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신성장산업포럼 세미나서 전문가 한목소리
근본적 제도개혁 조속 촉구…당국은 온도차

[이투뉴스] “문제는 제도다. 열심히 일하면 뭐하나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일시적 대응책보다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전환기에 놓인 전력산업의 연착륙을 위해 전력시장의 구조적 제도개혁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현행 변동비반영(CBP) 도매 전력시장은 수급안정, 소비자보호, 경쟁구도 형성 등에서 이미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므로 시급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3일 국회신성장산업포럼이 주관하고 신성장산업연구원과 민간발전협회 등이 주최한 ‘전력정책제도 개선 세미나’에서 경제학 진영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전력산업 및 시장과 관련한 제도개혁을 사실상 손놓고 있다고 질타했다.

포럼에서 ‘전력산업의 제도적 개선 방향’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조성봉 숭실대 교수는 정부가 포기한 전력산업 제도 개혁 과제로 ‣발전부문 민영화 ‣배전 및 판매분할 ‣소매요금 구조개혁(용도별→전압별) ‣전력시장 개선(CBP→PBP→TWBP) ‣연료비 연동제 등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당정이 제도개혁 추진과정에 감당해야 할 행정적 책무와 정치적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가운데 근본적 제도 개혁 없이 대증요법을 반복, 전력 공급안정성이 취약해졌고 송전대란, 누진제 논란, 온실가스 미대응 발전설비 구성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문제 해결은 산업구조와 수급계획, 규제·요금·시장제도 등의 근본적 개편이 정공법이란 견해다. 조 교수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1차에너지(연료) 비율을 먼저 정한 다음 설비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수급계획을 바꿔야 하고, 한전 부채비율 개선을 위해 정부가 유상증자를 하되 여력이 안된다면 한전지분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제제도는 전기위원회의 위상 강화, 시장제도는 판매사업 경쟁을 전제한 계약시장 활성화를 각각 주문했다. 조 교수는 “전기위원회를 산업부로부터 독립시키고 준사법기관기구화 해야 하며, 시장제도는 판매경쟁을 선행조건으로 양방향 가격풀(Pool) 계약시장을 도입하되 발전용 가스가격 정상화를 전제로 기저부하와 첨두부하 시장 통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원철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세계 전력시장 추세 및 국내 전력시장 선진화 방안’을 주제로 한 발제에서 해외 전력시장 대비 한국의 시장제도가 전근대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해외 전력시장의 경우 전원믹스가 석탄 중심에서 천연가스 및 재생에너지로 바뀌고 있고, 도매시장 가격 하락으로 설비투자가 위축됨에 따라 각국이 용량시장 개설 등 다양한 유인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선진국은 산업 구조개편 이후 공정경쟁을 위한 지속적 시장감시체제를 마련하고 대부분이 소매시장을 완전 개방했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반면 우리는 전력생산 세계 10위, 원자력 소비 세계 4위 등 덩치를 키우기는 했으나 외부 환경변화 대응, 미래 비즈니스 육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미흡하다”면서 “수급계획은 시장메커니즘을 활용해 성격과 기능을 재조정하고, 전력시장은 경쟁적 가격입찰시장 도입과 용량시장 개설, 소비자 선택권 확보를 위한 판매경쟁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제발표에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도 현행 전력산업 및 시장제도에 대한 구조적 체제 전환의 시급성을 역설하는 의견들이 다수 개진됐다. 다만 정부와 한전 측은 전력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보호 등을 이유로 신중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온도차를 나타냈다.

