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근간 흔들 것” vs “지구적 행동 막지 못해”
세계각국 협정의무이행 지속, 미국 내에서도 반발 커

[이투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데로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공식 선언한 이후 세계 각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후깡패’라는 극단적 언어를 통해 그의 무모한 행동을 지적하기도 했다. 비난과는 별도로 그의 결정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전 지구적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터 미국은 파리협정의 전면적인 이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파리협정이 미국에 불이익을 가져다준다며 “나는 파리 대표가 아니라 피츠버그 시민의 대표가 될 것”이라며 극단적인 미국 우선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선당시 내놓았던 파리협정 탈퇴공약을 결국 실행한 것이다.

트럼프는 대신 미국과 미국민에게 도움되는 더 좋은 조건의 새 협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새로운 협정은 세계의 모든 나라가 부담과 책임을 공유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공평한 부담을 강조했다. 또 “파리협정보다 더 나은 정책을 찾기 위해서라면 민주당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 강력 비난 쇄도…파리협정 재협상은 없다
트럼프는 탈퇴 선언 직후 주요 국가 정상들과 통화를 갖고 재협상을 요구했으나 대부분의 정상들은 거절했다. 트럼프는 이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에게 전화해 탈퇴 배경을 설명하고 재협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상당수 정상들은 이후 즉각적으로 미국의 결정을 비판하거나, 우회적인 통로를 이용해 미국과 뜻을 같이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먼저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는 공동성명을 통해 “파리 기후변화협정은 재협상 대상이 아니다”며 “기후변화협정에서 제시된 탄소 감축목표를 이행할 수 있도록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별도 연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미국인의 이익에 오점을 남겼고, 지구의 미래에도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클로드 융커 위원장도 “미국의 탈퇴는 큰 실수”라며 유럽은 파리협정 이행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역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며 미국과 정반대 입장을 밝혔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파리협정이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 사회의 가장 넓은 합의를 반영한 것인 만큼 소중히 해야 한다”며 “우리는 의무를 진지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과 일본 등 미국과 가까운 나라들 역시 정부 차원의 공식논평은 없었지만, 그 어떠한 찬성의 목소리도 내놓지 않고 있다. 전반적으로 국제사회는 미국 없이도 파리협정 이행을 더욱 강화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미국 내에서도 역풍이 거세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럼프의 파리협정 탈퇴 발표에 대해 “미래를 거부한 것”이라며 강력 비판했다. 오바마는 성명에서 “이번 결정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미래를 거부한 극소수 국가에 합류하는 것”이라며 리더십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LA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도시와 주, 그리고 기업들도 트럼프의 결정을 비판함과 동시에 향후 연방정부 뜻과 상관없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파리협정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엇갈려
세계 각국의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탈퇴 선언으로 파리협정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는 지적이 높게 일고 있다. 시리아, 니카라과에 이어 미국이 협약에 불참하는 세 번째 나라가 된 만큼 그간 파리협정에 불만을 가졌던 나라들의 탈퇴가 이어질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당장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우리도 탈퇴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직접적인 협정 탈퇴는 소수에 그친다 하더라도 온실가스 감축행동의 실효성 약화는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많다. 온실가스 배출 2위(누적 1위)인 미국의 탈퇴로 인해 지나치게 높은 감축목표에서 물러서야 한다는 산업계 목소리가 힘을 얻은 가능성은 크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자국 내 反기후세력 입김에 밀려 당초 감축목표에서 슬금슬금 물러설 경우 협정이 껍데기만 남을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트럼프의 비이성적인 결정에도 불구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전 지구적 노력을 바꿀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아직은 많다. 유럽을 비롯한 다수의 선진국이 미국 없이도 협정을 계속 유지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 긍정적 전망의 배경이다. 온실가스 배출 1위인 중국을 비롯해 3위인 인도 등도 미국의 탈퇴와 상관없이 감축의무를 제대로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큰 힘이 되고 있다.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행동 유지 및 향후 파리협정 복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의 극단적인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외교가 국제적인 지탄을 받고 있는 만큼 미 행정부가 이를 지속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진단에서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복귀가 힘들더라도 차기 정부는 어떠한 형태로든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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