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시민사회 의식 돋보인 전기요금 체계개편안 공청회
"무조건 싼 요금 바라지 않아", "미래세대 부담 주면 안돼"

▲ 한전 주최로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전기요금 체계 개편방안(안) 공청회에서 주요 패널들이 발언하고 있다.

[이투뉴스] 시대변화에 뒤떨어진 주택용 누진제를 개선하겠다는 당정을 향해 전기소비자인 국민은 “방향은 맞지만 여론에 떠밀리 듯 포퓰리즘으로 가면 안된다”고 했고, 더 나아가 “무조건 싼 가격이 좋은 건 아니다. (가격책정에 대한)정확한 정보공개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소비자는 “징벌적 누진제가 문제이지, 요금 자체를 내리라는 게 아니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정책은 안된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당정 태스크포스팀이 앞서 제시한 3개 개편안에 대한 국민의견을 묻는 28일 공청회에서다. <관련기사 '주택용 누진제 개편 전기료 최대 11.6%↓' >

이날 한전 주최로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전기요금 체계 개편방안(안) 공청회’에는 요금개편에 대한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대변하듯 인터넷 사전 참가신청을 접수한 200여명 외에 40여명이 추가로 현장 등록을 하고, 여기에 수십여명의 취재진이 몰리면서 주최 측이 준비한 240여개 좌석이 일찍이 동 났다. 또 수십건의 사전 서면질의 외에 다수의 현장 질의가 쇄도, 2시간 남짓한 공청회를 달궜다. 질의도 전기료 체계를 넘어서 현행 전력정책 전반의 당위성까지 포괄적으로 따져 묻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이 때문에 이번 공청회가 전력공급 서비스와 합리적 요금책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얼마나 지대한지, 또 그동안 이같은 관심을 열린 공간에서 토론할 기회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방증하는 자리였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진행을 맡은 좌장(손양훈 인천대 교수)은 무던히 논의 주제를 누진제 개편안으로 한정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지만, 전기료의 최대 이해당사자인 소비자나 시민단체가 이날 제시한 의견은 당국이 허투루 흘릴 만한 것이 많지 않아 보였다. 전력당국  한 참석자는 “이런 자리가 진즉에 있었어야 했다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고도 했다.

이번 누진제 개편안과 관련, 우선 소비자단체 측은 소통을 통한 합리적 요금책정과 과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김연화 소비자공익네트워크 원장은 패널 토론을 통해 “전기는 공공재이면서 필수재로, 공공요금은 안정적 공급과 적정가격 책정이 중요한데 여론에 떠밀리듯 포퓰리즘에 빠지면 안된다”면서 “지금까지는 전기료에 대해 국민이 아무것도 모른 채 정부가 가격을 매기면 요금을 냈지만 앞으론 어떻게 요금이 설정됐고, 무엇이 기준인지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동안은)투명하고 합리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전기요금에 있어 국민의견을 반영해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갈 수 있는 전기가격위원회 같은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 국민이 무조건 싸고 원가도 안되는 전기를 쓰자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투명한 요금체계와 합리적 소비다”라고 강조했다. 이은영 그린IT포럼 센터장도 요금체계 개편이 전기료 인하가 아닌 적정가격 책정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기존 누진제는 그 수준이 소비자 분노를 유발할 수준으로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전제했다.

이 센터장은 “전기요금은 무조건 싼 가격이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기준으로 적정요금을 정할 것인지, 소비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합리적 기준에 따라 지속가능한 전력이란 틀에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뒤 “지금까지 산업용과 주택용을 비교하면서 주택용에 대한 비판이 많았는데, 이는 부정확한 정보 탓이다. 정부가 정확한 (원가)정보를 공개하고 IT기술을 활용한 전력사용 정보 제공으로 합리적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진제 구간 축소와 요율 완화가 결과적으로 에너지절약 유인을 약화시킬 수 있으므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다수 제기됐다.

월평균 200~300kWh의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주부 아무개씨(서울 성수동)는 “올 여름 (에어컨 사용으로)아이들과 많이 싸우고 계량기와도 많이 친해졌다. 누진제 개편으로 여름·겨울철 부담을 줄이는 것도 좋지만, 평소 전기를 아껴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인터넷통신사 소속 아무개씨도 “누진제가 완화되면 고객이 에너지를 절감하는 인센티브가 소멸되거나 감소하는 것인데, 보완책은 있느냐. 지금은 가격을 깎았다는 것만 나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과적으로 전기요금 인하(최대 11.6%)로 귀결되는 누진제 개편을 “지속가능한 에너지정책에 부합하지는 않는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한 뒤 이같은 개편안이 미래에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장병천 에너지합리적이용실천연대 대표는 “이번 개편은 일시적 포퓰리즘에 의해, 일시적 폭염에 의해 정치권이 경천동지해 국민 부담을 완화시킨다는데서 출발했지만, 문제는 징벌적 누진제이지 국민은 요금을 내리라고 한 적이 없다"면서 "송전탑 갈등, 원자력 논란, 석탄화력 미세먼지 등 난제가 많은데 전기를 합리적으로 소비하려면 요금체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물가를 안정시킨다며 (요금을 묶어놔) 한전이 수조원의 적자를 내고 블랙아웃 직전까지 가지 않았냐, 그런데 당장 이익이 난다니까 교육용도 일괄 인하하고 과실을 나누자고 한다. 지금은 전기 원가(연료비)가 내려가 일시적으로 그렇지만 발전량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석탄 가격이 올초보다 배 이상으로 뛰었다. 한전이 또다시 적자의 늪에 빠지면 신재생 투자나 파리기후협약 이행이 물거품이 된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정책을 지양해 달라”고 촉구했다.

