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저금리시대에 안정적인 투자처로 주목받아
고정가격계약제로 연기금·보험사 등 기관투자 활기

▲ 지난 3월 산은캐피탈, 현대라이프생명보험, 삼성화재해상보험, sk증권 등이 참여해 850억원 규모의 자금조달을 마친 정암풍력발전단지의 조감도

[이투뉴스] 신재생에너지시장을 바라보는 금융권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그동안 과도한 리스크 인식과 많은 사업실적 요구, 한정된 상품 개발 등 소극적인 전략으로 일관했던 시중은행 및 증권·투자사들도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이윤창출 수단으로서 신재생시장을 새로운 투자처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태세 변화의 중심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골자로 한 신 기후체제의 등장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말 파리협정이 본격 발효되면서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온실가스 배출이 큰 석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천연가스 및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저탄소에너지 전환을 꾀하고 있다.

지난 연말 기준으로 신재생 보급목표를 가진 나라는 173개국이며, 이중 146개국이 RPS(신재생 공급의무화제도)·FIT(발전차액지원제도)·RFS(신재생 연료혼합의무제) 등 신재생 지원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생에너지정책네트워크(REN21)에 따르면 올해 선진국의 대형 프로젝트와 개도국 신규수요로 세계 신재생 시장이 7.6%가량 성장할 것이며, 신규 투자는 미화로 약 325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이렇게 기후변화 대응수단이라는 큰 물줄기가 서서히 잡혀가는 중 기술혁신과 새로운 금융기법의 등장은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태양광은 모듈가격이 2010년 W당 2달러에서 올해 0.4~0.6달러 수준으로 하락했다. 풍력은 터빈이 기존 3~5MW에서 7~8MW로 대형화되면서 초당 10m이상 풍속이 필요했던 것이 최근에는 6m내외 저풍속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태양광은 생산방식 혁신, 풍력은 성능제고로 발전단가를 대폭 절감했다.

자금조달 측면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된다. 얼마 전까지 새로운 금융기법에 해당했던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은 이제 관련 시장에서 더 이상 생소한 방식이 아니다. 그린본드(Green Bond), 일드코(YieldCo), 온빌 파이낸싱(On-Bill Financing) 등 신종 금융상품들이 속속 등장해 친환경·저탄소 프로젝트 추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렇게 뚜렷한 시장 확대가 기대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지난해 12월 신재생에너지 비즈니스 포럼을 통해 내년까지 한전 발전6사를 통해 3조7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익 불안정성의 요인으로 지목됐던 전력시장가격(SMP)과 신재생 공급인증서(REC)가격의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SMP와 REC합산가로 계약을 체결하는 ‘장기 고정가격 계약제’를 도입했고, 공기업과 대기업에만 우호적인 투자여건도 개선키로 약속한 바 있다.       

◆ 전통 금융의 한계
금융권이 기존 신재생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마디로 ‘소극적’이라 할 수 있다. 금융기관이 신뢰할 수 있는 대기업이 참여한 규모 있는 사업이나 사업자 또는 모회사의 보증 및 담보대출로 위험이 대부분 해소된 사업만을 선호한 경향이 있었다.

새롭게 성장하는 산업에 대해 위험을 감수하는 리스크 테이킹이나 헤지가 부족하고, 시장 내 다른 참여자와 리스크를 공유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리스크가 높을 때는 투자 규모가 소형일 경우 벤처캐피탈이나 개인투자자가 일부 참여하나 규모가 커지면 재원조달이 어려워졌다. 반대로 리스크가 낮을 경우 투자 규모가 소형일 때는 은행대출, 규모가 클 때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일반적이었다.

시장 초기 출시된 금융상품을 살펴보면 위험 대비 보상으로 금융사들이 투자대상에게 높은 수익률을 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은행, HBR, UNEP(유엔환경계획)등의 자료에 따르면 신재생시장 초기 2009년 출시된 금융상품들은 평균적으로 회사채 대비 주식상품 10%, 채권상품은 3%이상 등 높은 추가 수익률을 요구했다.

