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걸맞는 사업 포토폴리오 재구축 절실

‘골든 에이지’ 불구 왜곡된 에너지요금체계 등으로 침체국면 지속

확장성 및 기존사업구조 장점 활용한 플랫폼 구축과 시장개척 요구

[특별기고] 정희용 박사(한국도시가스협회 전략기획본부장)

[이투뉴스] 전 세계 모든 국가에게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인정하도록 해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 불리는 COP 21에서는 천연가스 지위와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천연가스는 지속가능성과 경제, 사회 및 환경적 관점을 모두 고려한 에너지의 미래 실현을 가능케 한다. 또한 청정한 지구 대기와 탄소 집약도를 낮출 수 있는 가장 빠르며, 최상의 경제적 방안(the fastest and most economic path)이 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급격한 개발에도 불구하고, 에너지믹스 관점에서 가스는 역할 증대로 숙명적인 에너지(destination fuel)가 될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이런 주장을 입증한다. 2040년에는 가스가 석탄을 추월, 24% 이상의 구성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신재생에너지는 비중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력시스템과 연계, 통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디자인이 여의치 않는 리스크가 상존한다. 또한 산업부문 등의 공급한계, 지속성 불안, 수익 불확실성 등 성장을 방해하는 많은 장벽이 존재함을 경고한다.

반면에 천연가스는 IEA 의 Outlook에서 제시되는 모든 시나리오에서 소비량 증가가 예상되며, 2014년 대비 2040년 소비량은 약 50%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같은 전망에도 불구하고 국내 가스산업은 왜곡된 에너지요금체계 등으로 인해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국내 천연가스산업의 현황을 살펴보고, 천연가스의 역할과 발전전략에 관한 의견을 제시해본다.

◆국내 가스산업 현주소와 성장 원동력

1987년 국내에 LNG가 첫 공급된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국내 천연가스산업은 세계적으로 성공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 가스전이 없음에도 사업력이 200년 이상 되는 유럽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공급인프라와 시장을 구축했다.

도시가스사업은 시장, 연료, 기술 등 다양한 리스크로 인해 대기업이 사업 참여를 외면했으며, 삼천리, 대성, 봉명, 경동 등 석탄사업자를 중심으로 추진됐다. 당시 2000만톤 이상 공급하던 석탄산업은 최고의 전성기 시절인 만큼, 리스크가 큰 장치사업으로의 전환은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선대 경영인들은 남다른 혜안으로 교란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의 잠재력을 석탄산업의 학습효과에 연계하는 통찰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 30년의 일천한 사업력에도 불구하고, 2000만 사용가구를 바라보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했다. 교란성 기술이란 현재 시장에서는 지속성 기술(sustaining technology) 보다 낮은 기술력과 고객의 관심부족으로 새로운 시장의 등장 또는 용도를 찾게 해 주는데 불과한 기술을 의미한다. 하지만 시장형성과 고객수용 시점에서는 차세대 시장을 급속도로 장악하는 기술로 요약된다.

2000년대 초반, H그룹에서 필자에게 도시가스사업 컨설팅 자문을 요청한 것은 만시지탄의 예가 아닐까. 그러나 현재는 시장성숙에 따른 공급정체와 시장잠식, 갈수록 악화되는 수익률 등 리스크가 확산되고 있다.

수익구조 악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나친 요금규제로 적정원가를 보상받지 못하는 사업구조에 기인한다. [그림 4]에서 보듯, 매년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물가안정 최우선 정책기조에 얽매인 서울시 소매공급비용은 십수년 간 답보상태다. 규제기관과 공급자가 공개적으로 원가를 협상하는 미국의 PSC와 같은 제도는 요원한 실정이다.

 

우리는 이제, 과거 선대 경영인들이 그러했듯 새로운 교란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을 찾고,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한다. 아울러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맞는 전략과 사업 포토폴리오를 재구축해야 한다.

◆서비스경제에 대한 경영자원 및 사업구조 전환

세계 경제는 서비스경제(Service Economy)로 급속도로 이동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핵심과제로 부상하는 서비스산업은 부가가치 비중이 확대되면서 모든 산업의 서비스화(Shift to Service Economy)를 촉진시킨다. 서비스는 중식당 만두와 같은 공짜 개념이 아니다. 서비스를 고객에게 핵심가치를 전달하는 무엇으로 인식해야 하며, 적정한 평가와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도시가스사업은 장치산업이나 서비스가 사업의 핵심가치이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공급 및 서비스관련 업무는 핵심가치로 구성된 서비스 생태계(Service Ecosystem)를 이룬다. 이러한 생태계를 건강하게 운영, 유지해야만 위대한 기업으로 남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 우포늪의 가치를 기업에 접목해 본다면 서비스 생태계의 중요성이 한층 더 실감날 것이다.

