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구조 및 전원 간 격차로 새 제도 도입 난망
현물시장 이원화와 에너지시장 전환 필요성 증대

[이투뉴스] 전력산업의 온실가스 감축과 낡은 시장제도 개선이 최대 현안과제로 부상하고 있지만, 정치·행정적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정부가 사실상 이 문제에서 손을 놓고 있어 정책대응의 실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력수급 여건이 그나마 안정적인 이번 골든타임을 살려 제도를 선진화하지 않으면 장기간 극심한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며 선제적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19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신기후체제 도래에 따른 발전부문 온실가스 감축이나 도매 전력시장 제도 개선, LNG 등 일부 첨두발전기 가동률 저하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나 정부는 이렇다 할 대응이나 검토없이 묵묵부답이다.

전력업계 A 임원은 “환경급전 등 시장체제에 대한 전면 재편요구는 어느 때보다 강하지만 진전된 내용도 없고, 달라진 내용도 없다”면서 “정부가 지금껏 한 일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라며 일갈했다.

수도권 대학의 B 교수는 “예전 공무원들은 책임감도 대단했고 전문가라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요즘 공무원들은 듣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전력부문도 마찬가지”라면서 “문제는 입신에나 관심있는 그런 처신들이 훗날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 반복해 개선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대표적 시장제도는 도매시장의 정산조정계수다. 정산조정계수는 6개 발전자회사(한수원·남동·중부·서부·동서·남부)가 생산한 전력을 모기업인 한전이 사별로 얼마나 가격을 쳐주고 사들일 지 미리 정해 놓는 값이다. 애초 원전이나 유연탄 등 저원가 발전기의 초과이익 환수가 목적이다.

하지만 최근 LNG 중심의 민자발전사 경영난이 본격화 되면서 현행 제도가 시장의 효율성 제고나 공정경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랐고, 정부도 한때 이 문제를 관심있게 들여다 봤으나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면서 결국 유야무야 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정산조정계수 대체는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시장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현실적 제약이 전근대적 제도 개선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국내 전력시장은 발전과 판매 겸업이 불가능한 구조다. 현재는 발전은 발전자회사와 민자발전사만이, 판매는 한전만이 가능해 특정사의 초과이윤을 규제할 방법이 없다. 

발판 겸업이 가능하다면 초과이윤을 소비자 요금편익으로 돌려 경쟁을 하니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제약은 계약시장 부재와 다른 나라에 비해 큰 전원 간 원가 격차다. 

앞서 지난해 정부는 민자 석탄화력발전소 상업운전이 다가오자 2년여의 검토를 거쳐 정부승인 차액계약제(VC)를 시행하려다 돌연 취소했다. 정산조정계수를 대체할 제도가 없으니 기존제도 유지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가장 큰 장애요인은 전원간 원가 격차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석탄이나 원전 등의 기저부하와 LNG 같은 첨두부하 전원의 원가 격차가 너무 커 기저발전의 초과이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행 현물시장은 일단 전력수급계획에 반영돼 도매시장에 진입한 기저발전은 경제급전 원리에 의해 사실상 동일 발전원 간 가격경쟁을 하지 않고도 높은 가동률을 보장받는다.

한 시장전문가는 “결론적으로 전원 간 경쟁이 불가능하며, 그걸 가능하다고 전제해 만든 제도는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정산조정계수가 이 시장을 지탱하는 유일한 수단인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기존 전력시장을 그대로 가져갈 경우 시장왜곡이 심화될 수 있으므로 시급한 새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우선 전문가들은 발전부문의 온실가스 대응을 위해 용량제도 중심의 기존 체제에 석탄화력 제약과 배출권 거래 비용을 반영한 에너지시장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발전원가에 외부비용이 반영되고,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대한 시장반응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단일 현물시장도 계약시장으로 이원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현물시장을 현물시장과 계약시장으로 분리, 기존 정산조정계수는 장기계약 플랫폼으로 흡수해 논란의 여지를 없애고, 기존 현물시장은 좀더 경쟁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설계에 관여한 바 있는 한 관계자는 "정산조정계수는 외부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제도라 VC든, 다른 제도든 어떤 형태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수급계획의 신규물량은 무조건 경매로 붙이고, 기존 석탄화력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제약량을 할당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중단 이후 십수년간 끊임없이 노정된 제도 현안을 여지껏 방치한 책임은 정부나 발전사업자 양쪽 모두에게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경우 시장 선진화와 같은 근본적 문제가 아닌 단기성과 창출에 치중했고, 업계는 당장의 유불리에 따라 일희일비할 뿐 장기적 안목의 제도개선 건의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시장규제를 움켜 쥔 채 변하지 않으려 한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왜곡된 제도라도 득이 되면 침묵하고 손해가 나면 목소리를 높이는 업계의 책임도 크다"면서 "계속해서 변칙을 구사할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정면 공략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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