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협의 없이 국가기반시설지정ㆍ공공요금상한제 추진

재난 시 대체인력 투입을 골자로 하는 행정자치부의 ‘국가재난관리기능’ 발표에 이어 전기나 도시가스 요금의 가격상한제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재정경제부의 ‘프라이스캡’ 발표가 잇따르자  산업자원부가 혼란에 빠졌다. 이들 사안은 산자부와 일체 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취재결과 밝혀져 정책 이행에 난항이 예상된다.
 

행자부는 지난 30일 “재난관리 기능을 강화하고 효율적인 재난예방과 대책추진 등을 담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개정됨에 따라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이들 시설을 국가기반시설로 지정할 예정”이라며 “이는 노동자의 불법파업으로 시설마비가 우려될 시 대체인력 등을 동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되는 셈”이라고 밝힌 바 있다.

 

행자부의 발표대로라면 앞으로 원자력ㆍ수화력발전소, 송변전시설, 석유비축ㆍ생산시설 등 97개 주요에너지시설은 국민생활과 국가경제에 근간을 이루는 기반시설로 분류, 해당 사업장에서 불법파업이나 우발적 사고가 발생하면 재난관리책임기관장의 판단에 따라 대체인력과 장비가 투입된다.

 

이 같은 발표가 나오자 당장 반발하고 나선 곳은 노동계 측이다. 민주노총은 31일 성명서를 통해 “행자부의 국가기반시설 지정안은 노동기본권을 박탈하는 위헌”이라며 “파업을 국가재난으로 규정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박탈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민노총은 “지금까지는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의 경우에만 이러한 조치가 가능했지만 개정된 법에서는 사회적 재난까지도 재난의 범위로 확대하고 있다”면서 “이는 결국 노조 활동을 무력화하려는 정부의 불순한 의도로 파업 시 ‘대체 인력 즉각 투입 프로그램’ 등을 가동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예고했다.

 

노동계 측의 반발이 예상외로 확대되자 행자부는 뒤늦게 사태진화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행자부 국가기반보호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아직 기반시설을 확정한 바도 없고 최종 결정은 관계부처와 협의해 8월 이후에야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일반기업에 대한 대체인력투입은 노동관계법에 따라서만 가능하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 대체인력 투입은 재난 시에만 가능하며 노사협의에 따라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대해 발전소 등 공공시설을 관장하고 있는 산자부는 사전통보나 협의가 없었지만 사태추이를 지켜보며 최종 결정에 따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기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행자부 법에 공익사업장과 관련한 내용이 몇 가지 포함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상식적으로 파업은 노사관계에 해당하는 문제”라면서 “이 문제로 행자부와 노동부가 갈등을 빚고 있고 노조측과 협의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라 산자부는 최종 결론이 나면 이를 따를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이처럼 부처 간 혼선이 가중되는 가운데 같은 날 재경부는 전기나 도시가스와 같은 공공요금에 가격상한제를 적용하는 ‘프라이스캡’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산자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프라이스캡 제도는 투자가 요금인상으로 연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가격 상한선을 긋는 방식으로 현재 철도 요금에 적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가격상한제를 실시하면 공공요금에 대한 가격인상 억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원가절감 등의 부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며 “올해 전기, 이동전화료, 도시가스 도매요금 등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경부의 이 같은 결정은 산자부와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산자부 해당부서의 한 관계자는 “가격상한제에 대한 얘기를 재경부 측으로부터 들어본 바도 없고, 지금 처음 듣는 얘기”라면서 “아직 구체적인 내용조차 파악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산자부의 한 관계자는 “가격상한제가 도입되더라도 전기요금 현실화 등에는 큰 지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 부와 협의가 끝난 내용은 아니었다”면서 “재경부 측에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1종합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