천명윤 포천파워 상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점에 해결하고 제대로 넘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게 될 수 있다”면서 “전력산업이 갖는 중요성을 볼 때 지속가능성을 이루지 못하면 향후 어떤 민간자본이 이 산업에 투자하겠냐”면서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핵심은 공정한 경쟁이다. 85%의 공적영역이 산업을 왜곡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이재욱 이투뉴스 대표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답보하고 소모적 논쟁이 반복되는 사이 해외 전력시장은 지속적으로 진화했고 신기후체제 발효 등 전력정책의 외부환경도 크게 달라졌다”면서 “전력산업이 한 단계 도약해 국부창출에 기여해야 하는데 땜질식 처방으로 누더기처럼 변한 기존 시장제도를 그대로 둔 채 진일보한 논의를 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다만 지금까지와 같이 전력산업을 이분화 하고 진영논리로 가르는 논쟁으론 한발짝도 제도개선을 이룰 수 없다. 진정성 있는 대국민 설득과 이해관계자의 소통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특히 수급계획은 시장운영과 정합성을 갖고 시장부문 선진화, 에너지신산업 경쟁력까지 두로 고려해 수립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민간발전사 측의 적정수익 회수기반 요구와 학계의 판매시장 개방 요구에 대해 한전 측은 면밀한 검증과 소비자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며 신중론을 폈다.

김병인 한전 전력시장처 전력거래실장은 “시장에 진입한 발전기라고 모든 발전기가 투자비를 전액 회수할 순 없고, 현실적으로 독립 계통에서의 안정성과 수급 불확실성 등이 고려돼야 한다”며 “전기소비자 부담을 생각할 때 발전사업자 수익규제는 불가피하며, 판매경쟁은 국가경제나 서민경제, 공공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전기료 인하 등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은 독점 상태에서도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논쟁에 대해 정부 측은 현행 CBP제도가 외부 환경변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현실적 여건을 감안한 점진적 제도개선을 도모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김성열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과장은 “정부가 전력산업과 시장을 운영하면서 시대상황 변화로 일부 비효율이나 왜곡이 나타난 건 사실이지만 오해가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며 “LNG발전의 경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향후 전망에 대해 여러 관측이 있지만 현 시점에서 단적으로 (미래를)판단할 수는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김 과장은 “원전은 기저부하로서 역할이 있고 첨두발전기도 다른 역할이 있는데 기능 차이 탓에 시장제도가 나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다만 LNG발전에 대해 분산전원으로서 나름 상당히 정책적 지원을 했다고 생각한다. 향후 시장제도라든지 공정경쟁 중심으로 정부도 계속 신경을 쓰고 시장감시 기능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이슈든 최종 귀결은 전력산업의 구조다. 시장참여자들을 보면 하이브리드 형태인데 민간중심 해외시장 제도에 비춰볼 때 안맞을 순 있지만 전력소비자 보호가 담보되는 가운데 신산업, 신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들어와 혁신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우리 전력산업의 또 하나의 가치는 국민들에게 요금이 부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란 걸 유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시각에 대해 학계는 당국이 사안의 심각성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조성봉 교수는 “모든 발전기 비용을 다 대 줄 순 없다. 틀린말은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LNG발전이 모두 고사하게 생겼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반박했다.

조 교수는 “한 두 개 발전소에 문제가 있다면 모르지만 모든 LNG발전에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소비자 차원에서 규제한다고 하지만 발전사업자가 죽으면 소비자도 죽는다. 시장은 균형이다. 계통운영상 비싼 발전기를 운영하는 이유는 보완재적 성격 때문이다. LNG를 살려야 원전과 석탄도 돌릴 수 있다. 총제적인 개편 로드맵을 수립해 개편 일정을 논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원철 교수도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봐야 한다. 과연 전력산업의 덩치가 이대로 유지될 것인가는 의문”이라며 “정부와 한전은 CBP가 어쩔 수 없다는 투인데, 사실 현 CBP는 수급안정성이나 효율화 등에 모두 부합하지 않고 있다. 문제가 확실하고 대안도 나와 있는데 우리 산업 특성만 얘기하는 건 책임 회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각을 세웠다.

이에 대해 김성열 과장은 “변동비 시장이 이상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발전원가도 (포함 안된)환경비용이라든지 정책비용이라든지 다른 요소들도 많다. CBP로 한계가 있다는 건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제도개선과 진화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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