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한무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이투뉴스 칼럼 / 한무영]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맑고 맑은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달밤에 노루가 숨바꼭질하다가
목마르면 달려와 얼른 먹고 가지요.

어렸을 때 부르던 윤석영 선생님이 작사하신 옹달샘이란 동요가 있다. 이 노래 가사에서 물관리의 본질을 생각하는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깊은 산에 사는 동물이나 식물들도 생명을 유지하는데 물이 가장 중요하다. 군데군데 오목한 웅덩이에 빗물이 모이고, 또 빗물이 땅에 스며들어 저절로 옹달샘에 공급이 되는 완벽한 물순환 시스템에 의해서 숲속의 생명이 지속되어 온 셈이다.

지금까지 개발지상주의의 시대에는 산에서 나무를 베어내어 건물이나 밭을 만들고, 빗물을 빨리 흘러버리게 만들었다. 산중턱에 설치된 도로는 양 옆의 경사면에 떨어지는 빗물을 내버리는 고속도로가 된다. 산의 하류에 댐을 만들고, 물이 필요하다면 수도관을 매설해서 펌프로 공급하였다. 유역을 넘어서까지 가져가기도 간다. 이렇게 하면 사람은 살지만, 토끼나 노루 같은 동식물은 살수가 없다. 주위에는 물이 없고, 댐까지 물을 먹으러 갔다 오기에는 너무 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은 오로지 인간만을 고려한 이기적인 방법이며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다. 깊은 산에 숲을 만들고 옹달샘을 만들어 빗물을 보전하면 물순환을 건전하게 할 수 있다. 깊은 산 속의 숲에 여기저기 웅덩이를 만들면 하류로 한꺼번에 내려가는 물의 양이 줄어들어 홍수를 방지할 수 있다. 모여진 빗물은 땅속에 침투되기도 하고, 고여 있기도 하여, 거기서 작은 곤충, 새, 개구리, 뱀, 토끼, 노루 등의 작은 생태계가 만들어 진다. 물이 증발하면서 그 곳의 온도가 시원해지고,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을 시원하게 만든다. 산 속에 옹달샘을 만들면 물순환이 건전해지고, 기후변화에 대한 홍수, 가뭄 등을 줄일 수 있으며, 도시를 시원하게 만들 수도 있다.

‘After us, deluge?’란 영어 숙어가 있다. ‘내가 죽고 난 다음 홍수가 나든 말든 알게 뭐람?’이란 뜻으로, 프랑스 혁명 당시 왕인 루이 15세의 정부가 자포자기하면서 한 말이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물관리 방법은 ‘After us, desert or deluge?’라는 숙어로 쓸 수 있다. 즉, ‘내가 죽고 난 다음에 홍수가 나든지, 가뭄이 나든지, 내가 알게 뭐람?’이라는 무책임한 방법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야 한다.

산지의 빗물 모으기 방법은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지역의 인력을 이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사방댐을 만들고 침투구덩이, 등고선구, 저수지 등을 주위 지형과 어울리게 아름답게 만들면 된다. 설치한 바로 그 다음해부터 홍수, 가뭄, 토양침식의 방지 효과가 나타난 사례가 많다. 지역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의 특성에 맞는 아름다운 시설들을 성공적으로 만든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깊은 숲속에 옹달샘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특히 땅이 물을 가지고 있으면 증발에 의한 기화열로 대지의 열섬현상을 줄일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열악한 기후 및 지형조건을 극복하고 삼천리 금수강산을 만들어 우리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그 결과 어디나 조금만 파더라도 땅에서 물이나왔다. 촉촉하게 적셔진 땅은 증발할 때 발생하는 기화열로 마을과 도시가 시원했다. 그런데 지금은 지하수위가 많이 떨어지고, 지표면은 말라버리고, 그 때문에 태양의 복사열로 더 많이 더워지고 있다. 숲과 옹달샘을 없애고, 빗물을 모으지 않고 버리도록 개발을 했기 때문에 우리의 선조들이 땅속에 모아두었던 물통장의 잔고가 바닥이 난 셈이다.

현재의 물관리 방법은 건전한 물순환과는 거리가 멀다. 가령 소하천 정비라는 것은 수로를 반듯하게 하고 바닥을 골라서 장애물을 없애서 빗물을 하류로 빨리 보내버리기 위한 것이며, 논을 밭으로 전환하는 것은 물을 모으는 저류지를 없애는 것이고, 논이나 밭에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것은 땅으로 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홍수를 일으키고, 또 지하수 보충을 못하는 것이다. 도시계획이나 설계에서는 빗물을 하수도를 통해 버리거나 빗물펌프장 등으로 빗물을 빨리 버리게 한 다음, 물이 필요하면 멀리 있는 다른 곳에서 상수도를 공급받는 식의 물관리를 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 모두 다 에너지를 많이 쓰고, 유지관리비가 많이 들고, 그 결과 만약의 위험이나 사고가 발생할 때 인간이나 자연 모두 엄청난 고통과 손해를 가져오게 된다. 

그 이유는 물에 대한 철학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두 현재의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관리한 것이다. 그 결과는 같은 강도의 강우가 오더라도 홍수가 발생하고,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고, 가뭄이 상습적으로 나타나고, 기록적인 고온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우리 도시는 안전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요구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건전한 물순환을 만드는 것은 서양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쉽다. 우리 선조들이 했던 철학을 따르면 되기 때문이다. 그 철학이란 다름아닌 지금 당장의 나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 생태계, 그리고 후손까지도 생각하는 모두가 행복하게 하는 홍익인간의 정신이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 옹달샘을 많이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대규모 집중형 시설이 아니라, 소규모의 분산형의 시설들을 많이 만들어 다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일부도시나 독일에서는 이미 단지를 개발할 때 건전한 물순환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하는 추세이며, 그에 따라 좋은 기술들이 개발되고, 모범적인 물순환 사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하천이나 지하수와 같이 눈에 보이는 물뿐만 아니라, 토양수나 생체수와 같은 보이지 않는 물까지 고려한 전체 물자산을 고려하여 관리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도 현재 빗물을 기반으로 전체 물자산을 관리하는 ‘물기본법(안)’이 국회에 발의 되어 있으며 하루빨리 이것이 법제화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빗물관리의 철학과 기술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자연여건에서 금수강산을 만든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 고유의 첨단 기술을 개발해서 덧붙이면 우리나라에 건전한 물순환을 회복시킬 뿐 아니라 기후변화로 고통받고 있는 다른 나라에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물산업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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