같은 맥락에서 가정주부 김민정씨는 “한전이 공기업인지 국가기관인지 헛갈린다. 전기료 적정원가를 전문가 집단이 충분히 분석해 산정한 뒤 원가 연동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했고, 엄정일씨(중소기업 대표)는 “전기의 중요성에 대해 국민들은 익히 알고 있다. 전력설비 유지 보수와 신재생 투자에 얼마가 필요한지, 매출액 대비 적정 영업이익 얼마나 될지 역산해 판매단가가 얼마다 얘기돼야 한다. 원론적으로 1~3개편안은 모두 미봉책이다. 전면 개편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런 소비자 의견 제시에 대해 TF 참여 민관위원은 큰 틀에서 공감의 뜻을 내비치면서도 현행 전력시장 제도와 정책 수단의 부재, 누진제 개편 논의에 국한한 당면 문제 해결의 시의성을 강조했다.

박주헌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용도별 요금제를 왜 단일요금제로 바꾸지 못하는지 설명해 달라는 좌장 주문에 “전기는 발전원별로 생산단가가 제각각이고 전원별로 갖는 특성도 다른데다 저장이 안되는 특성상 수요를 추종하다보니 원가가 그때 그때 달라진다”면서 “그런측면에선 실시간요금제나 계시별 요금제로 가야하지만 아직 AMI(지능형원격검침계량기)가 보급돼 있지 않고, 합리적 소비를 위해 누진제가 갖는 순기능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다만 박 원장은 앞서 누진제 개편안의 이론적 기준을 설명한 뒤 “가격수준은 우리의 숙제다. 우리 전기료는 산업용이나 주택용 할 것 없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수준으로, 이번 개편으로 종전보다 더 낮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에너지자원의 96%를 수입하는 나라에서 에너지만큼 희소한 자원이 어디있겠나. 앞으로 기후변화와 저탄소 경제를 대비한다면 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며, 장기적으론 에너지사용에 따른 환경비용 등 외부비용을 좀 더 적극 반영하는 가격체계로 가야한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또 전기료 규제의 불가피성을 설파하면서 “가격은 희소성을 반영하는데, 전기가격도 시장이 자유화 돼 있다면 이렇게 규제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전력시장이 자유화 돼 있지 않고 상당부분 현실적으로 독점인데다 전기란 재화가 공공재적 성격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규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TF 공동위원장)는 “앞으로 5년 정도 지나면 대부분의 주택용 계량기가 전자식으로 교체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요금제도 미래형 계시별로 진화할 수 있는 솔루션이 마련될 것”이라며 “우선은 당장 급한 불을 해결하는데 (개편의)주안점을 뒀다. 사실 TF나 공청회가 전력가격 정책 모두를 다루기는 어렵다. 첫 번째 과업이 당장의 국민 고통 해소였고, 거기에 수반되는 많은 문제들도 많이 논의했다. 빠른 시일내에 가격문제를 지속 검토하고 조정해 나가는 사회능력을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고 짚었다.

정한경 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플로워 발언기회를 통해 “일부 언론이 부자감세가 아니냐고 지적하는데 결코 아니다. (일부 누진구간의 경우)700~800원에 달하는 과도한 요금을 정상화 시키는 것이지 과도한 수요증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결국 억눌린 수요의 정상화로 국민 후생이 증진될 것으로 본다”고 의견을 보탰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앞으로 산업부가 주의 깊게 (수요증가를) 봐야할 것”이라며 “어차피 발전소가 필요하다면 대규모 보다는 신재생이나 분산형으로 갈 수 있는 옵션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조성경 명지대 기초교육대학 교수는 “이번 개편안이 국민 의견을 나름 충실히 담고 있다고 본다. 중요한 건 향후 에너지믹스나 기후변화 대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하게 국민들에게 알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전기료 체계개편을 지속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전 측은 이번 누진제 개편으로 인한 요금 감소 부담이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권기보 한전 영업처장은 "현행 개편안은 (재정부담이) 1조2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이 될텐데, 현재 두자릿수 영업이익은 일시적인 것으로 2008~2013년 누적부채만 16조원 가까이 되고 천문학적 기본적 부채도 있다"면서 "다만 자체적으로 3년간 자구노력으로 줄인 것 포함해 1조5000억원까지는 내부적으로 감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향후 5년간 재무를 분석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태영 삼일회계법인 전무는 "한전이 작년과 올해 짧은기간 초과이윤이 나고 있는 상태지만, 2008년부터 통산해 보면 오히려 2013년까지 적정원가를 회수하지 못해 자금이 부족해지고 비정상적 차입금이 늘었다"면서 "한전 말대로 초과이윤으로 차입금 일부를 상환하고 누진제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선 재무적 리스크를 계속 안고 있다고 본다. 결국 요금산정 매커니즘이 중요하고 오차가 있을 때 정산해 투명하게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누진제 개편으로 사업성 훼손이 우려되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별도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정부 측 발언도 나왔다. 신용민 산업부 전력진흥과장은 "이번 누진제 개편안과 교육용 요금 인하안을 마련하면서 신재생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누진제 개편으로 신재생 활성화가 저하되지 않는 수준을 넘어 더욱 활성화 되는 대책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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