였다. 주자학은 상당히 선명한 흑백논리에 가깝다. 그래서 주자의 해석과 조금만 다른 해석을 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렸다. 그러다보니 유학의 새로운 담론도, 해결책도 나오지 못했다.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데 조선은 위정척사(衛正斥邪)로 주자학에 집착하다가 결국 망국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최근 우리사회의 시장논리도 상당히 선명한 논리이다. 특히 신자유주의나 시장만능주의에 가까울수록 더 그렇다. 시장이 다 해결해준다, 시장이 절대 선이란 식이다. 안타깝다. 이런 접근이 자본주의 3.0에서부터 4.0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한계가 되고 있다. 사실 경제란 것 자체가 시장에 기반한 것이다. 경제학자는 시장을 연구하는 사람이며, 시장론자가 아니라면 경제학자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시장론자라면 자본주의 3.0시대의 신자유주의적인 시장만능주의를 추종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시장만능주의가 시장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사나 약사 등의 의료인들은 의약의 효능만 아는 사람이 아니다. 진짜 의료인은 효능보다 부작용을 더 잘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시장논리는 시장의 효능만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만능주의나 신자유주의는 시장논리가 아니다. 진짜 시장론자는 시장의 한계와 부작용을 철저히 아는 사람이며, 시장 실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본주의3.0 시대의 시장론을 아직도 그대로 주장하는 분들은 진정한 시장론자가 될 수 없다.

- 전력산업 구조개편, 또는 전력시장 경쟁정책이 연상된다.

“전력산업은 우리나라 에너지산업의 꽃이다. 자본주의 4.0시대의 동력도 석탄, 석유 보다 전력이 주역이다. 그런데 우리의 전력산업구조조정은 자본주의 3.0 시대의 신자유주의에 기반해 이뤄졌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3.0이 4.0시대로 바뀌면 방향전환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자본주의 3.0에 안주하고 있다. 가슴 아픈 사실은 석유·자원에 대한 잘못된 투자로 국민세금 수십조원이 날아가고, 전력산업 구조조정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엄청난 기회비용을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정치를 탓한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정치인이 유가의 등락을 직접 예견할 순 없다. 잘못된 자문에 귀를 기울인 것에 대한 책임은 있을 수 있다. 관료 역시 마찬가지다. 순환보직으로 전문성이 없다. 에너지를 모르는 관료가 에너지를 맡고, 에너지를 맡던 관료가 다른 보직을 받는다. 더욱이 한 분야만 판다면 승진의 기회를 잃는다. 관료들 역시 변명의 여지는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학자나 연구자 같은 전문가는 본인의 행적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진정한 학자라면 지나간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 반성하고 더 공부하여 개선해야 한다. 물론 정치인이나 관료들도 책임이 없을 순 없지만 진짜 책임져야 할 이들은 에너지·자원을 연구하는 학자다.

