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어둠이 깔린 한밤, 원자력발전소 인근 하늘에 새떼가 날아가고 쥐떼가 밤거리로 뛰쳐나온다. 곧이어 원전 주제어실 각종 계기판에 경보등이 켜지고, 주 배관이 틀어진 듯 고압의 스팀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정도의 지진과 함께 원통형의 원자로 돔이 흡사 원자폭탄처럼 폭발해 인근에 주차된 자동차들을 날려버린다. 역대 최대 강진으로 노후 원전 '한별 1호기'(가상원전)가 폭발해 걷잡을 수 없이 방사능이 유출되고, 한반도가 초유의 재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 예고편 영상이다.

원전을 소재로 한 재난 블록버스터 제작·상영도 처음이지만 개봉시점도 절묘하다. 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역대 최대 규모 지진이 실제 발생했고, 이 여파로 정지시킨 월성 1~4호기는 아직 멈춰서 있다. 원전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한껏 고조된 이때 현실과 오버랩 되는 시놉시스의 영화가 내달 극장에 내걸린다. 잠재된 불안과 상상력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실사화하니 현실성을 떠나 폭발 장면이 여간 섬뜩한 게 아니다. 여기에 앞서 개봉한 <부산행>, <터널> 등의 재난 영화가 흥행몰이에 성공한 터라 <판도라>의 뚜껑이 어떻게 열릴 지 적잖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초유의 강진이 발생하면 국내 원전은 영화에서처럼 돔 폭발과 방사능 유출을 피할 수 없는 걸까. 원전 재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불가능한 설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단적으로 원자로를 둘러싼 두께 1.2m 이상의 콘크리트 돔이 터지려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내부에 축적돼야 하는데, 설령 지진으로 3~4중의 냉각계통이 불능상태가 돼 원자로와 핵연료가 모두 녹아내려도 <판도라>에서처럼 격납건물이 파괴되는 일은 없다는 것. 실제 1979년 미국 쓰리마일 섬에서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대형사고가 발생했으나 5겹의 방호벽에 갇혀 폭발이나 방사능 유출은 없었다.

반면 후쿠시마는 사정이 달랐다. 이 원전은 국내 가압경수로형 원전과 다른 비등경수로형(BWR)으로, 낮은 압력을 이용하는 특성 상 격납건물이 허술한데다 새어 나온 수소가 건물 내에 축적돼 2차 폭발을 일으킨 경우다. 국내 원전은 중대사고로 수소가 발생해도 낮은 농도부터 이를 연소시키는 제어계통을 갖춰 격납건물 내 폭발 가능성 자체가 극히 희박하다는 게 원전계통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래서 한 전문가는 <판도라>가 “맥락상 인과성을 무시하고 만든 영화”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국민이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일까 걱정”이라고 했다.

이러나저러나 <판도라>는 영화다. 스크린 속에서 좀비바이러스가 창궐하든 새 터널이 무더지든 원전이 폭발하든 시나리오 작가 마음이다. 대중영화가 원전의 난해한 기술까지 사실적으로 충족시킬 이유도 없다. 정부나 원전당국이 곱씹어 볼 점은 폭발장면의 비현실성이 아니라 어쩌다 우리 원전이 재난영화의 소재가 되었는가이다. 본디 영화는 당대의 시대상과 대중 저변의 불안, 비판의식까지 녹여내기 마련이다. 원전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을 이 영화가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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