벤처캐피탈을 이용하면 내부수익률(IRR) 50% 이상, 소수 투자자로 자금을 조성하는 사모펀드는 IRR 35%이상, 인프라 및 연기금 펀드는 IRR 15%, 후순위 대출은 금리 8.12%, 담보 및 보증대출은 금리 4.12%, 회사채(3년, AA-)는 금리 5.80%의 수익률을 원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사들은 태양광, 풍력, 바이오 등 사업유형별로 리스크와 수익률을 검증했고, 회사의 기술·재무적 신뢰도가 어느 정도 구축된 후 투자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너무 많은 실적을 재원조달 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금융상품 개발은 요원했다. 산업이 활성화될 경우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벤처캐피탈이나 사모펀드에 집중되고, 상대적으로 수익이 낮은 채권상품 개발은 외면당했다. 이외에도 소규모 투자를 위한 상품이나 운영 중인 투자자산을 활용한 자금조달 등 다양한 금융기법을 동원하는데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저성장·저금리 상황에서도 낮은 연료비 연동비중으로 장기간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고, 전기자동차·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분야와 결합이 가능하며, 투자지역도 유럽에서 북미·아시아로 확대되는 등 매력이 부각되면서 금융사의 태도도 점차 변하고 있다.

▲ 금융사의 신재생에너지원별 투자 시 고려사항

고정가격 계약제로 리스크 감소 기대  
지난 몇 달 간 수차례 있었던 신재생 관련 투자설명회에 참석한 국내 금융사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경제둔화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신재생 시장을 새로운 우물이자 먹거리로 보고 있다”는 말을 했다. 저성장·저금리시대에 돌입한 우리나라에서도 안정적인 투자처로 신재생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시장에서는 지난 연말 ‘장기 고정가격 계약제’ 도입으로 수익안정성이 제고되면서 금융사들이 좀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거나 헤지 할 수 있는 여력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년 간 전력시장가격(SMP)과 신재생 공급인증서(REC)의 합산가로 발전단가를 주는 만큼 수익변동성이 줄어들고 사전에 투자계획을 세우기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꺼렸던 소규모 사업이나 적은 담보 등 상대적으로 부족한 여건에도 자금조달이 가능한 만큼 관련 금융상품도 속속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까지는 소규모 사업자를 위해서는 ESS관련 상품을 제외하고 신재생에너지 상생보증펀드(신보·기보·기업銀·신한銀·우리銀), 태양광발전시설 전용대출(농협), 해외사업금융보험(무역보험공사), 수출형 신성장산업(수출입은행) 등 소수의 상품이 출시됐을 뿐이다.

하지만 정부가 연기금과 보험사, 발전사가 동참해 중소기업과 소규모 사업자를 위한 기금조성을 추진할 예정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풍력발전상생펀드와 소규모태양광펀드에 각각 3000억원씩 자금을 마련할 예정이다.

태양광·풍력 등 대규모 프로젝트에는 증권·투자사들이 올해 적극 참여할 예정이다. 올해 주요사업만 보면 충북태양광(40㎿), 철도유휴부지 태양광(50㎿), 고흥풍력(40㎿), 대정해상풍력(100㎿), 송도연료전지(40㎿) 등이 있다.

증권사별 동향을 보면 SK증권이 올해 영광풍력발전(80㎿), 여수 바이오매스(40㎿), 태백 귀네미풍력(19.8㎿), 국내 최초로 부생수소 기반 연료전지발전사업인 대산수소연료전지(50㎿) 등에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는 5853억원 규모의 군산바이오매스 발전사업(200㎿)을 진행 중이고 KTB 투자증권은 영국·일본·캐나다·벨기에 등 해외 신재생 PF주선에 주력하고 있다.

코리아에셋투자증권도 최근 군산시 수상태양광 발전사업 프로젝트(15㎿) 자금 주선자로 선정됐다. KDB 인프라는 발전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3조2000억원에 달하는 블라인드펀드를 운용 중이며 신재생에너지 전문 투자펀드를 기획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장기 고정가격 계약제 도입으로 활발히 투자의사를 보이는 곳은 민간 금융사가 아닌 연기금이나 보험사 등 기관투자자로 봐야한다. 실제 대규모 프로젝트를 뜯어보면 투자자로 연기금과 보험사 유치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20년 간 발전단가를 주는 장기 고정가격계약제의 특성상 통상 3년 안팎에서 길어야 5~7년 사이에 원금과 이윤 모두를 회수하길 바라는 시중은행보다, 오랜 기간 자금을 융통하고 프로젝트를 운용하길 원하는 연기금과 보험사가 투자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분석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신재생 설비를 사회간접자본(SOC)화해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RBC)을 떨어트리거나, 또 다른 투자자인 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을 낮춰 자금투입 조건을 완화해주고 있다.

한 태양광 투자컨설팅업체 임원은 “금융사들이 신재생산업에 투자하는데 있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정책변화”라며 “개인적으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자유한국당, 정의당, 바른정당 등 주요정당의 대선후보들 모두 2030년 재생에너지 사용비율 20% 달성을 공언했고,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원전 및 석탄발전 축소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정책변화로 인한 리스크를 크게 우려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최덕환 기자 hwan0324@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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