◆사업구조, 파이핑 전략에서 플랫폼 전략으로

전 세계 IT 트렌드를 이끄는 한 단어인 플랫폼(platform)! 사전적 의미를 보면, ‘역에서 승객이 열차를 타고 내리도록 만든 평평한 공간’이다. 플랫폼에서는 접근이나 개방, 공유의 개념이 비즈니스를 더 윤택하게 한다. 하버드대학교의 마르코 이안시티(Marco Iansiti)교수는 플랫폼을 “생태계 구성원들이 여러 접점과 인터페이스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문제 해결책의 집합”이라고 했다.

한편, 도시가스사업은 대표적인 파이핑(piping)전략 사업이다. 배관망 구축+공급 일변도의 경영전략을 개선하고, 산업 내 플랫폼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그림 5]는 홍보관을 박물관이라 명명한 오사카 상인들의 발상이 이채로운 오사카가스의 Hug Museum이다. 홍보는 물론, 요리교실, 가스제품 전시, 드라마 촬영, 방송지원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국내외 가스관계자는 물론, 방송사, 기기제조사, 지역 주민, 학생, 해외기관 등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평범한 지방 시장이었던 송정역 시장은 주중에도 3000명 이상이 찾는 광주의 명물이 됐다. 현대카드가 기획한 이 사례는 서비스경제시대의 플랫폼전략과 기업의 CSV(Creating Shared Value, 공유가치창조) 활동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덕평휴게소에 가면 사람과 자연, 감성이 어울려 또 가고 싶어진다. 모두 플랫폼의 결과이다.

◆미래를 위한 전략적 재고

혁신의 대명사인 애플이나 구글 등은 그들 자신이 하나의 플랫폼 역할을 하면서 혁신적인 비즈니스모델과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천년 제국을 이룩한 로마인은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게르만인보다 못하며,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졌다(시오노 나나미, 1995). 그러나 타민족이 로마를 위해 희생하였다면, 그들은 출신에 관계없이 로마시민이 될 수 있었다. 로마는 이들을 포용하는 플랫폼 역할을 했기에 천년 제국이 가능했다.

미국환경청(EPA)이 측정한 일일 대기환경 데이터와 S&P 500 지수가 관련성이 있다면 믿겠는가. 캐나다 오타와대 앤서니 헤이즈교수팀은 대기오염도 상승과 주식 수익율의 연관성을 발견했다(Harvard Business Review, 2017.3). 미세먼지가 천지를 덮는데, 천연가스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전기차 시장에 앞서 1997년 프리우스를 생산한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차는 교란성 기술의 성공 사례로, 누적 판매대수 1000만대를 달성했다. 신재생에너지로 가기 전에, 가스의 확장성과 기존 사업구조의 장점을 활용하여 서비스경제시대에 걸맞는 플랫폼의 구축과 교란성기술(시장)의 개척이 절실히 요구된다.

4차 산업혁명은 이미 다양한 기회와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유형적 실물 자산에 몰입되어 있는 사업구조의 변신이 시급하다. 택시회사인 우버는 택시가 없고, 숙박업체인 에어비앤비도 부동산이 없다. 점차 가속화되는 4차 산업혁명의 열차에 빠르게 편승하기 위해서는 유연성과 기민성을 갖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의 발굴이 필요하다.

과거 성장기에 필자는 신비즈니모델 발굴을 위해 사내벤처를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략 옵션 관점에서 BCG의 조지 스톡 주니어가 제안하는 임시조직(Temporary Organization)전략과 일회용 공장(Disposable Factories)전략에 동의한다.

불확실성과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계약직 전문가와 컨설턴트를 규합해 구성한 경영팀이 이끄는 임시조직은 성공의 가능성과 실패의 부작용을 최소할 수 있다. 2000년 초반, 저성장 시기의 유나이티드 등 5개 항공사들이 합작한 Orbitz(여행에이전시)는 이용 가능한 모든 항공편을 공평한 순서대로 서비스를 제공해 시장을 확대했다. 검색 알고리즘 등 개발에 2억5000만 달러를 투자, 이를 12억5000만 달러에 매각해 5개 파트너기업에 10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했다고 한다.

시장 성숙으로 돌파구가 쉽지 않는 가스업계에 좋은 교훈을 주는 사례이다. 도시가스업에는 생소하나 제조가 수반되는 신규 프로젝트의 경우 성과 달성이나 유사 시 공장을 버린다는 개념의 탄력적 운영이 장점이다.

산업 전반에 확대되는 경계의 종말 시대에는 양자택이(Both/And)의 전략이 요구된다. 우리의 혁신 노력 여하에 따라 가스산업은 국제가스연맹(IGU)이 제시하는 ‘Realizing the Golden Age of Gas’ 슬로건 아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과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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