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환경장관에 親화석연료 인사내정 등 反기후변화의지 여전
지난해 ‘기후변화에 열린 마음’ 등 재검토 발언, 이방카 역할 주목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이투뉴스] 온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특히 기후·환경·에너지 분야의 경우 시쳇말로 멘붕이다. 과거 로마제국에 비견되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에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부터다. 지구온난화(인간이 생산·소비 활동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가 점점 따뜻해지는 현상)를 믿지 않는 트럼프 당선으로 파리협정을 비롯한 신기후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아직 당선인 신분인 트럼프는 기후변화 정책방향과 관련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라는 그의 이미지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며 슬쩍 물러나는 듯하면서도, 에너지 및 환경 장관을 親화석연료 인사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공무원들이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지만, 여전히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최근 해외 유력매체들은 트럼프의 장녀이자 막후실세로 평가받고 있는 이방카 트럼프가 환경운동가를 만나고 다닌다는 점을 들어 정책변경을 기대하고 있다. 물론 과거 석유사업을 펼치던 인사들이 환경 및 에너지 부처 장관으로 속속 내정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결국 언론들은 이방카(천사)와 석유공룡(악마)과의 치열한 싸움에 따른 결과가 트럼프의 기후변화 정책을 좌우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오락가락 트럼프, 진짜 속마음은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스 기자 및 칼럼니스트들과 가진 회동에서 자신의 기후변화협약 탈퇴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아주 면밀하게 보고 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그의 발언은 당선되면 기후변화협약 탈퇴공약을 재고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면서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기간 내내 기후변화협약을 폄하하며 대통령이 되면 미국은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트럼프는 “기후변화는 날조된 것(hoax)”이라거나 “기후변화는 미국의 사업을 방해하려는 중국의 사기극”이라는 거친 언사를 내뱉었다. 공화당 자체가 기후변화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긴 했지만, 트럼프는 항상 이보다 몇 발짝 더 나가 기후변화에 비난을 퍼부었다.

그랬던 트럼프가 뉴욕타임즈를 방문해서는 물러서는 듯한 발언을 한 배경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는 현장에서 “나는 인간의 활동과 기후변화 간에 어느 정도의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는 것과 맞물려 당선된 이후에 생각이 바뀐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진 셈이다. 일부에서는 애초부터 트럼프가 기후변화에 대한 깊이 있는 식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화석연료 개발’이라는 프레임 속에 표를 얻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석유배경 가진 강성인사 속속 행정부 진입
트럼프가 차기 정부에서 그를 도울 장관 등 보좌진을 연일 발표하자 미국은 물론 전세계 기후업계에서는 우려가 쏟아졌다. 심지어 트럼프 내각 인선이 기후변화에 있어서는 악몽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트럼프가 여전히 기후변화를 비롯해 재생에너지 분야에 타격을 줄 의지가 분명하다는 메시지가 읽히기 때문이다.

스타트는 권력승계서열 3위인 국무장관에 세계 최대 석유기업 엑손모빌의 CEO인 렉스 틸러슨을 지명하면서 부터다. 미국 언론은 가장 중요한 외교를 책임질 인사에 석유기업 CEO를 임명했다는 것과 함께 그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구라는 점까지 들어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나 틸러슨 모두 화석에너지에 관심이 많을 뿐더러 본인에게 이익이 된다.

아울러 트럼프는 오랫동안 기후변화 반대론의 선봉에 섰던 인물이자 석유산업 로비스트인 마이런 에벨을 환경보호청(EPA) 인수위원회 위원장으로 세웠다. 이전 에벨은 기후변화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소설이라는 주장과 함게 연방정부의 전기자동차 지원 중단을 주장하기도 한 강성인물이다. 

▲ 스콧 환경보호청장 내정자.

EPA(환경보호청, 우리나라 환경부와 같은 역할) 청장으로는 스콧 프루이트 오클라호마 주 법무장관을 지명했다. 프루이트 내정자는 공화당 출신 변호사로 EPA가 추진했던 오바마의 청정전력계획(CPP)을 막기 위해 집단소송을 제기한 인물이다. 가디언은 그를 ‘석유 산업의 꼭두각시’라고 평가했다. 프루이트는 지난 2014년부터 오바마 환경규제 반대 운동에 앞장서 화력발전소 온실가스 감축 의무화, 수질오염 방지 대책 등에 대한 집단소송을 주도했다.