- 중대 기로에 선 에너지산업, 정책은 어떻게 가야 하나

“지금의 저유가는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이 대목에서 김 교수는 과거 신고유가 시대 및 유가폭락 경고,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투자 신중 권고 사례 등을 설명했으나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따지는 것은 결코 생산적이 아니다”며 비보도를 당부했다) 우선 첫째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에 ICT와 관련된 융복합 신기술의 도입이 시급하다. 전력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전력 판매시장이 개방돼야 하고, 소위 스마트그리드 이후의 여러 신기술이 적극 도입돼 한국의 전력시장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신기술의 테스트베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력산업이 신기술 쪽을 서둘러 이동해야 한다는 이 제안에 대해선 많은 분들의 동의하시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정부의 신산업 육성정책은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원래 한국의 전력산업 구조조정도 발전 보다는 배전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이것은 지금 에너지 신기술산업 도입에 정부의 정책적 역할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 3.0시대에 단행한 발전산업의 구조조정 방향을 수정하는 일이다. 발전 5사를 원별이 아닌 규모로 갈라놓으면 어느 한 기술도 개발하지 못한다. 기술개발 지연은 4차 산업혁명의 실패를 의미한다. 지금처럼 한수원을 제외한 5개 발전자회사가 석탄, 가스, 석유 발전설비를 골고루 나눠 운영하는 체제에서는 기술개발이 어렵다. 석탄발전사, 가스발전사, 석유발전사 식으로 완전 재편해 전문화가 돼야 한다. 화력발전의 경우 연료비와 장치․기술비용이 95%에 달하고 인건비는 5% 이내다. 5개 발전사로 분리해 경쟁해봐야 국제 연료시장에서 바잉파워만 약화된다. 이 상황에서 회임기간이 5~10년 이후로 긴 해외자원개발 투자를 하면 현금 수지가 나빠지고 부채비율이 올라가서 성과급이 줄어드니 나서지 않는거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석탄발전을 폐지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단편적 대응에 불과하다. 어차피 우리가 석탄화력을 줄여도 개도국은 엄청난 양을 사용한다. 석탄화력을 한 개 발전사로 전문화하게 되면 ‘저탄소 미세먼지 제거형 신 발전기술’을 개발해 수출할 수도 있고 탄소배출권도 확보할 수 있다. 다음 정부에서 이를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세먼지를 줄이는 초초임계압(USC), CCS(탄소포집저장) 기술 등을 가급적 우리가 먼저 개발하되, 어렵다면 외국서 원천기술을 사들여 상용화 하면 된다. 과거 우리나라의 CDMA 성공도 퀄컴기술을 도입해 가능했다. 스마트폰도 시작은 애플이 했지만 삼성의 시장마켓이 더 크지 않나. 발전산업에서도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시장 기본 규모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규모의 경제, 기술의 경제, 범위의 경제 등을 달성하려면 발전사를 현행 5개사 체제에서 발전원별로 재편해야 한다.

세 번째 제안은 저유가 시대를 십분 활용하자는 것이다. 해외자원을 저렴하게 자급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해외자원을 확보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밀어줘야 한다. 공기업보다는 투자의 성공과 실패를 직접 책임지는 민간기업이 해외유전개발펀드를 만들어 그 자금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베리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구축도 중요하다. 파이프 라인이 구축되면 석유나 LNG가격이 상승해도 도착지로 오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엄청난 바게닝 파워를 갖게 된다. 앞으로 북극항로가 녹아내리면 북극항로 상에 거점항구를 확보하는 나라가 성공할 것이다. 실크로드에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할 에너지가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우리나라는 거점 항구를 확보하기에 상당히 좋은 조건이다. 북극항로가 대한해협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거점항구가 생기면 항구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공장이 생기고 물류중심이 된다. 시베리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은 거점 항구와 배후단지에 에너지 공급을 위한 최선의 대안이다.

마지막으로 전력예비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개인적으론 30% 이상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과거 3저 호황 때 우리가 고도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충분한 전력예비율이다. 가정이지만 일본, 중국, 동남아에서 분쟁이나 지진 같은 재해가 터져 우리나라가 대안 생산기지가 되더라도 전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공염불이다. 지금은 낭비적이라고 보이지만,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5만달러 시대로 가려면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30% 이상의 예비율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충분한 영향이 공급돼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 에너지믹스 논쟁이 불거지는데, 항상 에너지믹스는 황금비율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들어 천연가스, 특히 LNG 부분이 과소평가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 에너지·자원 전문가, 에너지·자원 학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사실 안되고 있고, 학자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에너지전문가라든지 각종 정부 위원회 역시 소위 관록을 기준으로 일을 맡기는 건 이제 곤란하다. 무슨 책을 썼는가, 무슨 논문을 썼는가, 과거 어느 시점에 어떤 정책자문을 했는가가 중요하다. 유가가 오를 때 오른다고 말하고, 내릴 때 내린다는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정부와 언론이 힘을 모아 에너지·자원 분야의 참신한 신세대 전문가를 많이 발굴해서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제 책임지는 성숙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에너지·자원 분야는 열심히 연구하는 신진학자들이 많다. 후학들이 많은 일을 잘 해줄거라 기대하고 있다.”

- 훗날 어떤 학자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한참을 뜸을 들이더니)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책임지는 학자가 됐으면 한다. 학문이란 흥미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와 행적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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