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4호기 냉각재 누설 초동대처 및 정보공개 뭇매
국회·환경단체 "철저한 진상조사 및 안전점검" 촉구

▲ 냉각재 유출 사고가 발생한 고리원전 전경

[이투뉴스] 가동중인 원전이 불시 원자로 냉각재 누설사고로 수동 정지된 가운데 반복되는 원전 당국의 안일한 대응과 늑장 정보공개가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당국의 느슨한 안전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철저한 진상조사와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30일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안전기술원 등에 따르면, 고리원전 4호기의 격납건물 냉각재 누설 징후가 최초로 확인된 시각은 당국이 원전 수동정지를 결정해 실제 원전이 완전히 멈춰서기 이틀 전인 지난 26일 오전 11시 25분경이다.

당시 한수원은 집수조 수위가 비정상적으로 불어나는 것을 인지한 뒤 각종 운전변수와 격납건물내 카메라(CCTV) 등 간접적인 방법을 총동원해 누설부위 확인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집수조 수위 상승은 냉각재 누출이나 응축수 등이 원인일 수 있는데, 격납건물내 방사능 수치와 온도 등의 변화가 없어 즉각 냉각재 누설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게 한수원 측의 해명이다. 물론 이때까지 고리 4호기는 전출력(950MW)으로 계속 원자로를 돌렸다.

원전 운영메뉴얼에 의하면 누설부위가 분명히 확인된 냉각재 누설은 분당 37.8리터, 부위가 확인되지 않은 미확인 누설은 분당 3.78리터 이상일 경우 6시간 안에 발전소를 세워야 한다. 특히 압력이 ㎠당 157kg 이상인 압력경계(용접부) 부위 누설은 누설량을 따지지 않는 정지 사유다.

하지만 한수원은 원자로 돔 안에서 어떤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직접 육안으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27일 오후 2시 32분께 격납건물 내부로 직원들을 전격 투입했다. 집수조 수위 이상이 발견된 지 만 하루가 더 지난 시점이다.

이때 직원들은 증기발생기 아래서 초당 한방울씩 물(냉각수)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회수해 진입 50여분이 지난 오후 3시 20분 격납건물을 빠져 나왔다. 이같은 작업은 같은날 오후 6시 7분부터 7시 15분까지 약 한 시간 가량 한 차례 더 수행됐다.

직원들이 회수한 물은 분석해 냉각재임 확인한 시점도 이 즈음이다. 하지만 한수원은 누설량이 매뉴얼 제한치인 분당 3.78리터에 못 미친다고 판단, 원전 정지를 유보했고 같은날 오후 11시 15분 이뤄진 세 번째 격납건물 진입 점검에서야 증기발생기 아래 배수밸브 용접부위 누설을 직접 확인했다.

이때 시간이 27일 오후 11시 24분. 압력에 취약한 용접부 누설은 원전 매뉴얼상 누설량에 관계없이 6기간 이내에 발전소를 정지시켜야 하는 사유다. 결국 한수원은 원인 파악 약 1시간 뒤인 28일 0시 20분께 원전 출력을 낮추기 시작해 같은날 오전 5시 11분 4호기 원자로를 완전히 세웠다.

일각의 늑장대응 지적에 대해 “관련규정과 절차에 따라 대응조치가 정상 수행됐다”고 반박하는 근거다. 이때까지 격납건물 내부로 흘러나온 냉각재는 석유드럼 한통 반에 달하는 306리터. 냉각재에는 핵연료 분열 과정에 발생한 방사능이 다량 포함돼 있다.

제때 적절하 조치가 취해졌다는 해명과 달리 역설적으로 원전 당국은 ‘6시간내 원전 정지사유’에 해당하는 사고가 발생한 지 약 41시간이 흐른 뒤에야 원전을 멈춰 세운 셈이다.

게다가 이번 냉각재 유출사고는 최초 이상 발견 후 이틀이 지나 원전 수동정지 조치가 끝난 뒤에야 일부 언론보도를 통해 외부에 알려졌으며, 그때까지도 발전사인 한수원 홈페이지나 원자력안전기술원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 어디에도 해당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

앞서 고리 4호기는 격납건물 내부철판(CLP) 부식으로 안전성 논란이 일자 오는 7월로 예정된 정기 계획예방정비 때 가동을 멈춘 뒤 이 문제를 점검할 예정이었다.

잇따른 원전 사건·사고와 늑장 정보공개에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다.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 모임(우원식 의원 외 27명. 이하 ‘탈핵의원모임’)은 28일 ‘한수원은 판도라가 되려는가’란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철저한 진상조사와 결과 발표를 촉구했다.

탈핵의원모임은 성명에서 “고리 4호기가 냉각재 누설로 가동 중지 됐는데 한수원은 늘 그랬듯 방사선 누출 등의 문제는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영화 판도라의 원전 폭발사고와 원인이 같은 냉각재 누설 자체가 큰 사고지 왜 문제가 아닌가”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큰 사고 전에는 경미한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대형원전사고 목전에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며 “이미 벌어진 사고에 대해 한 치 의문도 남기지 않는 철저한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같은날 녹색당도 “냉각재 누설은 핵발전소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에 심각한 구멍이 생긴 것을 의미하는데, 한수원은 오늘도 안전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사고정보를 빠르게 국민에게 알려야 함에도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맹비난했다.

녹색당은 앞서 지난 27일 발생한 월성 4호기 핵연료 이동중 추락사건 역시 발생 8시간이 지난 뒤에야 외부 공개됐음을 거론하며 “핵발전소들은 이미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불안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언이 아닌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을 주문했다.

환경·시민단체들도 원전 당국의 대응과 늑장 정보공개 행태를 문제 삼았다.

에너지정의행동은 성명서에서 “이번 냉각재 누출사고에 대한 대응은 허술하기 이를데 없다. 26일 수위 증가에도, 이튿날 냉각재 누설부위 확인 뒤에도 발전소를 멈추지 않은데다 공개의무 대상인 원자로 정지 이후에도 관련 홈페이지에 정보공개를 즉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미국 스리마일섬 핵사고 38주기가 되는 날 고리 4호기에서 벌어진 이번 사건은 아직도 원전 안전에 대한 인식이 안일하고 사고 발생 시 대응이 치밀하게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치밀하고 엄중한 조사와 투명한 내용공개가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은 반복되는 원전 안전 사고가 총체적인 노후화 징조라며 전면적인 안전성 점검 필요성을 제기했다. 

환경운동연합은 "80년대에 가동을 시작한 30년 넘은 경수로 원전들과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은 중수로 원전에서 안전성 문제가 전반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철판 부식과 밸브 파손, 용접부위 균열 등이 그 증거"라며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땜빵식으로 재가동을 승인해 주다가는 사고를 제대로 예방하지 못할 수 있다. 노후 원전의 안전성을 전면 점검하고 대책을 세우는 근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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