그의 성향을 미뤄봤을 때, 프루이트가 공식 임무를 시작하면 민주당 상원의원들과 싸워서라도 탄소배출량을 줄이려는 EPA 규제를 전부 없앨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오바마 정책 뒤집기 작업은 에너지부 인수위원회 수장인 토마스 파일과 발걸음을 맞춰갈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차기정부에서 화석연료 산업 전반을 담당하게 된다.

파일은 대형 에너지 기업인 코흐 인더스트리스를 비롯한 다수의 화석연료 기업 로비스트 출신이다. 지난주에는 그가 작성한 ‘트럼프 에너지 정책’ 관련 쪽지가 유출되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쪽지에는 ▶파리 기후협정 탈퇴 ▶연방토지 내 석유 천연가스 개발 확대·석탄 임대 유예 폐지 ▶다코타 송유관 사업 재개 ▶탄소세 폐지 ▶온실가스가 사람들의 건강과 경제성장에 미치는 위험성에 대한 재검토 등이 담겨 있다.

파일은 EPA가 말하는 온실가스의 위험성은 재고돼야 하며 아예 폐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온실가스에 관한 이론이 규제를 늘렸다는 주장이다. 쪽지 속에는 오바마 정부에서 통과된 연료 효율성 표준이 완전히 폐지되고 현재의 연료 경제 수준으로 되돌아 갈 것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즉, 트럼프 정부의 에너지 계획은 그간 미국에서 진행돼 온 모든 탄소배출량 감축 노력을 되돌리겠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셈이다.

▲ 페리 에너지부장관 내정자.

트럼프의 反기후변화 인사의 정점은 친화석연료 주의자의 릭 페리 텍사스 전 주지사를 에너지부 장관으로 내정하면서 찍었다. 과거 규제에 치우치고 있다며 에너지부를 폐지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안정공급은 물론 국가 안보와 기초 과학까지 업무가 폭넓은 에너지부에서 화석연료 생산에만 관심이 높은 페리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는 이유다. 

◆이방카, 공무원, 디카프리오에 기대
이달 초 에너지부 인수위는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던 다원의 목록을 작성해 넘기라고 요구해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이에 대해 "이같은 움직임이 환경규제를 모두 없애는 작업의 토대일 수 있다"며 "기후변화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에 대한 ‘마녀사냥’의 징후라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지나 매카시 미국 환경보호국(EPA) 국장은 “차기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의 기후변화 대책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제동을 걸고 나섰다. 맥카시 국장은 워싱턴의 EPA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법률과 과학적 증거 등이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미국의 노력을 전복하려는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를 제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기 위한 규제를 만들 때 했던 것처럼, 트럼프 행정부 역시 규제 폐지가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며 “우리가 한 일은 과학적으로 탄탄한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반박하는 것은 큰 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선기간 활발한 유세와 정책 수립으로 아버지 약점을 상쇄한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인 트럼프의 딸 이방카는 기후변화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줄 것이란 기대를 모은다. 그녀가 기후변화를 중대한 이슈로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엘 고어 전 부통령과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만났다는 점도 그녀의 성향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방카의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마음이 진심이더라도, 트럼프 내각에 인선된 친석유 관료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칠 것이라는 점은 걱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탄소배출량 감축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기술혁명이 창출할 경제적 기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여러 언론은 조언하고 있다. 앞서 디카프리오는 지난달 8일 트럼프와의 회동에서도 재생에너지가 수백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알랙스 왕 UCLA 로스쿨 교수 역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산업은 중국이 노리고 있는 기회”라며 이에 대한 관심과 견제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왕 교수는 “기후변화 규제는 저탄소, 첨단기술, 재생에너지 산업 중심으로 변화하는 중국의 경제적 도구”라며 “미국이 트럼프로 인해 재생에너지 혁명에서 후퇴한다면 그 과실을 얻는 것은 중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파리협정 등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전 지구적 노력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는 평가다(사진은 파리협정 체결을 환호하는 유엔 기후총회 모습)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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